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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재빨리 몸을 움칫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짓이겨질 거였으면 때를 알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계산으론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었다.그동안 나무가 많아 살기 좋았던 이 집에 조경사들이 들이 닥치며 목장갑을 낀 손으로 마당의 이곳저곳을 분주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튀어나온 가지와 무성한 잎이 거침없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구나. 이럴 리가 없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망쳐진 거미줄은 축 쳐진 가는 끈 한 오라기를 힘없이 늘어뜨린 채 바람에 덜그렁덜그렁 그네타기를 하고 있었다. 거미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이끌며 나무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당 한구석에 나사가 헐거워진 낡은 바람개비가 힘겹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아침에 거미줄에 걸린 선녀벌레와 날파리를 포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그저 내 방식대로 높은 곳에 기어올라 몸을 던지며 가지마다 엮은 집은
기고ㆍ서통여론
박혜선 수필가
2024.03.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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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침묵은 늘 아슬했습니다돌아보면아무것도 잡지 못한 창백한 손무수한 생각만이 분주했던 길 시간의 고요는 늘 아득했습니다돌아보면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빈 그림자무수한 사념만이 소란했던 길 방향 모를 이정표촉수 낮은 더듬이 아! 세상에! 이제사 눈에 드느니 이순의 언덕저기 들판을 피고 지는풀꽃 같은 한 생애 순리의 생각이면 족한 것을저기 샛강을 흘러가는강물 같은 한 생애 겸손의 사념이면 족한 것을흔쾌히 그 길 걸어가야만 하겠다 가슴에 새겨보는 내밀한 다짐 약력2016년 수원시의회 사무처장 명예퇴직(지방 이사관)대한행정사회 초대 경기남부지부장 역임(2022,2,7-2023,6,9)한국문인협회회원. 수원문인협회수석부회장역임(현,이사),인사동시인협회회원바람의 통로 등 시집 6권출간 시평(詩評)‘풀꽃 같은 한 생애’와 ‘저기 샛강을 흘러가는 강물 같은 한 생애’의 시말이 눈길을 끌고 있다.이어 ‘겸손의 사념이면 족한 것을/흔쾌히 그 길 걸어가야만 하겠다’며, ‘가슴에 새겨보는 내밀한 다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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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담 시인
2024.03.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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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마침표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 존재의 개수는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개수와 상관없이 큰 상관관계를 가지고 온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마치고 난 후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거나 과대망상증에 사로 잡혀 주위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일상의 마침표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제일 먼저 만난 처음의 마침표는 현재보다 조금 젊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오랜 시간의 마감으로 예견된 일이었다. 옆도 보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함몰된 세월이라 그다지 서글프거나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되어질까 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준비라면 어색할지 모르는 많은 꿈을 꾸었다. 일종의 자격증도 여러 장 챙겨 두었고, 창밖으로 나가는 첫 단추라고 생각하며 설레이기도 했다. 사무실도 차리고 싶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 보다는 했던 일의 연장에 무게를 두었다. 혹자는 너무 오랫동안 직업을 가지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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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시인,수필가, 수원문인협회 명예회장
2024.03.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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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모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며 상상력이 풍부한 전략가”... 내가 그렇다고?? 얼마 전 심심풀이로 해본 MBTI*라는 검사가 내 성격이 그렇다고 알려준다. 결과에 의하면 나의 성격유형은 INTJ-T이다. 친절하게도 이 검사는 나와 잘 어울리는 성격과 정반대인 성격유형까지도 안내해준다. 이제부터 사람을 만나면 성격유형이 어떻게 되는지부터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저와 잘 어울리는 성격유형이라니 반갑습니다. 죄송하지만 저와는 성격이 상극이라니 만나지 맙시다. 이래야 하나? 하긴 예전에도 과학적 근거나 신뢰성이 빈약한 ABO 혈액형으로 성격을 넘겨짚던 시절이 있었다.나의 결혼 적령기였던 8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중매쟁이는 꼭 남녀의 혈액형을 먼저 물어보았다. 특정 혈액형과는 궁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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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준 수필가
2024.03.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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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하나인 경칩이 봄의 문턱을 넘어 산과 들의 만물을 깨우느라 야단이다. 그 소리 요란해서 어디 잠을 잘 수가 있느냐고 아우성인건 사람뿐이려나. 우수와 춘분 사이의 절기로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하는 중요한 절기이다.잠자던 개구리도 놀라서 튀어 나온다는 경칩에 아침부터 설레이거나 놀람은 커녕 무료함 덕분에 느긋하고 길게 엎드려 있으려니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묵직하고 무언가 걸린 느낌이 있는가 하면 메스꺼운 징조가 내리앉을 정도로 기분이 썩 좋지 않다.하는 수 없이 소화제 한 알을 입에 넣고 떱떠름하게 물을 마신다. ‘벌써 이렇게 맥이 풀려서 어쩐다?’ 속으로 꼬시래기 같은 생각이 훅 솟구친다.그러면 메스꺼움도 해소 시킬 겸 보통리 호숫가를 몇 년 만에 걸어 보기로 했다. 핸폰을 갈아 작동법도 정확히 잘 모르는데 며칠 전 보아 두었던 앱을 얼른 찾아 열어 본다. 만보기다.‘그럼 그렇지, 오늘부터 대차게 걷기운동부터 하고 차츰 요가, 수영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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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2024.03.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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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기다림과 그리움하얗게 읽어 내리던 목련나무중력과 낯선 바람에 몸살 않는다 달빛아래 활짝활짝 피어나는백로들의 춤사위 어둠속 환히 빛나던 꽃이 지고 있다지면(地面) 위에 널려 있는 꽃 울음한쪽 귀 내어주고 말없이 듣는다 찬바람이 나무를 훑고 지나간다후두둑 후두둑 꽃이 빗방울처럼 떨어진다나무는 어제처럼 꽃길 만들어 놓고환하게 웃고 서 있다 비는 내리고 꽃은 떨어지고무슨 할 말 있는 듯하여 나는나무 아래 서 있다 약력수원문인협회 회원열린시학 신인작품상 수상시집『그래도 꽃이다』동시조집 시평(詩評)아직은 이른 봄 문득 김애숙 시조시인의 시 ‘목련나무 아래서’를 수원문인협회 까페 신문투고 원고 방에서 찾았다. 그의 시조집 『발가락이 꼬물꼬물』을 가지고 학교 문학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딱 맞는 명문장의 시어들이 그녀의 고운 마음속에서 창작의 문장으로 탄생한 것을 느끼며. 특별히 계절로 보면 이른 감이 없지 않은 ‘목련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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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숙 시조시인
2024.03.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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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아래 머리 채 툭 떨어져도님 향한 붉은 순정 영원히 변치 않네첫날밤 하얀 이불 위에앵혈鶯血로 맺은 언약 눈보라 사납게 치던 밤 꽃피운 사랑이승과 저승도 갈라놓지 못하네동백꽃 백설에 깨어붉은 이슬 맺혔네 2014년 대한 문학세계 등단한국문인협회 회원수원문인협회 회원이든 문학회 부회장시와 늪 문인협회 이사저서 : 『고래와 달』 『살아있는 것은 왜 뜨거운가』동인시집 : 16인의 사색노트, 문학 어울림시와 늪 작가상 수상제6회 홍재 문학상(대상) 수상 시평(詩評)아침에 눈을 뜨니 기대하지 않던 함박눈이 하얗게 쌓여 환희를 부르고 있다. 작년도에 약속했던 기억이 뜨겁게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마치 너의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라는 것처럼. 지난 가을 김세홍 시인의 시 ‘동백꽃’을 받아 놓고 게재하는 시기를 놓쳤었다. 문득 하얀 눈 속에 순수의 경이를 가지고 온 오늘 다시 ‘동백꽃’ 시가 피어나는 걸 느꼈다. 그의 시집 『살아있는 것은 왜 뜨거운가』 탄생의 축복처럼.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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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홍 시인
2024.02.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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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교육공무원생활을 하다가 퇴직했다. 그저 여유롭게 마음은 놀고 싶었다. 하지만, 한가하면 떠난 친구가 생각나 견딜 수가 없다.바쁜 일상이 내게는 최고의 약이라 생각된다. 다시 계약직으로 8년 째 출근한다. 아침에는 여행 가는 듯 분주히 일어나 버스를 탄다. 오가는 차들과 나날이 변하는 가로수와 도심의 풍경들을 구경한다. 퇴근 때는 관광을 다녀오는 기분으로 집으로 온다. 항상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듣고, 저녁 시간은 교재와 동영상을 들으며 공부한다.오늘도 출근하여 꽃들의 전당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택배전화다.“서울 스튜디오 쉼표에서 보낸 착불 우편물인데, 집에 계시는 지요?”“아닙니다. 직장이니 집 아래 슈퍼에 맡겨 주세요. 요금도 슈퍼에서 받아 가세요.돈 드리라고 전화하겠습니다.”오전 10시쯤 전화를 받고 온종일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예쁘게 잘 수정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나왔을까?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래층 슈퍼에서 우편물을 찾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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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점늠 수필가
2024.02.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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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지난밤을 예고편으로 축축한 한나절을 보내게 하고 있다.가끔 약간의 눈발도 함께 섞여져 찔끔찔끔 보챈다. 무엇을, 어쩌라고, 물음표를 점잖게 마음 한편으로 밀어 두고 어제의 약속에 끌려서 밖으로 향한다.그녀는 H증권의 사원인데 이재에 밝지 못한 주위사람들에게 세금계산이나 연말정산에 보탬이 되는 정보를 전해 준다. 늘씬한 키에 미모 또한 빠지지 않는 그녀는 외형에서 오는 매력보다 내면의 심성이 가히 일품이다. 잃어버릴 만하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보험수가나 계약관계까지 확인도 해 준다.옛날 그녀는 잘나가는 금융계 세일즈 우먼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겉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일에 신물이 나서 모든 걸 접고 증권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주변에 금융계 관련 사람들을 잘 알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갈 수 있는 일이다. 오늘도 점심을 먹자며 그녀가 불렀다. 이번에도 분명 무언가를 제의하고 약간의 혜택을 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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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명예회장
2024.02.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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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0월 10일 새벽 1시 조금 넘은 시각, 고요하던 방안에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님으로부터 온 전화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떨리고 두렵고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소리는 천지마저 흔들어 놓았다. “큰일 났어, 네 엄마가 숨을 쉬지 않아…” 깜깜한 밤은 온통 샛노랗게 변하고 바닥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한밤중에 홀연 듯이 찾아온 것이다. 대충 짐을 챙기고 혼자 사는 둘째 아들에게 전화 걸고 아들 집을 경유하여 세종여주병원으로 달렸다. 어머니는 심폐소생술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끊어진 숨이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끊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병원에서도 이제는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숨이 막히고 피를 토하고 가슴에 압박을 느끼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핏덩어리가 나오면서 어머니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제 심장도 제 기능을 다한 듯 다시 뛰지 않는다.병원에 도착, 어머니는 이미 하얀 포에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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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겸 시인, 시낭송가, 방송인
2024.02.0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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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세상 언제든지 내 맘대로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그런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오고 가는 그 길은 신들의 영역빈손 맨발로 왔다가 산전수전 겪으며만리장성 쌓아놓고 아침 이슬처럼 살아지는 초로 인생길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에서가장 소중한 사람 사랑이란 이름으로 뿌리내린 지구촌 피어난단 한 송이 필 때도 질 때도 향기 그윽한젖과 꿀이 흐르는 꽃 중의 꽃입니다 약력2016년 『문파문학』 등단동남문학회 회장 역임수원문인협회 회원제 14회 동남 문학상 수상저서 『언어의 그림』 『달빛 체온』 시평(詩評)가끔 문협에서 만나는 원경상 시인은 시인이기 전에 온전한 봉사활동가다. 흔희 말하는 봉사정신이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꿋꿋한 의식이 살아있는 시인이다. 그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는 법이 없고 묵묵히 세상일에 순종하는 성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남들이 느끼지 않는 자기만의 시선으로 시의 소재를 잡는다. 이번 시에서도 그만이 갖고 있는 당신이란 삼인칭으로 세상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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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상 시인
2024.02.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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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 아침은 묵직하지 않아서 좋고 할 일이 없어서 좋아”거울을 지그시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따뜻한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가 눕는다.얼마만인가? 스스로를 얽매어 놓고 부풀어 버린 배를 감싸 안으며 시간을 붙잡지 못해 안달하던 날들, 이제 그 시간은 저만치 물러서 한가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다.‘내가 쉬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순간이다.거슬러 올라가면 어느새 이십여 년이 흘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올라서기를 하던 시간, 그리고 그 올라서기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맴돌던 날들, 그 순간들은 그저 허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없었으니까. 무언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것들은 오로지 책임이란 굴레로 억지의 습성을 총총 감아쥐고 흔들었다. 남들이 다 가버린 사무실에서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주체 못해 삼십여 분씩은 누워있어야만 했다. 나중에 가서야 갑상선 항진증으로 그렇게 무기력하고 힘들었음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만신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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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2024.02.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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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가 첫 번째 다룬 안건은 키드라 해적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인정해 준 것이었다.“우리의 이름은 새 출발하는 뜻으로 ‘네오9’로 짓겠다.” 태평양 깊은 바닷속에서 용왕처럼 군림하던 키드라는 23개의 위성과 해적별을 이끌고 태양계의 끝자리로 가 하델의 소원을 대신 이루었다(‘9’는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뜻이다.).시리우스의 두 번째 안건은 왕자라 하더라도 몸속에 여럿이 아닌 하나의 몸만 넣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번의 정회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었는데 100일의 공고 기간을 거쳐 선포되는 것으로 했다.“고맙소, 시리우스 의장.” 알마크 대총독은 3군단을 재가 없이 움직인 일로 절대자로부터 경고를 받았으나 직위는 유지되었다. 시리우스 덕택으로 구명 탄원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아들아, 네가 또 나를 감동시켰구나. 그만큼 내 권위가 도전받는 것 같아 우울하다.” 절대자는 오르트 대제를 개과천선시킨 것을 감동하면서도, 괘씸한 것을 벌하지 못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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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삼 작가
2024.01.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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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는 바이오껌을 두 개 받더니 한 개는 제 입에 넣고 한 개는 백구에게 주고는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라갔다. 시리우스의 생각은 어미 유니콘에 눈빛보석과 은교를 태우려 했던 것이다.“흙에서 돋는 봄빛이 어쩜 저토록 고울까?” 눈빛보석과 은교는 시리우스가 풀밭을 걷고 싶어 하여 정자에서 내려가 연못가를 함께 걸었다. 시리우스는 이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나려는지 마음이 답답해 한군데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잔디 밭에 보드라운 연두색 풀들이 물감 배어든 듯 색감을 더욱 선명히 하고 있었다. 아지랑이 따라 춤추며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와 흰나비를 백구가 쫓아다니며 재미있어 하는 평온한 풍경이었다.“멍멍.” 초조한 시간이 얼마쯤 흐르자 나비를 따라다니던 백구가 하늘을 향해 짖었다.“따그닥! 따그닥!” 잠시 후, 하늘에서 유니콘 발굽 소리가 들렸다.“아니?” 셋은 소리 나는 곳을 올려다보고 하나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흰 유니콘을 탄 알마크 대총독과 흑빛 유니콘을 탄 오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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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삼 작가
2024.01.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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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함께 흐른다고 했다 그녀의 방에 어둠에 익숙한 그림자 산8번지 축대築臺에 누워있다바닥까지 내려온 지붕을 열고 그녀가 들어선다굳게 다문 이빨로이곳까지 바다를 물고 와 내려놓는다머리를 세우고 헤엄을 치던 때부터물살을 갈랐던 등지느러미 꺾고흐르고 싶은 곳으로 향한다낮은 창 아래나 축대를 내려와넓고 깊은 신작로에 이르러 물 밖 세상을 본다은백색 피부가 가볍지 않다꽉 다문 입꼬리 실처럼 살랑이고풀잎처럼 가느다란 몸이 숨탄것이라고모래 진흙을 헤집어놓는다무딘 날을 세우며 이빨 자국을 남긴다 물속으로 뛰어 든다길게 드리운 그림자차도에 누운 사금파리다물길에서 인 바람머리를 세우고 밀려든다페달을 밟는다 등지러미 일으켜 부등깃을 세운다*풀치: 갈치의 새끼 약력2002년 지구문학 등단수원문인협회 편집국장시집 비처럼 내리고 싶다남자의 방 시평(詩評)신경숙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그녀의 세계는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만큼 그녀의 시세계를 알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시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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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시인
2024.01.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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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집을 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부지런을 떨었던 2023년 7월의 2주일, 꿈같은 여정이었다. 마다가스키르의 무론다바에서 새벽 5시에 본 에비뉴의 바오밥나무는 장엄해 보였다. 일출과 일몰에 드러나던 바오밥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뻗은 듯했고, 우람한 몸통에 비해 왜소한 가지가 불균형스러웠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게 여겨졌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밤하늘의 총총한 별은, 캄캄한 하늘이라 더 밝았고, 이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맑은 눈망울이 곱다. 가장 원초적인 그런 광경이 마다가스카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아직 비 문명지인 원시의 땅. 전깃불이 없어 별이 더 빛났다. 신발을 신지 못한 아이들을 보고 가엾어서, 내가 너무 부자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흙벽돌로 지은 움막 같은 집, 갈기갈기 찢어진 셔츠를 입고 길 안내를 해준 바오밥나무 마을의 청년에게 운영자가 티셔츠를 벗어 입혀주자 얼마나 환하게 웃던지, 그 진달래 꽃잎처럼 붉게 물든 양볼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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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찬석 수필가
2024.01.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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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임 연락이 왔다. 내가 모임이름을 짓고 활동도 활발하게 한 모임이라 애착이 많이 가는 모임이었다. 모임 구성원은 직장에서 발탁되어 연수를 받고 각 지역에 가서 연수내용을 강의로 전달하는 강사활동을 하게 된 구성원들로 모인 결사체. 연령차가 많이 난 모임이지만 모임의 성격상 위계가 잘 이루어져 처음 모임 결성이 되었을 때는 활기찬 담소들이 오고 갔다. 해가 갈수록 한두 사람이 승진을 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축하를 거하게 해 주며 기쁨을 함께 했다. 세월이 가면서 주위로부터 그 모임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고 물어 올 때는 우쭐한 면도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니 스무 명이나 되는 회원 모두가 기관의 장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띠 동갑이 되는 후배가 승진했을 때는 그야말로 환희의 도가니가 되어 서로 부둥켜안을 정도로 기뻐하며 성공을 함께 나누었다.모임은 점점 더 깊어지고 끈끈해져서 일박 이일 나들이도 가게 되었고, 맛있는 특산물을 찾아 여기저기 관광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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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2024.01.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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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땡볕들이 헤집고 앉은 자리말없이 저린 상흔 안으로 삭히면서쓰디쓴 생존의 굴레 온몸으로 견뎠다. 유년의 푸른 꿈들 하나둘 상기想起하며검붉은 민낯 얼굴 시린 세월 품어 안고그리운 동무들 얼굴 흑백으로 띄운다. 뭉클한 얘기 보따리 쩍 하고 벌어지니굴렁쇠 굴러가고 연줄에 띄운 소원빼곡히 홍보석으로 영글어서 쏟아진다. 반백의 사연들이 꽃처럼 만개하여빠개진 틈 사이로 ‘훅’하고 바람 불면노을꽃 눈가의 주름살이 영롱하게 피어난다. 약력2017 『시조사랑』 신인문학상 수상, 대은문학상 수상2023 계간 『수원문학』 작품상 수상(현) 수원 소프트테니스(정구)협회장(사) 한국시조협회 이사,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사) 수원문인협회 회원,시조집: 「삶의 여울」, 한국 명시조 선집 등 공저 다수 시평 (詩評)사람에게 외연과 내연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시조에서도 분명 외연과 내연의 절묘한 표현이 필요하다. 장금렬의 시조를 읽다 보면 정확하게 시조의 내연을 관조하듯 끌어내어 특별한 시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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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렬 시조시인
2024.01.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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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산책로에 가을비가 지나간다.촉촉한 봄비 따라 싹 튀우며 시새우던꽃이며 선연한 잎들이 미련 없이 내려앉는 이미 진 낙엽이야 쓸려가 태워지면형체도 남지 않고 한 줌 재가 되겠지만희망가,그 기억은 남아 겨울 추워 어쩔꼬 이 옷을 또 입을까.형형색색 벗어 던진 빈 가지 나무들이하늘 보고 땅을 보는그 길을 밟고 밟으며 저물도록 오간다. 가을비가 내리는 산책길을 오가며 쓴 시다.어머니는 늘 한복을 입으셨다. 특히 외출할 때 풀을 잘 먹인 모시 한복은 어린 내 눈에도 가히 일품이었다. 다섯 딸을 키우시는 어머니의 손재봉틀은 늘 분주했다. 덕분에 우리는 어지간한 틀 질은 등 너머로 배웠다. 간간히 바늘을 부러뜨려 놓고 서로 안 했다고 발뺌하다 혼나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라 하시고, 풀기 뺀 옷을 장롱에 차곡차곡 넣으시면서 나직하게 “내가 이 옷을 내년에 또 입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선연한 잎들이 미련 없이 내려앉으며 “봄비 따라 싹 튀울 수 있을까?”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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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강 수필가
2024.01.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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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길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내가 그곳에 머물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처음엔 띄엄띄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행렬은 휴일과 평일 상관없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아예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시도 때도 없이 북적거렸다.늦은 오후 약간의 휴식이 필요해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둘러볼 때면 누가 불렀는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삼삼오오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어떤 목적에 의해 이곳으로 온 듯했다.무슨 이유일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물을 수가 없어서 그저 그들의 표정을 살필 수밖에.그들은 한 결같이 무엇엔가 심취해 있는 것만은 사실 같았다. 혼자 추측하기에는 그 답이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이 이곳에 온 분명한 목적은 선조들이 걷고 걸어간 길에 대하여 관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음미일 수도 있는 그 목적은 그들이 걷고 있는 모습 속에서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직접 살고 있는 곳도 아닌데 그 옛날에
기고ㆍ서통여론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2024.01.04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