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여 간 해외에서 번 돈으로 모녀가 설립
한국 양로원·복지사회단체와 자매결연 희망

▲ 윤영자 원장
【서울뉴스통신】류재복 기자 = 5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가정은 합쳐지는 가정이 아니라 흩어지는 가정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선 노인들의 거주가 문제다.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의 출현은 1900년대 이후의 일이지만 양로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삼국시대 이래로 사궁(四窮: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홀아비, 과부)이라 해 사회정책적의 차원에서 보호를 했다.

현재 한국의 양로원 입소대상은 생활보호법에 따라 65세 이상의 무의무탁한 노인으로서 생활능력이 없는 자로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수용,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내용은 생계보호·의료보호 및 사망 시 장례비를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지원이나 보조와는 관계없이 종교단체에서 양로원을 부설, 운영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점차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해 가는 추세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양로원은 숙박시설·의료시설·각종 오락 및 편의시설을 갖추어 나가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한 단계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양로원제도는 잘 발달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예로부터 효를 백행의 근본으로 내세워 국민윤리의 기본으로 삼았으며, 조선 초기부터는 나이 많은 정2품 이상의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인 기로소를 두어 노인우대정책을 펴는 등 경로효친을 크게 강조해 온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화·도시화의 물결 앞에 노인문제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즉, 지속적인 생활수준 향상과 보건 의료기술의 발달로 국민들의 평균수명 연장과 함께 노인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1960년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9%에 불과했으나 1997년에는 6.3%, 2000년에는 7.1%를 넘었고 현재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양로원 및 노인요양시설(무료 요양, 전문 요양, 실비 요양, 유로 요양)에 1만5000여명의 노인들이 수용돼 있다.

▲ 은덕노인요양원이 있는 동광촌 마을
“양로원 부근 터 싸게 구입해서 시설 늘렸으면…” 희망
60만 위안(한화 1억1천만 원) 필요…독지가 지원 기대

지난 3월 22일, 기자는 중국 농촌의 한 양로원을 찾아가 보았다. 중국 흑룡강성 탕원현 탕왕향 동광촌에 있는 은덕노인요양원_. 이 요양원이 이곳 동광촌 마을에 세워진 것은 4년 전인 2012년 9월 23일이다. 이곳 요양원의 원장인 윤영자씨(47)는 현재 이곳 동광촌의 지부서기도 겸직을 하고 있다. 윤 원장이 요양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를 보면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모시고 생활을 하면서 마을에 많은 노인들이 혼자서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결심을 하게 됐다.

우선 마을에 병원도 없고 양노원도 없기에 노인들이 불편을 겪자 그는 마을에 있는 빈 집을 중국 돈 40만 위안(7천만 원)에 구입, 리모델링을 했다. 약 200여평의 건평에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양로원이 탄생되면서 14명을 모시게 됐다. 그 중 4명은 치매노인이었고 7명은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노인, 그리고 3명은 정상의 노인이지만 연고가 없는 노인이었다.

윤 원장이 이들 노인들을 돌보면서 이들에게 받는 비용은 매월 정상의 노인은 800위안(14만원), 누워서 생활하는 노인들, 즉 대소변을 받아내는 사람들은 2000위안(34만원)을 받고 있지만 그마저 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윤 원장이 부담을 하면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윤 원장은 첫째, “건물이 작다”고 기자에게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운영을 하다 보니 필요한 시설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던 노인이 갑자기 사망을 하면 병원으로의 후송이 어렵기에 우선 시신을 화장하기 전 시신 안치를 위한 장례식장 같은 곳이 있어야 하고 또 의사를 상주하게 해 아픈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무실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파출소에 신고하고 곧 바로 화장을 해서 처리를 하고 있다.

이곳 양로원이 설립되기 까지는 윤 원장의 노력과 비용부담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친정어머니 김순희(68)씨의 도움도 컸다. 현재의 시설을 짓는데도 사실은 어머니 김 씨의 도움이 컸다. 김 씨는 프랑스에서 5년, 상해에서 7년, 한국에서 5년간 17년간 외국에 가서 벌어온 돈으로 이 노인요양원을 설립한 것이다.

윤 원장의 어머니인 김순희 씨 역시 시부모를 20년간 봉양을 했고 4년간은 대소변을 받아낸 경험이 있기에 천사와 같은 마음이 자신의 시부모가 아닌 다른 노인들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이 요양원을 운영해 보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고 그 실천을 위해 김 씨는 17년간 외국에서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고생으로 돈을 모았다.

▲ 요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영자 원장
김 씨는 "내 딸도 노인들에 대한 공경과 천사 같은 마음이 있기에 이 사업을 결심했고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의 꿈은 이곳 양로원부근의 터를 싸게 사서 집을 짓고 시설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만 위안(환화 1억1000만원)정도가 필요하다. 윤 원장은 “청도, 연길 등에 가서 양로원 시설을 많이 돌아보았는데 그곳에는 너무도 좋은 시설로 노인들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자신도 그런 시설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시설의 노인요양원을 만들어 나하고 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더 친절하게 봉사하자는 직업의식을 갖고 모든 종사자들과 함께 친절히 대한다는 봉사정신을 견지하면서 양로원에 수용돼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곤란을 해결해 주는 평화롭고 따듯한 마음과 정성으로 운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특히 “중증의 환자인 치매, 거동을 못하는 노인,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한 노인들만이 수용하는 곳도 만들고 싶고 더 욕심을 부리고 싶다면 고아들과 장애아의 복지를 위해 여생을 다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그는 11년 전에 이혼을 했고 현재 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는 "저는 어릴 때부터 홀로 고생을 하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의 노인요양원 운영이 제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 꿈이 반은 이루어졌다“면서 ”그러나 좀 더 저의 큰 꿈이 이뤄 질수 있도록 한국의 노인요양원 및 기타 사회봉사단체와의 자매결연, 그리고 협조와 지원, 독지가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자님의 도움을 바라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