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양대 강국이던 미국과 러시아는 동북아·태평양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경계, 유지·확대를 부단히 꾀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미·중·일·러가 자국 이익에 따라 민첩하게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능동적 외교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오는 29,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다. 향후 한·미관계를 엿볼 수 있는 풍향계 같은 두 정상의 만남이어서 회담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역대 정부 중에서 취임 후 가장 빠른 회담이지만 가장 불확실한 회담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양국 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방위비 분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 4대 핵심 현안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네 가지 사안 모두 한·미관계를 흔들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닌다.
무엇보다 최근 양국 간 미묘한 인식 차이를 드러낸 사드 배치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사드 문제는 국내적 조치로 여기는 문 대통령의 판단과는 달리 이미 한·미 간에 가장 중요한 외교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미국 정부는 청와대가 7일 사드 배치와 관련해 사업인가 전 시행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문·트럼프 두 정상이 취임 후 첫 대좌하는 회담이 삐거덕 댈 수 있는 소지가 가장 많은 주제로 운위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실이 이렇다면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은 좀 더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물론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핵심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대북제재 대신 교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처럼 굳이 미국의 전략자산이나 군사훈련 축소 같은 미묘한 문제를 언급하는 게 시기적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자칫 한·미 관계의 틀을 흔들 소지가 작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반한 한·미·일 공조, 한·중-한·러 간 전략적 제휴는 한국 안보를 유지해온 주춧돌 같은 존재다. 특히 미군은 북한이 6·25 남침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자유를 지켰고, 우리는 그런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자유와 번영을 이루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의 신뢰를 재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혈맹의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첫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당·정·청이 비상한 협력 모델을 구축할 때다. 물론 야당도 힘을 보태야 한다. 외교안보엔 초당적 대처가 긴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