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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6.25 특별기획취재] 김선교 양평군수 “화강원(和康苑), 동북아 평화의 성지화” <1>
  •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 승인 2017.06.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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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교 양평군수

하나의 땅 두 개의 나라, 6. 25, 그 시작의 총성

지평리-용문산전투 승전쾌거 이룬지 67년, 양평군이 시동

1945년 12월의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정된 미-소 강제 신탁통치 이후 남과 북은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구분되는 민족으로 분열되어 끝내는 통일되지 못한 채 두 개의 정부로 갈라서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미-소의 냉전구조가 한반도 통일의 장벽이긴 했으나 민족 내부의 분파작용과 갈등으로 좌우의 어느 한편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정치현실도 분단을 가속화 시킨 원인이었다. 남한은 좌우익의 대결 양상을 보이며 폭력과 살상으로 얼룩진 혼란을 겪은 후에 이승만 대통령 취임으로 귀결되었으나 민족진영 내부의 분파활동과 의견대립은 새로운 정부의 출발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반면, 북한은 처음부터 소련의 낙점을 받은 김일성이 큰 무리 없이 공산정권체제를 굳힐 수 있었다. 3.1독립운동에서나 상해임시정부에서 또는 수많은 과거의 항일독립전선에서 오직 하나의 깃발아래 힘을 모았던 민족은 이제 두 개의 깃발아래 따로 모여 적대의 이빨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대마도 해협을 통과하던 태풍 '엘시'의 영향으로 가랑비가 내리고 있던 38선 전역 남한 국군방어진지에 북한군의 맹렬한 포격을 신호탄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해안의 옹진반도로부터 개성, 고랑포, 동두천, 포천, 춘천, 강릉, 동해안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5방면 1개소에서 기습해 오던 북한군에 반해 남한군은 옹진반도의 17독립연대와 춘천의 7연대만 제외한 다른 부대에서는 평상시와 똑같이 외박과 휴가를 얻어 부대를 떠난 상태였다.

또한 서울에서는 육군 장교클럽 개관 파티가 열려 국방부, 육군본부의 고위 장성과 미 군사고문단, 전방부대 지휘관들까지도 참석하여 국군의 일선진지는 무방비 상태였다. 기습 남침으로 대성공을 거둔 북한군에 의해 서울은 단 사흘 만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지평리와 용문산 전투에서 유엔군과 국군이 승전의 쾌거를 이르면서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고 6.25 포성이 멎은 지도 어느새 67년이 되었다.

 

아군-적군 구별 않고 6.25 전투 희생자 모두 추모하는 뜻

지평리-용문산을 양평 유일의 국제적 문화유산 보유地로

 

경기도 양평군(군수김 선교)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전시킨 지평리-용문산 전투를 새롭게 해석, 재조명하면서 6.25당시 전사한 중공군까지 포용하는 사람중심의 호국보훈 시설인 화강원(和康苑)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그간 이념과 논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않고 6.25전투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을 추모하여 지역창생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한국전쟁에서 빛나는 승전지로 손꼽히는 지평리-용문산을 양평유일의 국제적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알리면서 전쟁피해국이 침략자들을 위한 추모의 장을 마련, 당시 숨져간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에 기여하고 인권국가로서 그 위상을 정립하여 한국의 국격(國格)을 향상시키고 특히 양평이 화해와 평화의 도시로 새롭게 탈바꿈이 되는 전략으로 양평이란 지역이 생겨난 후 지속적인 인구감소에 따른 지역경제의 낙후로 균형적인 지역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한 현실에서 지평과 용문에 신성장 동력으로 와인, 발효식품 산업을 육성하여 지역발전의 근간산업으로 성장을 시켜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평군의 지역경제에 활성화를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를 확대하는데 그 필요성이 있다.

양평군은 이러한 사업을 위해 이미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의 사업기간을 정해 국방부 소유인 지평리 561번지 일대 4만평방m(지평면 군유지 7필지 248,705평방m와 교환)에 도비 100억, 군비 50억, 농협투자유치 50억을 포함 총 200억의 사업비를 투자했고 주요시설로는 화강원, 위령탑, 유엔추모광장, 유해발굴전시장, 테마거리 등을 조성하며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막걸리-와인 양성, 와인-발효식품 교육, 마차투어, 자전거투어, 소믈리에 발효식품 체험, 친절마인드 교육 등이 있다.

양평군은 이 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효과로 군내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지평-용문-양평을 찾는 관광객을 3년 후인 2019년까지 85만 명, 2030년에는 130만 명으로 보고 있으며 오는 2018년 말에 완성이 되는 화강원 조성 기간 중에는 생산유발효과를 436억, 부가가치효과를 140억, 취업유발효과를 409명으로 보고 있다.

 

화강원 조성은 양평을 ‘동북아 화해-평화 聖地’로 만드는 것

전쟁 피해국이 침략자를 추모하는 ‘큰 나라의 國格’도 과시

화강원이 완공된 이후인 2019년부터 2030년까지의 소득유발효과는 5356억, 부가가치유발효과는 12748억, 취업유발효과는 1267명으로 보고 있다. 양평군은 특히 동북아 화해-평화의 성지가 될 화강원을 조성한 후 전체적 의미로 ‘서경’의 ‘협화만방’에서 유래한 전쟁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지역창생과 희생자의 인간존엄성 회복을 통한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표현하고 배경에는 산업약화, 인구감소, 균형발전의 필요성, 그리고 양평 유일의 국제적 문화유산을 살리고 평화의 도시로 전환하면서 지역자원과 연계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중시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그 내용으로는 전쟁피해국이 침략자를 추모하는 ‘큰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시설을 만드는 비용으로 도비100억, 군비50억, 농협투자유치50억 등 200억이 투입되고 그로인해 문화자원 발굴, 신 성장동력(와인, 발효식품)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이 있으며 주 사업으로는 위령탑건립, 추모광장 조성,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시재생 사업인 소믈리에 양성, 발효식품, 와인교육을 계획하며 그로인한 효과로는 화해-평화의 양평브랜드 창출, 지역경제 터닝포인트 마련, 교육을 통한 전문가 양성, 주변관광인프라 시너지효과 극대화를 꼽고 있다.

6.25 한국전쟁에서 빛나는 승전지로 알리고 있는 지평리 전투와 용문산 전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1일부터 2월 15일까지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중공군과 벌린 전투로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이 1951년 2월, 세 번째의 대공세를 개시,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을 밀어 내려오고 있을 때 미군과 프랑스군의 연합부대가 중서부전선의 지평리 에서 중공군을 강타하여 기세를 꺾어놓은 전투로 중공군의 2월 공세가 시작되자 제8군 사령관이던 릿지웨이 장군은 중공군이 뚫고 나오려는 돌파구의 정면에 있는 지평리 일대를 사수하여 공세를 막아내기로 결심했다. 미제2사단 예하의 미23연대와 그에 배속된 프랑스대대가 맡고있던 지평리 일대는 원래 아군전선의 후방에 있었다. 그러나 2월 11일 밤에 시작된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전선이 원주까지 내려왔다.

 

지평리는 8개의 고지와 사주 방어진지 편성의 최적지

유엔군공군, 중공군을 로켓탄 및 네이팜 사격으로 강타

이로 인해 원주는 미제10군단의 최북단 돌출부가 되었고 이어 중공군 제39군 예하 3~5개 사단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지평리 마을의 언저리에는 높이가 100~400m에 이르는 8개정도의 고지들이 둘러 있어서 지름이 5~6km쯤 되는 사주 방어진지를 편성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23연대장 프리맨 대령은 예비대를 마련하기 위해 지름이 겨우 1.5km에 지나지 않는 훨씬 작은 원진을 편성하고 전투 병력을 낮은 야산지대에 배치했다. 병력은 배속지원부대를 합해 모두 5,600명쯤이었고 105미리 곡사포 1개 대대와 155미리 곡사포 및 대공화기 각각 1개포대가 화력을 뒷받침했다.

이를 에워싼 중공군은 11일 밤 집중포격과 탐색전을 벌리더니 이어 대규모의 파상공격을 개시하여 유엔군 진지에 수류탄을 던지며 몰려와 사방에서 치열한 근접전이 벌어지자 미 포병대는 조명탄과 고폭탄을 번갈아 쏘아대며 분전했다. 유엔군 진지 앞에 바짝 다가온 중공군은 개인호를 파고 들어앉아 머물면서 압력을 늦추지 않았다. 때로는 유엔군 진지를 돌파하여 진내로 몰려 들어오기까지 했으나 이때마다 유엔군은 즉각 역습하여 이를 물리치며 진지를 고수했다. 프랑스 1개 분대는 4배나 많은 수의 중공군이 몰려오는 것을 침착하게 기다리다가 20m쯤 앞에 이르렀을 때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착검 돌격하여 이들을 격퇴했다.

<2편>에 계속

<일간투데이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유엔군 및 아군의 공격으로 사살된 적군인 중공군 전사자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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