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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하얼빈의거 108주년 특집 II]_‘안중근 좌상’ 피규어 제작 30세청년 김은총“저와 비슷한 나이에 죽음으로 義를 알린 그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 류재복 기자
  • 승인 2017.10.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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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16세때 중국유학, 큰 세상 보면서 미국에서 대학졸업
13년간의 유학생활 통해 애국애족의 정신 길러


【서울=서울뉴스통신】 8.15광복절 72주년을 열흘을 앞둔 지난 8월 5일, 김은총 청년이 직접 본사를 방문, 기자를 찾아왔다. 그는 얼마전 “류재복 기자님의 블로그 <류재복기자의 취재일지>를 보고 전화를 드린다”면서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특히 8.15 광복절을 앞두고 꼭 기자님을 찾아 뵙고 싶다”고 말해 이날 기자와 김은총 청년과의 만남이 이루어 진 것이다.

72주년 광복절에 맞춰 <잃어버린 영웅, ‘도마 안중근의사 좌상’>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한 김은총은 중학교 3학년때 엄마의 권유로 중국에서 첫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린 나이로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보는 중국인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런 생활을 적응하는데는 실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린 나이다 보니 매일 밤 그는 “나는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하면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만큼 중3, 16살 소년에게는 타지에서의 생활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래도 중국인 친구들은 작은 나라에서 온 김은총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고 그의 중국어 수준이 늘어가면서 많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원래는 중국 대학교에 진학을 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꿔 또 다른 도전을 결심했다. 바로 미국 유학이었다. 김은총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중국에서 힘겹게 적응한 생활을 뒤로하고 좀 더 큰 곳에서 성장하고 싶어 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는 또다른 새로운 사람들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김은총은 또 다시 지독하게 힘든 외로운 유학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 환경이었다. 특히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으며 미국 사회속에서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은 여전히 약자였다.

미국에서 귀국후 안중근의사 일대기 뮤지컬 ‘영웅’보고 결심
안중근의사 기념관 측과 논의, 완벽한 고증거친 ‘리워드 제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총은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적응을 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작년 6월, 뉴욕 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이날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13년간의 유학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으며 과정과정마다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어려움들, 그리고 저 혼자만이 인내해야 했던 시절들은 저를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준 훈련의 시절로 너무도 유익했으며 한편으로는 늘 가고 싶어도 갈수 없었던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국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저의 친구들이 한국을 헬조선(지옥조선)이라 칭하며 해외생활을 하고있는 저를 부러워할 때 저는 영원한 타지인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그들을 부러워했다”면서 “졸업과 동시에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고 돌아와서 바로 시작했던 일은 먼저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제가 살아감에 있어서 당장의 수익을 쫓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고민을 하던중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영웅’을 보고 안중근 의사를 기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중근 의사는 젊고 젊은 날 홀로 외로이 일제에 맞서 싸우셨고 또 순국을 하시는 그 순간까지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제 나름대로의 작품을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이기에 ‘도마’라는 세레명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일제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이토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린 민족의 영웅이다. 대한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한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부당한 판결을 받고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비록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평화를 향한 그의 숭고한 뜻과 인품은 일본인 간수 까지도 감화 시킬 정도였다.

김은총은 “저와 비슷한 나이에 일제의 만행에 맞서서 끝까지 죽음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그분을 기억하고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던중 평소 ‘키덜트 매니아’였던 저는 안중근 좌상 피규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면서 그 후 완벽한 고증을 통한 제작을 목표로 올해 3월부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측과 지속적인 논의를 하면서 순국 직전에 남긴 안중근 의사 사진을 토대로 완벽한 고증 작업을 거친 ‘리워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향후 다양한 독립운동가들 피규어로 제작, 국민에게 보급 소개
Make pop제작 8월15일 크라우드펀딩 시작, 100% 성공


김은총은 “72주년이 되는 8월 15일, 길고 어두웠던 치욕의 역사 끝에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맞아 민족 영웅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는 도마 안중근 의사 좌상 피규어 제작 크라우드 펀딩 모집을 시작, 소기의 목적을 거두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전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생길 경우 일제 침략에 맞섰던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인의 성지(聖地)로 여겨질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어딘가에 유기한 뒤 공식적인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김은총은 “저는 이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된 금액 중 제작비를 제외한 수익을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프로젝트를 다시금 시작 할 수 있도록 기부할 생각이며 계속해서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을 피규어로 제작하여 일반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잊혀져가는 그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것이 제가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랑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측의 역사적 고증과, 공식 인증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 본관‘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좌상’을 소장 가능한 크기로 재현해 보급하는 김은총 청년의 프로젝트는 지난 8월 15일에 시작하여 9월 22일에 펀딩을 마감, 제작된 안중근의사 좌상(가로-세로10cm, 높이17cm)은 안 의사가 이등박문을 암살한 108년이 되는 10월 26일부터 40,000원에 보급될 예정이다.

김은총은 “저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여전히 어렵고 또 아무도 가지않는 홀로 걸어가는 이 길을 걸으며 어려울 때마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합니다. 그 분도 역시 고독했고 외롭고 끝까지 의로웠다고 생각하면서 제 삶의 신조인 ‘견리사의 견위수명’을 되새기며 최선을 다해 펀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데 대하여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류재복 기자  snapress@sn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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