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18일 인사동 상록갤러리…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평화’와 ‘희망’을 화폭에 담아

▲'동양화가 · 수필가 · 시인' 3관왕을 쓴 청계 양태석 화백이 12월13일~18일 인사동 상록갤러리에서 ‘‘희수(喜壽)전’을 개최한다.

▲문화는 소중하고, 예술은 귀중하다. 예술을 만드는 그 사람은 더욱 귀중하다
▲손놀림이 빨라 ‘오토바이’별칭, 8자 병풍 하루에 2개 그린 적도

【서울=서울뉴스통신】 이상숙 기자 = “그림은 원초적으로 부적의 역할을 합니다. 좋은 그림, 평화로운 그림을 보면 마음에 좋은 기운이 움틉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의 주제가 장수, 부귀, 행복, 평화, 희망이었지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그 중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평화’와 ‘희망’만을 뽑아내 화폭에 담았습니다. ‘희망새싹’을 함축한 추상화죠. 누구에게든 아무리 보아도 편안한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2월13일부터 18일까지 인사동 상록갤러리에서 개최하는 ‘희수(喜壽)전’ 준비로 바쁜 청계 양태석 (77 ‧ 상록갤러리 원장)화백은 후배 화백들에 둘러싸여 담소하던 가운데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묵직한 연륜으로 원로 화가 및 신진 화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나누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큰 대들보로 평가받고 있는 양태석 화백은 “창작품에는 화백의 기운이 들어가야 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라며 그가 그린 그림들이 이 사회의 평화와 희망을 위해 조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화가이자 수필가 그리고 시인으로 지난 50여 년간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온 양태석 화백. 그는 한국화단의 대표작가이자 화수(畵隨)로 인정되고 있으며, 한국의 전통 회화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문화마을협회 이사장 서요한씨는 양 화백의 ‘희수전’ 축사를 통해 “양태석 화백은 한국화단의 원로로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고, 국력의 잠재능력을 자랑하는 우량자산”이라면서 “그는 인간 친화적이고 수행정신으로 살아가는 작가로 항상 낮은 곳에 머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시대정신”이라고 소개했다.

양태석 화백은 2년전 경남 하동군의 문화 예술 발전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동양화를 비롯한 자신의 작품 151점과 소장하고 있던 다른 화가의 동양화 58점, 서양화 22점, 서예 20점, 판화 8점 등 총 259점을 기증해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의 화풍은 창작력에 있어 강점이 있다. 또 다른 화가 보다 많은 채색 실험을 통해 칼라를 개발해 쓰는 점도 남다르다. 자주 사용하는 색은 녹색 30퍼센트, 청색 30퍼센트. 이번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은 평소 사용하던 오방색(五方色 ‧ 청,적,황,백,흑 ) 중 녹색과 청색을 특히 많이 사용했다. 녹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치료제로 활용했다. 청색은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마음을 정갈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으로 사용했다.

양태석 화백의 스승은 ‘화단의 이단자’로 불렸던 풍곡 성재휴. 근대 채색화가의 1인자다. 미국 ‘빌리지 미술관’ 금상 수상. 홍대 강사. 수도 여자 사범대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양화백 나이 35세 때 청진동에서 만나, 성화백이 10년 전 작고하기 전까지 주말마다 만나 함께 북한산 형제봉을 등반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양태석 화백의 그림은 삼원색을 중심으로 한 색채 배열은 한국적인 정서의 발로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평면에 가까운 굵은 단선 화법으로 형태를 묘사하는 것은 단청 기법과 유사하다.”라며 “양태석 화백의 ‘희망 연작’과 마주하면 생명체가 일제히 꿈틀거리는 듯싶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희망은 압축된 실상이며 그는 추상적인 이미지로 변환한 새싹을 통해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냈다”고 평가했다.

1941년 경남 산청 출신인 양화백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여 ‘그림 천재’로 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내 미술시간에 동양화를 그려 칭찬 받았다. 77년 경주에 있는 개인 미술 전시회를 갔다. 그림을 보았더니, 그가 더 잘 그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독학으로 그리기에 매달렸다. 1년여 그려 출품한 그림이 1979년 경남 최초로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다.

이어 1982년 상경. 직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양 화백은 종로구 인사동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다른 화가들과 교류를 트기 위해 화랑과 갤러리가 많이 모인 인사동을 선택했다. 미술 비전공자인 만큼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예술세계 확장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무명 시절엔 그림이 안 팔려 연탄 살 돈이 없어 냉방에서 잠자기도 했지만, 국선 특선을 한 후에 생활 형편이 좋아졌다. 88년 서울 롯데 백화점 화랑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120퍼센트 팔렸다. 이미 다 팔렸는데, 비슷하게라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아, 그림에 더블 딱지가 붙은 게 여러 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생긴 수익금으로 슬하의 아이 3명을 공부시켜 결혼까지 시켰다.

요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림이 팔려야 재료도 살 텐데 경기가 안 좋아 그림이 안 팔리고 쌓여만 간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인사동 한 복판에서 갤러리를 꾸려가기 위해 빚돈을 내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경에 놓였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막내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만류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아크릴로 그린 고호 자화상을 너무 잘 그려, 학교에서는 아버지가 대신 그려주었느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양 화백은 미술가는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교재도 잘 해야 하는 팔방미인이어야 한다면서 아들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것을 끝내 막았다. 막내아들은 현재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양태석 화백은 “50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 시장의 양극화가 너무 심합니다. 부를 누리는 몇몇 화가도 있지만 대다수 작가의 생활은 어렵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예요. 제 경우 도선과 국선에서 각각 입선 ‧ 특선했지만, 리어카를 끄는 사람들의 수입조차도 안 되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인사동 화랑 중 6곳이 월세를 내지 못해 문 닫았어요. 유명작가 몇 명을 제외하면 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이예요”라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50년전 사람이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나라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림 한 점에 2조원의 가치가 있으니, 화가들이 이렇듯 나라에 좋은 일을 합니다. 문화는 소중하고, 예술은 귀중합니다. 그러나 예술을 만드는 사람은 더욱 귀중합니다. 우리나라 미술문화를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술가를 육성할 수 있는 국가적 시책이 나와야 합니다.”라고 간곡히 말했다.

젊은날 그에게 붙여진 별칭은 ‘오토바이’.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해서 그랬다. 그는 손이 빨라 그림을 그리든, 작문을 하든 빠르다. 성격도 급한 편이다. 그림을 몇 달씩 그리는 것도 있지만, 한 2~3일에 작품 하나 그릴 때도 있다. 8자 병풍 한 폭을 하루에 2개씩 그린 적도 있다고 했다.

양태석 화백 주변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또 하나의 다른 별칭은 ‘만물박사’. 나이 많고, 인사동에 터 잡은지 30여 년 되는 터줏대감 이다보니, 18개의 이런 저런 자리에서 고문을 맡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미술품이 진품인지 여부와 가격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그간의 미술 활동을 하며 얻은 경험을 활용해,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감정 평가하며 국내 전시를 도우며 국내 예술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양태석 ‘희수전’에 내놓은 ‘희망새싹’에 사용한 검정색에 대하여 그는 “모든 그림의 근본은 검정에서 나와요. 무게감도 있지요. 나무나 새싹이 올라올 때 잘 관찰해보면, 줄기에 검은빛이 잔뜩 차있습니다. 회색은 작품의 품위를 높이고 무게감을 잡기 위해 사용했지요” 그가 그린 그림은 호당 50만원에 팔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양태석 화백이 그린 200호에서 6호까지의 그림이 전시된다.

그가 좋아하는 선배 화백은 서민 작가 박수근이다. 서양화 근대미술가로는 김한기 작가를 좋아하며, 해외작가로는 피카소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5년 전 그의 화실을 방문한 꿈까지 꾸었다. 피카소의 화실에서 피카소를 만나, 제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피카소의 화실에서는 콘테이너가 그림을 그리는 시스템이 활개를 치고 있어 꿈속에서 화들짝 놀랐다는 내용이다.

국전심사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고려대 사회교육원 미술과 교수, 대한민국서법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한국산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미술협회 고문, 국전 작가회 회장, 미술단체 한국 심맥회 회장, 문인협회 재정위원, 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수필 추천작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복도 많아 동경아세아 현대미술 초대작가상, 제1회 소운문학상, 경향아트페어 대상, 대한민국그랜드파워 대상, 2015 국제예술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토속 음식 중 된장찌개를 좋아하며, 애창곡은 ‘갈대의 순정’이다. 주량은 술 한 잔. 담배는 한 모금도 못 피운다. 양태석 화백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이복순여사가 엄격하게 키우면서, “술. 노름. 담배는 절대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점에 충실히 따랐던 3남 3녀중 네 번째 효자다. 어머니는 10년 전 돌아가셨다.

시집 2권 등 총 20권의 저서를 출간한 양화백은 내년부터 단편 소설 4~5편을 써서 책 한 권을 펴낼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화가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주제로 소신껏 이야기를 만들어 전개해 볼 생각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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