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월 北납치…북한에서 17편의 영화 찍어…1986년 오스트리아 방문 중 8년만에 북한 탈출

▲ 1978년 1월 북한에 납치,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원으로 17편의 영화를 찍었던 최은희씨. 1986년 8년만에 북한 탈출, 10년 이상 망명 생활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분단 여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원로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故) 최은희씨는 이날 오후 서울 자택 인근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별세했다.

'세기의 여배우' '분단 여배우'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최은희씨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최은희씨는 1942년 연극으로 데뷔했으며 영화 '새로운 맹서'(1947년)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마음의 고향'(1949)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등에 출연했다.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최은희씨는 1953년 신상옥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결혼했다. 이후 신 감독의 '꿈'(1955년) '춘희'(1959년) '자매의 화원'(1959년) '성춘향'(1961년) 등에 출연했다.

1976년 고인은 신 감독과 이혼했으며 1978년 1월 홍콩에 홀로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같은 해 7월 역시 납북된 신 감독을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17편의 영화를 찍는 등 김정일의 지원을 받았다. 이후 1986년 오스트리아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 부부는 이후 10년 이상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최은희씨는 2015년 중앙일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도 북한 공작원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린다"면서도 "납치를 명령했던 김정일 위원장은 다 용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 않았나. 다만 그의 체제를 인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은희씨는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활동했다. 지난 2006년 남편 신상옥 감독을 먼저 세상 떠나보낸 후 건강이 악화됐다. 고인은 2010년 초반부터 신장 질환 등을 앓아 최근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최은희씨는 생전에 신 감독과 함께하면서도 개런티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돈 한 번 풍족하게 쓴 적도 없다고 고백하며,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제일 좋아하니, 장례식장에 틀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최은희씨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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