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민들 눈 높이 있어 ‘숲속의 파티’ 명품축제 가능”

【수원=서울뉴스통신】대담=김인종 경기취재본부장/글·사진=류재복 기자

-2018수원연극축제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한 소감은?
▶수원연극축제는 지난 20여년간 수원화성 일대에서만 열렸다. 그리고 타 지자체 공연 축제에 비해 캐릭터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소를 바꿔 축제를 치루다보니 자연에서 펼쳐지는 거리극, 서커스, 공중 퍼포먼스 등이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민프린지 무대도 이색 볼거리였다. 이번에는 또 지역 연극인과 시민이 주축이 된 추진위원회가 프린지 무대를 구성해 다양한 공연과 시민참여공연을 이끌었다. 이는 결국 수원시민들의 수준이 정말로 높았음을 반영한 것이다.
시민들은 프로그램을 짚어보고 찾아가면서 진지한 작품들을 즐겼다. 특히 야간에는 필룩스조명박물관의 협력으로 작품을 전시하고 조명아트를 설치해 공간연출도 시도했으며 이와 함께 실시한 부대행사도 관람객인 시민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이로인해 나의 구도와 계획으로 이루어진 ‘숲속의 파티’는 나 스스로의 작전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이번 연극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20여년간 주공연장이였던 수원화성에서 장소를 옮겨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캠퍼스 부지였던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열었다는 것이다. 13년간 방치된 농생대는 울창한 숲과 대학 캠퍼스로 옛 낭만이 공존하면서 인구 125만명의 포화상태에 이른 수원시에서 마지막 남은 녹색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힐링을 제공할 수 있는 자연의 장소를 활용한 것이 성공을 가져왔다고 본다.

-‘숲속의 파티’라는 슬로건이 아주 좋았다. 어떻게 정했나?
▶작년 12월 수원문화재단으로부터 2018수원연극축제 감독 공모를 받고 응모를 해 선출이 된 후 바로 현장을 가 보았다. 겨울인데도 숲이 있어 자연환경은좋았지만 축제의 장소로는 비교적 거친 장소였다. 또한 연극축제의 타이틀로도 맞지않는 장소였다. 그리고 기존의 이름으로는 인기가 없을 것 같아 신비감이 기대가 되는 ‘숲속’을 택했다. 또 즐거운 일과 기대감을 주는 ‘파티’를 정해 ‘숲속의 파티’로 주제를 선택한 것이 결국은 효과를 발휘했으며 시민들은 그 명칭에 큰 보답을 해 주었다. ‘숲속의 파티’는 거짓말이 아닌 실제의 파티로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내가 감독에 임명이 된후 수원문화재단과 수원시에서 행사 장소를 옮기고 야외공연, 거리축제 중심으로 치르자고 제안해 반가웠다. 거리예술을 더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기회가 생긴 것으로 여겼다. 재단에서는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특정공간연극(site specific theater)을 경기상상캠퍼스에서 구현해보자고 제안해왔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래서 ‘숲속의 파티’라는 구호를 내걸고 숲과 자연이 잘 보존된 이곳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든 것이었다.
경기상상캠퍼스에는 경사진 잔디밭, 언덕, 울창한 숲, 흙, 주차장, 건물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공연들이 서로 간섭을 덜 받을 수 있어 오히려 축제에 좋은 장소였다. 또한 인위적인 무대를 지양하고 기존 공간을 무대와 객석으로 활용하는데도 좋은 장소였다. 나는 1회부터 21회까지 화성행궁 일원에서 펼쳐진 연극축제를 지켜봤지만, 이번 22회째에 숲속으로 장소를 바뀐 것은 수원문화재단이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축제중에는 ‘인간모빌’ 등 인기있는 해외작품들이 있었다. 어떻게 선정을 했나?
▶지난해 12월 수원문화재단에서 연극축제 예술감독 임명을 받고 작품목록을 봤다. 우선 숲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그 결과 프랑스 익스프레스(프랑스)의 ‘인간 모빌’을 선정한 것인데 이 작품은 이번 축제 개막작품으로 낮과 밤, 2차례 걸친 야외공연에서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육중한 100톤 크레인에 매달린 8명의 장난감 병정 복장의 드러머와 여성곡예사의 아찔한 기예가 인산인해로 몰려온 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했다.
또한 주제에 걸맞는 숲속을 무대로 다양한 조명아트들도 좋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필룩스조명박물관과 함께 조명을 활용한 작품 10여점, 그리고 축제장 곳곳을 형형색색 수놓은 LED풍선, 점멸을 반복하는 반딧불조명등이 수 백 개가 설치된 나무들과 잘 어우러져 불빛 축제의 감성을 살리는 공간연출을 시도했는데 이것 또한 적중을 하면서 인기를 끌게 했다.
그리고 같은 공연이라도 장소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익룡을 형상화한 거대한 인형극 ‘버드맨’과 친환경 소재를 소품으로 사용한 ‘바람노리’ 등의 작품도 자연속에서 관람을 했기에 더욱 몰입감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무대와 객석도 최소화해 자유롭게 공연도 보고 음식도 먹으며 가족끼리 소풍을 온듯한 축제를 즐기게 했기에 이번 축제가 더 좋았다. 아울러 공연을 보고 웃으며 즐기는 와중에서 관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줬다고 본다.

-거리연극축제의 大家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감독을 한 축제,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축제가 있었다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년간 과천축제 감독을 맡았고, 춘천인형극, 2015~2016 서울문화의 밤, 2017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감독으로 축제를 지휘했다. 내가 거리예술 특히 과천한마당축제의 매력에 빠진 것은 실내극을 하다 거리예술축제 예술감독을 했기 때문에 처음엔 거리극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크지 않았다. 축제의 중심도 실내극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당극이나 거리극을 보면서 점점 거리극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고 결국 몇 년 전부터 실내극을 없애고 전면적인 거리예술제로 만들었다. 거리예술은 삶과 예술을 분리하는 경계를 거둬내고, 일상의 관객들에게 예술적 환상과 충격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또 거리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거리예술의 힘으로 이런 장을 만드는 것이 과천한마당축제였다.
12년 장수 감독을 한 과천한마당축제가 가장 큰 축제였다. 1997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와 한국연극협회 공동주최로 ‘세계마당극큰잔치 97 경기-과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과천시 야외공간에서 연극을 비롯한 탈춤, 마당극, 굿 등의 공연예술을 선보였다. 1999년 야외공연의 본질적인 의미를 논의하면서 ‘과천세계공연예술제’로 명칭을 바꿔 다양한 시도를 감행했다. 이후 축제는 두 차례 더 이름을 바꾸며 거리예술제로 가다듬어졌다. 이후 연극계는 과천한마당축제를 가리켜 “전통의 현대화를 시도하면서 우리나라만의 거리예술 문화를 정립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연극계, 특히 거리예술에 몸을 담게 된 동기 및 거리예술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외국어대학교 연극반에서 연극을 배웠다. 그 후 옆을 보지않고 외길만을 걸었다. 대학 졸업후에도 다른 길을 걷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도 연극을 했다. 그러다가 2003년 과천에서 살다가 과천축제 예술감독에 선정이 되면서 거리예술을 도입, 과천한마당극을 거리극으로 확대했다. 그후 나는 젊은 공연예술인들에게 거리공연을 권했고 또 유혹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거리극단이 무려 전국에 60여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내가 2009년 한국거리예술협회를 창립, 초대와 2대회장을 역임하면서 노력한 결과로 보며, 그후 안산국제축제, 서울거리축제, 고양호수축제 등 거리예술을 담당해 왔다. 지난 5월초에는 포항에서 거리예술 축제를 했고, 오는 8월중에 광명시에서도 거리예술축제가 진행이 된다.
거리예술축제의 매력은 무엇보다 활기다. 거리예술의 공통된 부분은 활력으로 거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크게 키우고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또한 조건에 맞추다 보니 활력있는 공연들이 많다. 축제의 의의랄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축제의 슬로건으로 관객들에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런 거리예술이 있었기에 이번 3일간의 숲속파티를 즐긴 시민들이 15만명이 된 것이다.

-경력, 그리고 좌우명이 있다면?
▶한국외대와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소극장 ‘알과핵’ 극장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공연예술축제협의회 회장(2004-2007), 한국거리예술센터대표(2009-2014), 과천축제 예술감독(2003-2014)을 역임한 뒤 서울문화의 밤 총감독을 맡았고, 서울연극협회 이사, 극단 ‘여름’ 대표, 연극연출가,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연극쟁이’, ‘유리 동물원’, ‘할아버지의 호주머니’, ‘쥐사냥’, ‘바보 신동섭’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신조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로 “나 자신의 예술관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며 “절대 비굴하면 안되고 또 아부도 안 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다. 이순신 장군께서도 말했다.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라는 명언이 있듯이 나는 목숨을 걸고 축제를 치른다.

-더 할말이 있다면?
▶나는 내가 훌륭한 예술감독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어디 가서 자랑한 적도 없다. 이번 ‘숲속의 파티’ 축제를 마치고 여러곳에서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는 축제사무국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탭들이 축제에 임했던 자부심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나는 축제경영은 잘 모르고 또 안한다. 그렇지만 룰은 지킨다. 룰이 틀리면 고치면서 가면 된다. 내가 중시하는 것은 신뢰다. 공연할 때 계약서도 읽지 말고 그냥 사인하라고 윽박지른다.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나는 배신한 적이 없다. 믿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믿지 못하면 얼마나 힘들고 소모적인가. 그리고 나는 예술인들에게 “예술을 배신하지 말라. 정도를 걷고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는 수 없이 반복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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