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많이 나오는 추세…물건 정직하고 바르게 사고팔아”

【수원=서울뉴스통신】대담: 김인종 경기남부취재본부장 / 글.사진:류재복 대기자 = 수원 화성행궁 안 공방 길에 가면 ‘그림방옥션경매장’이 있다. 이곳 경매장에서는 골동품(고미술품)들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가 되면 각종 그림과 공동품의 경매가 시작된다. 기자는 지난달 20일 오후 7시 경매현장을 찾아가 봤다. 대략 30여명이 모여 있었고 경매가 실시되고 있었다. 이곳 경매장 대표인 박복철(朴福喆)씨는 예향의 고향인 광주가 고향으로 올해 57세다. 박 대표는 40년 전 17세 때 누이가 운영하는 표구가계에서 매형과 함께 각종 그림들을 멋지게 담아내는 표구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사회 첫 발을 디뎠다. 그러기를 2년 그 후 서울로 상경해 용산극장에서 영화간판 그림을 그리는 친 형 밑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표구에 대한 기술을 2년간 익혔다. 그리고 다시 광주로 내려간 후 작지만 아담한 표구가계를 개업했다. 사장님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 5·18 광주 사태가 발발,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5.18사태가 마무리 되면서 박 대표는 가계를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왔다. 방위복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면서 건강이 좋지 않아 다시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상경, 서울 봉천동에 정착을 하면서 표구 가계를 차린 후 동생에게 맡기고 안양 박달재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방위 복무를 마쳤다. 이때 방위복무 중 22세의 박 대표는 기술이 좋아 현재의 부인을 만나 일찍 결혼을 해 지금은 36세의 딸과 35세의 아들이 있다. 어쨌든 자식농사는 일찍이 잘 지은 것이다. 그 후 박 대표는 20년간을 오직 표구제작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표구가 서서히 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골동품 취급이었다. 수원에 온 것은 1998년도였다. 2001년도에 장안사거리에 골동품가게를 차렸고 현재의 위치인 행궁 로에 온 것은 올 2월 이다. 그러니까 지난 2월 22일 정식으로 현재의 자리에서 개업을 한 것이다. “이곳 경매장을 찾는 사람들은 하루 약 50여명이 되지만 대개가 물건들을 팔려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서 “이런 현상은 그만큼 경제생활이 어렵기 때문으로 본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경제생활 어려워 집에 있는 골동품 많이 나오는 추세
젊은 자식들 無관심 부모들이 삶 마감으로 정리도

기자가 “경매가 있는 당일의 매출 상황이 어떤가?”라고 묻자 박 대표는 “그런대로 경매가 많이 이루어진다”면서 “주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물건을 내놓고 있는데 이 분들은 대개가 조상대대로 대대손손 물건을 물려받아 잘 보관을 해 왔지만 지금의 자식들은 골동품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서서히 생을 마감하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옛날 같으면 물건들이 집에서 나오지를 않아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비쌌는데 지금은 처치곤란으로 가격대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물건을 취급하는 업체가 전국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면서 경매장도 많아지고 있고 현재 수원지역에도 6개 업체가 골동품을 취급하고 있는데 경매장에서 경매를 통해 물건을 사 간 사람들은 가게로 오지 않는다. 이유는 경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더 싸게 살수가 있고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며 우리가 물건 취급을 하려면 문화재청에서 취급허가를 받아야 하고 매매에 대해서도 장부에 꼭 기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문제는 국내에서 50년이 넘은 물건들은 외국에 전혀 반출이 안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는 정부에서 정책을 바꿔야 할 문제라고 본다”면서 “지금 이곳 매장에 약 1만여 점의 물건들이 있지만 매년 1월에는 보유현황을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현재의 행궁로 매장 말고도 북수동에 150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골동품을 사고 파는 일을 하다가 경매를 시작한 것은 이제 불과 6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이날 기자가 박 대표에게 “특별한 물건을 좀 보자”고 하자 그는 한국화가 ‘석지 채용신’이 그린 중국장수 ‘관우’를 그린 그림을 보여줬는데 그림 좌우로는 유비와 장비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박 대표가 10년 전 우연히 싸게 구입을 했는데 현재의 값으로는 1억5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서울 동묘에 가면 관우의 사당이 존재를 하고 있다. 이어 박 대표는 조선시대의 호구단자를 기록한 200년이 된 물건을 보여줬다. 8代의 일가를 기록한 古書였다.

박 대표는 또 현재 파리에서 거주, 생존중인 서양화가 권순철의 자화상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권 화백은 이북출신으로 6·25를 경험한 사람이다. 2007년 당시 그의 그림은 호당 5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박 대표가 보유중인 이 그림은 8호로 “1500만원이면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창남 비행조종사가 운전한 비행기의 프로펠러에 대해도 설명을 했는데 “이것은 100년이 된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외국 반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 바꾸는 것 필요
100년 된 프로펠러·채용신 화가 ‘관우’ 최고가 보유

이날 기자가 경매현장을 취재 할 때도 낙찰되는 물건의 값들이 매우 싸게 느껴졌다. 또한 물건들도 살펴보니 중국산 도자기도 많았지만 그리 비싼 값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이날도 경매장을 찾은 사람들이 개개 물건에 대해 질문을 하면 상세하게 답변을 해 줬다. 그는 “저는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박리다매를 하면서 정직하게 바르게 물건을 사고팔고 싶다”면서 “이 물건들도 역사가 있기에 제가 아는 것 만 큼은 진실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박 대표에게 “골동품에 대한 역사를 알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현재 골동품 이라는 말 대신에 고미술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골동품은 적어도 100년 정도는 지나고 예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처음에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문화 유물들만을 가리켰으나 점차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오래된 장식품들을 모두 지칭하게 됐다”면서 “골동품 수집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신전에 귀중품을 보관하던 것에서 비롯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 중기부터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 골동품 수집이 이뤄지고 조선 후기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됐고 일제 때에는 전문적인 일본 고미술품 상인들에 의해 우리나라 골동품의 매매가 성황을 이뤄 많은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출됐으며 1970년대부터 경제부흥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활발하게 골동품 수집이 이뤄지고 있다가 현재는 많이 쇠퇴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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