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통해 치매가 치료될 때 삶의 보람 느끼고 있어”

【수원=서울뉴스통신】대담: 김인종 경기남부취재본부장 / 글.사진:류재복 대기자 =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치매미술치료협회가 주최하고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 운영위원회(대회장 신현옥)가 주관한 ‘제8회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의 수상작이 수원시미술관에서 전시됐다.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은 노인 스스로 문화 활동을 벌일 기회를 제공해 자아 존중을 향상시키고 노인문화의 다양성을 발굴해 공유하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다.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통해서 그동안 갖고 있는 옛 추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고 또 이 그림을 통해서 치매를 치료하도록 하기 위해 2011년부터 올해 8회째 미술전을 열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수원시미술관에서 신현옥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이 치매 노인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을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가 취재를 한 현장에는 노인 대상 미술 공모전 ‘대한민국 청춘미술대전’이 8회째로 치매 노인들의 작품과 일반 정상의 어르신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동기는?
▶충남 예산이 고향인데 수원으로 이사를 온지는 30년이 지났다. 옛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치매가 걸리면 노망이 들었다고 했다. 그 당시는 차 한잔의 여유도 없었다. 그냥 구름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았다. 오직 외출도 하지 않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시어머니를 위해 보살펴야만 했다. 그림을 그리는 나였기에 시어머니에게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게 해 보았다. 평소에는 음식 맛을 모르던 그 분이 그림을 그리면서 맛을 알았고 돌아가실 때는 된장찌개 맛이 너무도 좋다고 말을 하셨다.

-현재의 전시회를 통해서 느끼는 감정은?
▶34년간 이 전시회를 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다. 또 그로인한 성취감을 몇 배로 갖게 된다. 그리고 어르신들 역시 그림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갖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에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90세 연세가 넘으신 분들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내게 할 때는 나 역시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어떤 분들의 그림 인가? 그림을 소개해 달라?
▶일반 정상적인 어르신들의 그림과 치매 중에 있는 분들의 그림이다. 올해 신청하신 분들이 무려 800명이나 됐다. 그러나 심사를 할 때 잘 그린 그림보다는 의미가 담긴 그림들을 선정했다. 김장희 할머니는 올해 91세가 되신 분인데 이 분은 군경유가족으로 보훈복지타운에서 기거를 하고 있다. 이분의 남편은 6·25참전용사다. 남편은 전쟁에 불려가면서 “1주일 후에 돌아올께…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김장희 할머니는 남편이 “여보 내가 왔어”라면서 집으로 올 것 같아 지금도 문을 열어놓고 지내고 있는데, 그 분이 이번 전시에 내 놓은 그림은 태극기와 무궁화가 있는 특별한 그림이다. 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외국에 나간 손자손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그림 등 어린아이처럼 서툰 솜씨지만 도화지 하나하나에는 지난한 삶의 무게와 치매라는 병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곳에 선보인 작품들은 지난 1년간 미술치료교실에 참가한 노인 분들의 그림이다. 이 분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 가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 즉 심리적인 안정을 주고 기억력을 회복하고 있다. 처음엔 손이 떨려 크레파스도 잘 다루지 못하던 95살의 할머니도 이제는 도화지 위에 고운 민들레를 그리고 있다.

-수원시나 기타 단체에서 지원이 있는지? 그리고 가족들은?
▶수원시 문화재단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특히 염태영 수원시장님 부부의 관심이 각별하다. 언젠가 전시를 할 때 염 시장이 이곳에 오셨는데 내가 전시관에 없자 시장님 부부가 다른 곳에 있는 나를 찾아와 격려를 해 주신적도 있다. 이곳 전시회에 아주 애착이 크신 분이다. 물론 남편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자식들 1남 2녀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하고 있다. 남편은 그 옛날 치매에 걸렸던 당신의 어머니를 위해 내가 사랑과 정성을 쏟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알고 특별히 잘해주고 있다. 남편도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과 정성에 열중하고 있다.

-전시회를 해 오면서 특별한 사연들이 있다면?
▶어느 날 남자 어르신이 찾아와 나에게 “미술선생님이 첫 사랑 여인을 그리라고 해서 이렇게 그리고 나니까 삶의 희망을 가졌다”면서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고 또 어머니들은 특히 자식들에게 연연하는데 어느 해 어버이날, 남편을 일찍 잃고 생선 장사를 했던 할머니의 아들이 쑥떡을 만들어 와서 내게 준 적이 있었다. 생선 장사를 했던 그 할머니는 혼자서 1남 1녀를 키웠는데 그 분이 그린 그림에는 생선과 막내딸을 그렸다. 즉 딸도 어머니와 같이 생선 장사를 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딸은 지금 의대에서 의사를 하고 있으며 아들도 잘 살고 있다. 어떤 어르신들은 보름달을 그려보라고 하면 파도를 그리곤 했다. 그 이유는 옛날에는 초저녁에 일찍 불을 껐고 또 자식들이 울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놈이라 그렇게 우느냐?”라고 말을 해 울면서 달을 보니까 달이 정상으로 안보이고 파도로 보여서 파도를 그려서 내 놓기도 했다. 또 어느 분은 “내가 옛날에 사랑을 나눈 장소였다”면서 보리밭 고랑을 그리는 분도 있다. 치매가 있어도 그분은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를 알고 있기에 그런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기억을 살리는 그림들로 인해 호전적 증세를 보이는 분들이 많다.

-미술을 통한 치매치료의 효과는 어떤가?
▶치매미술치료에는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특별함보다는 생활의 모습, 그 자체다. 한 두 시간 시간을 내어 생각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 잘 그린 그림이라 여겨지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이며 그런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도화지를 채워나가면서 노란 꽃과 빨간 잠자리가 있는 가을 풍경을 그리면서 그림을 시작한 뒤로 생활 습관이 달라졌다. 특히 중증 치매 노인들의 그림속에서도 알 수가 있는데 처음엔 고향을 그려보라는 말에 알 수 없는 형체를 그렸던 80대 치매 노인이 3년 만에 전신주가 늘어선 북한의 고향 풍경을 기억해냈다. 이것이 바로 치료의 효과다. 때문에 치매미술치료 과정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수십 년간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를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치매의 원인은 고독이다. 가족끼리 대화가 없어서 발생되는 이유가 가장 크다. 공동체인 가족 간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의 생활이 개인위주로만 가족관계를 형성하다보니까 부모들이 외로움이 생기고 그 외로움으로 치매현상이 오는데 그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항상 가족끼리 함께 둥근 식탁의 생활이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에 대한 건의나 할 말이 있다면?
▶아직까지 국내에선 치매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있고, 더욱이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어떤 지원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다보면 고단한 삶을 살아온 어르신 세대의 삶의 흔적을 느끼게 되고, 그 분들의 눈빛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아른거린다. 현재의 어른세대는 일만 하며 달려왔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도 바라보기만 하지 자연과 함께 어떻게 즐기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 노령화 시대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정년퇴직 이후에 자신 앞에 주어진 많은 시간 속에 경험하게 되는 고립감과 쓸쓸함은 결코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다가선 공허함과 정신적 황폐함은 무엇보다 강렬한 고통으로 다가설 수 있다. 때문에 이에 대비한 노인복지 차원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노령화 세대는 젊은 세대처럼 빠른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노령화 시대에 노령세대에 맞는 적절한 문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것을 정부가 대응해 줘야 한다고 본다.

이날 전시회를 둘러본 한 지역주민은 “이곳에 들려서 신 회장에게 감동을 받았다. 치매로 고생하는 분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옛 추억을 그리게 해 이런 전시회를 갖게 한데 대해 존경과 감명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우리 시어머니도 치매 초기로 운동치료만 하고 있는데 이렇게 그림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오늘 새롭게 알게 돼 시어머니에게도 권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신현옥 회장은 치매노인들을 위해 오래전에 자신의 집을 치매미술치료의 공간으로 내어 줘 노인들과 함께 미술활동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간 정부의 지원도 없던 상황에서 수원시가 관심을 가져 해마다 개최가 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청춘미술대전’은 분명 노인들의 축제의 장이다. 특히 신 회장은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으로서 치매로 인해 잃어버린 어르신들의 추억을 미술활동을 통해 노인성 치매를 완화 시키고, 고령화된 노인들의 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독보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또 지난 1991년 사비를 털어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를 설립하고 수 십 년간 치매노인과 뇌졸중 환자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 및 치료, 예방활동 등을 벌여 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전공한 미술로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치매미술치료’를 연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신현옥 회장은 끝으로 “효의 도시 수원에서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이라는 어르신들의 문화축제가 열려 더 큰 자부심을 갖는다”면서 “황혼의 열정과 땀방울로 손끝에서 이루어낸 작품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내고 발전하는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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