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중 부원장(한국건강관리협회 대전충남지부)
◆절주 실천이 어려운 사회
절주가 어려운 이유는 그게 무엇인지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에 마시는 주량을 두 병에서 한 병으로 줄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절대 기준(4잔) 이하로만 마시면 되는 것인가? 만약 이런 기준이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다 적용될 수 있는 황금률이 있는가? 아니면 사람마다 다른 것인가? 마시는 술의 종류에 따라서는 어떤가? 선호하는 술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돼야 하는 것 아닌가?
절주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는 마셔야 할 주량과 심지어 선호하는 주종조차도 본인이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식에서 음주를 할 경우 마셔야 할 술은 대체로 이미 정해져 있다. 소주나 맥주 아니면 이것을 섞은 이른 바 폭탄주, 마셔할 주량은? 그것도 마시는 사람이 정하기 어렵다. 음주 회식 빈도도 다른 사람이 정한다. 결국 내가 마시는 술의 종류와 양과 빈도를 내가 아닌 남이 다 결정해 주는 셈이 되는 만큼 절주를 실천하기란 어렵다.
절주를 잘 실천하지 못하니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절주를 하지 못해서(해롭게 음주해서) 잃게 되는 건강수명 기간은 11.1개월이나 된다는 것이 연구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주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최근의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 의견들을 총정리해서 이에 대한 답을 만든 국가가 있다. 영국이다. 영국의 국민 절주지침, 정확하게는 저위험 음주지침(low risk drinking guidelins)을 보면 이렇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14잔(소주 두 병에 해당)을 넘지 않도록 마시되 적어도 2일은 금주해야 한다. 즉 일주일에 5일 이하로 술을 마시돼 총 마실 수 있는 양은 소주 2병이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양보다는 일주일에 마셔야 할 총량을 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지침을 준수하면서 마실 경우 음주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을 최소로 낮출 수 있으며 이는 남녀간에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 지침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 지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알코올은 1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마실 경우에는 암 발생과 아무 관련이 없는 주량은 없다. 지침이 정한 범위 내로 마신다면 암에 걸릴 위험을 최소로 적게 하는 것일 뿐이고 음주로 인한 암 발생을 없애려면 안 마셔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마실 경우에는 조기 사망과 만성적인 질병이나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시는 음주를 10년 넘게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질병들로서 암, 뇌졸중, 심장질환, 간질환이 있고 신경계나 뇌에도 폐해를 입을 수 있다. 물론 폭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금주를 하면 금단증상을 가질 정도의 사람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며 술을 줄이고 싶은 의지가 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면 의사와 상의해서 상담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시지 않을 권리…음주 강요자는 폭력 행위자
술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 다 달라진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음주로 초래될 수 있는 결과는 마신 사람에 따라 다 다르며 동일한 사람이라도 어느 시기에 누구와 어떤 속도로 마시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렇기 때문에 위험이 없거나 안전한 주량은 얼마라는 것을 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일주일 동안에 마셔야 할 총량을 고려한 범위 내에서 한 번에 마시는 양을 제한해야 하며 천천히 물이나 음식(안주)과 함께 마셔야 한다.
술자리에서 명심해야 할 또 다른 것은 음주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예상하고 대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을 하지 않으려면 대리운전을 생각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하며 회사의 회식 상황이라면 음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말실수를 염두에 둬야 하고 자기통제를 잃은 적이 있었거나 혼자 남겨져서 위협에 처한 적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특히 잘 넘어지는 사람이거나 신체나 정신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음주할 경우 문제가 악화될 소지가 있는 사람,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 임신을 했거나 예정인 사람, 자동차를 포함한 기계를 조작 할 예정인 사람일 경우에는 음주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영국이 마련한 지침이지만 과학적으로 치밀한 근거에 기반해 만든 것이라 우리 사회의 절주 지침으로도 적절해 보인다.
이런 지침을 잘 지키려면 음주자 자신이 이 지침을 잘 숙지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음주자가 음주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야 한다. 절주 실천을 쉽게 하려면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음주는 이 지침 범위 내에서만 마신다”거나 술을 거절할 권리를 주장해도 문화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야 한다. 밥을 다 똑같은 양으로 먹자고 주장하지 않듯이 주량을 강요하지 말고 마시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줘야 한다. 밥을 강요하듯 술을 강요하는 인간관계는 바로 갑질을 하는 것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노은중 한국건강관리협회 대전충남지부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