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최장근무 51년…최고령 78 현역 기자…한길어문상 최초 수상…현 한국어문언론인협회 회장

【서울=서울뉴스통신】 이상숙 기자 = 정복수(鄭福洙) 현 한국어문언론인협회 회장이 27일 오전 4시 24분 췌장암 말기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51년 동안 교열기자로서의 외길을 걸어온 정복수 회장은 별세 직전까지 아시아투데이 교열부장으로 재직했다.

정복수 회장은 언론사 '3최(三最)'의 신화를 이룩한, '교열계 거목(巨木)'으로 후배들에게는 전설이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51년 근무한 '최장근무(最長勤務)'가 '1최'요, 연령 78세로 '최고령(最高齡) 현역 기자'이라는 수식어가 '2최', 그리고 2016년 제28회 한국어문상 중 '한길어문상'을 '최초수상(最初受賞)'한 것을 '3최'로 꼽았다.

'교열계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들은 바 있는 그는 1967년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부산일보 교열부 수습기자로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경향신문(1969년), 서울신문(1972년), 디지털타임스(2000년)를 거쳐 아시아투데이(2007년~2018년)까지 다섯 군데의 신문사에서 교열 기자로만 일했다. 서울신문은 28년 동안이나 재직 후 부국장으로 퇴임해, 그에게는 친정이나 다름없다.

평소 "신문은 '국민의 교과서'예요. 좋은 문장으로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신념을 내비치며 별세 직전까지 '저널리즘 언어의 전도사'로 활발한 어문활동을 펼쳐왔다.

친화력이 있고, 주변 동료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어문관련단체인 두 개 모임의 수장이다. 언론사 교열담당 전·현직 간부들의 리더인 '한국어문언론인협회장'이다. 또 미디어언어연구소 자문위원장을 맡아, 휘하에 13명의 자문위원을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평기자 시절에도 어문연구에 천착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신문 교열기자 이민우(李民羽)사우와 매일 퇴근 후, 어문토론의 시간을 가졌고, 교열기자회 소식지인 '말과 글'의 전신인 '소리' 4면을 제작해 신문사에 돌리기도 했다.

50년 전 일간지 규모는 4면에 불과했으나, 기자 한 두 명이 한 면을 전담했다. 그러나 현재 메이저 신문의 면수는 30면에서 60면임에도 불구하고, 신문사마다 최소인원만을 배치하고 있다. 이는 컴퓨터를 이용한 오프셋 인쇄기술의 일반화 영향 때문이다.

평소 그는 선후배들 앞에서 "컴퓨터가 문장의 뜻까지 파악해 따라잡지 못해요. 출판이 있는 곳에 교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고 주장했다.

경남 진주 출신. 진주 사범학교와 동아대 상학과를 나왔다. 미망인 하옥순씨와의 사이에 아들 두 명. 장남 지영은 명지 전문대 산학취업처장 겸 소프트웨어콘텐츠과 교수고, 차남 지현은 SK 이노베이션 변화혁신팀 팀장이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6호실, 발인 29일 오전 10시, 연락처 02-2227-758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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