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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홍학선 수원서예가총연합회 공동회장(심원당 갤러리 대표)“서예란 우리 일상에 녹아있는 희·노·애·락… 삶의 일부라 생각”
  •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 승인 2019.05.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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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학선 수원서예가총연합회 공동회장이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서예에 대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김동초 대기자 = “그냥 순수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과 일명 ‘국전’이라는 매머드 작품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수차례 수상했다. 거기에 경기도 미술대전에서 특선, 우수상을 받고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단다. 그리고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한국서예협회 수원지부, 한국서예가협회 수원지부, 한국서도협회수원지부의 총 4개 단체가 모인 수원서예가 총연합회 공동회장이란 중책도 역임하고 있다. 이런 이력이라면 고수의 풍모가 풀풀 풍길 터인데 말투도 순박하고 그냥 해맑은 미소를 띤 얼굴이 그냥 ‘순수’ 그 자체였다. 대화를 하며 항목별 질문을 했는데 매끄러운 부분이 전혀 없다. 거칠은 통호밀빵이 입안을 맴도는 느낌이다. 아! 오늘 애 좀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벼루의 먹물처럼 흘러든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적셔오는 편안함이 진정한 쟁이의 면모를 말보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스며들게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장인을 만났다는 행복감이 한지위의 맑은 먹처럼 번진다. 45년의 담채와 같은 내공이, 속이 얕은 속물스런 한 인간을 감동으로 매료시키는 순간이었다.”


▲ 수원서예가 총연합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 수원서예가 총연합회란 한국 미술협회, 한국서예협회, 한국서예가협회, 한국서도협회의 총 4개 전국단체의 수원지부들이 모여 결속된 단체입니다.
수원서예가 총연합회는 2003년 당시 수원시예술협회란 이름으로 발족되어 수원시 문예관광과와 함께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에 있는 중국 산둥성 제남시와 교류전 협약을 맺은 바 있으며 당시 수원 측에선 삼계 노복환선생과 중국에선 장중정선생이 참여 협약식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교류전을 이어오던 중 2008년에 이르러 수원서예가총연합회란 이름으로 개명되어 도양 김병학선생이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저는 수원서예가 총연합회 17회부터 공동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교류전은 2003년 7월 첫 행사를 시작으로 격년제로 열렸으며 올해는 중국서예가들 11인이 수원으로 방한하여 오는 5월21일(화)~6월2일(일)까지 2주간 행사를 진행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서예나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심원당(深遠堂)의 뜻과 사업을 승계하시게 된 동기는?

- 처음의 한자는 심원당(心園堂)으로 마음의 동산이란 뜻입니다. 말 그대로 편하게 쉬어갈수 있다는 뜻으로 서예가들이나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란 뜻을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업을 승계한 이후 역학차원에서 깊고 멀리 역동적으로 더욱 발전하자는 뜻으로 멀遠자로 교체를 해서 한글표기는 그대로지만 한문표기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심원당은 꾸준하게 상승 발전하며 서예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수원의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인 안식처 역할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심원당을 승계운영하게 된 동기는 서울 인사동에 박당 김용복선생의 가르침을 3년 받고 수원으로 다시 내려와 표구사업을 했지만 순수한 작품정신에 몰입해 영업을 하다 보니 현실성이 결여됐고 친구나 동호인들의 집합장소 성격변해져서 운영이 어려워져 사업을 정리하고 쉬던 시기에 일을 도와 달라는 제안이 들어와 심원당으로 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운영하던 중 심원당 사업주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자연스럽게 운영을 맞게 되었고 벌써 심원 당은 45년이란 세월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서예란 무엇이며 서예와 연을 맺게 된 계기는?

- 서예란 우리 일상에 녹아있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예 안에는 피가 있고 살이 있으며 뼈가 존재하는 우리인체와도 같습니다. 서예를 멀리 높이 생각하시기 보면 가까운 우리네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는 게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예자체로 생명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저마다의 개성이 늘 존재합니다. 입문동기는 어렸을 적부터 글과 그림에 취미가 있었고 늘 즐기는 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수원향교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러 다닐때 ‘소헌(사)’ 채순홍선생이 같이 공부를 하자고 권유로 자연스럽게 서예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 삼경(三鏡)이란 호를 갖게 된 동기와 뜻은?

- ‘삼경’(三鏡)은 세 개의 거울이란 뜻입니다. 뒤에 스스로 비친다는 ‘자조’(自照)란 자가 더 붙여 삼경자조(三鏡自照)라고 합니다만 주로 삼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조는 서예작품의 위에 찍는 두인으로 쓰이고 삼경은 협서에 찍는 호로 쓰입니다. 삼경의 뜻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세 개의 거울이란 뜻으로 첫 번째 거울은 과거, 두 번째 거울은 현재를 뜻하며 세 번째 거울은 미래를 뜻합니다. 중국 당태종 이세민이 나라를 다스리며 정치 모토였다고 하는 말로 과거로 현재를 대비하며 그 반성위에서 미래를 연다는 뜻입니다.


▲ 대한민국 미술대전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신 소감은?

- 수많은 상은 아니 구요. 기본만 한 겁니다. 덤덤하지요. 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도미술대전 서예부분‘에 출품해 특선 및 입선 그리고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국전’에서는 특선 2회와 입선 4회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수상결과로 10점의 고과 점수(특선3점, 입선1점)를 획득, 합계점수 10점이 넘으면 초대작가로 선정됩니다.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상도 받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꿈으로 접어버렸답니다.


▲ 한국미술협회와 수원미술협회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그냥 저마다 맡은 일,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거지요.
현 직무에 계신 분들이 열심히 하시어 우리나라 미술협회의 앞날에 진정으로 공헌하시길 바랍니다.


▲ 우리나라 표구대가이신 박당 김용복선생의 제자가 된 계기는?

- 학창시절부터 먼 인척 분이 표구 사업을 하고 계셔서 오가며 자연스럽게 표구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는 과정에 생긴 아쉬움으로 더 수준 높은 표구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 연유로 우리나라의 표구대가이신 박당 김용복선생의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을 발견하고 군 제대 후 무작정 서울 관훈동으로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선생님은 깊게 생각해보라 하시며 거절을 하셨지만 제가 배움의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허락을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저 보다 어리지만 먼저 문하생활을 하는 두 명의 사제가 있었고 그 들의 텃세로 인해 험난한 수업을 3년 정도 받았을 당시 박당 선생께서 돌아가시었습니다. 선생님 큰아드님은 고위공직에 계시는 분으로 사업승계가 어렵다며 저를 추천하셨지만 선임사형들께 양보를 하고 고향인 수원으로 내려와 자그마하게 표구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 서예를 비롯해 모든 미술작품을 완성하는 표구에 대한 의미는?

- ‘표구’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일상에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다 보니 일상화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말에는 “장황. 또는 ‘배첩’이라는 아주 좋은 우리말이 있는 걸로 압니다.
표구는 작가들이 혼을 다한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재창조를 뜻하며 유지·보존을 위한 일종의 복원공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들이는 정성과 튼실한 재료에 비하면 요즘의 표구시장은 너무 저평가 되어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표구는 장인의 손을 거칠 때만이 그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시 말한다면 화룡점정(畵龍點睛)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곳 심원당은 진정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예술인들이 정통재료를 통한 정성과 품격 있는 제작을 인정하시어 꾸준히 방문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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