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갈비집 이름 훈장골이라 붙인 이유죠”

▲ 간장으로 양념한 두툼한 갈비와 직접 만드는 반찬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는 이정관 수원 훈장골 대표.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김동초 대기자 = 수원훈장골 건물로 들어서며 세련된 한옥 전통의 인테리어가 매우 격조 높다고 느꼈다.
옛날 주화인 통보를 바탕으로 어우러진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고객으로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어 일단 기분이 업 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조용한 객실로 인도를 하는 선비 같은 모습의 이정관 훈장골대표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차분하며 섬세한 모습이 음식의 정갈함도 함께 풍겨내고 있다.
그는 전남광주에서 시작해 20년 동안 식자재 납품을 하며 거래처인 서울로 올라와 호매실에 지금 위치한 훈장골의 위치를 발견하고 운명처럼 자신의 사업장자리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자리도 어찌 보면 한사람의 인생과 사업을 연관시킬 때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이 자리를 운명처럼 만났고 거기에 둥지를 틀었단다.
건물이 무척 웅장하고 세련되서 필자는 부러움과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을 보았을 때 감동을 느끼기 까지 했다.
이제 음식 업에 대한 그의 지론을 들어보니 본 자제인 갈비원료와 맛에도 큰 비중을 두지만 자신은 부차 식품인 반찬거리에도 상당한 정성을 기울인다고 했다.
본 음식인 갈비는 맛과 품질에 치중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하지만 그 외 부대 식품인 반찬거리에서 좀 더 많은 관심과 개발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섬세하면서도 깊은 서비스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갈비 집에 흔히 사용되는 시래기재료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서 평생처음으로 우리나라 최북단 양구에 위치한 최고의 6·25격전지였던 ‘펀치볼’까지 찾아가 재료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단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신뢰와 감동이 저절로 스미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덕담 끝에 본격적인 인터뷰로 들어가기 전 음식업중 왜 갈비업을 택했느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보편성을 내세웠다.
갈비는 계절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만한 재력과 견실한 인프라라면 좀 더 큰일을 해도 되지 않겠냐는 필자의 물음에 아직은 자신이 부족한 게 많고 자신을 따르는 식솔이 60여명이 넘는 관계로 그들과의 진솔한 인연에 소홀할까 두렵다고 했다.
그의 에너지에 비해 의외로 소박하며 여리다는 감정이 들면서도 인간적인 진솔함이 오늘 날의 그를 있게 한 것 같아 차라리 존경스럽다는 감정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순간이었다.

▲ 호매실동 훈장골 갈비집이란 상호를 쓰시게 된 사연은?

- 옛날에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을 훈장이라고 했죠. 저는 가정교육의 시작은 밥상머리 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그리고 인성이 대부분 그 당시에 형성된다고 봐요.
우리나라는 대대로 가부장적의 권위 문화가 지배적이었지만 늘 아버님을 비롯한 어른들과 마주하는 밥상머리에서 인생의 질서와 기초적 교훈 등 많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것 또한 우리나라 우리민족만의 장점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런고로 자연스럽게 서당에서 훈장님은 가정에서 아버님과 같은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들 중에 어른을 훈장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가족이 외식을 하는 날은 주로 고대하던 갈비를 먹으니까 갈비집에는 훈장님들이 많이 계시는 관계로 그 의미를 담아 훈장 골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 수원 호매실동에 정착하시게 된 동기는?

- 훈장골을 오픈하기 전 저는 20년 넘게 식자재납품에 관련된 사업을 해왔습니다. 몇 가지 사업을 구상하며 여러 곳을 가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르며 많은 곳을 방문했었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지금의 사업장 위치를 봤는데 왠지 모르게 아늑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를 다정하게 맞아주는 느낌이 강했어요. 집을 볼 때도 느낌이 중요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시장조사를 했고 음식점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답고 전원적인 호매실동에서 훈장골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2013년 시작을 했으니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많은 고객들이 훈장골을 방문해주셔서 정말 정도 많이 들었답니다. 정말 이곳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란?

- 조금은 뻔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시간과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매장에서는 사용하는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어요. 친환경 시래기를 사용하고, 저 농약 양파와 매실을 계약재배해서 사용하는 등 좋은 재료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구요. 물론 가격 측면에서도, 효율성 면에서도 사는 게 좋겠지만 반찬조차도 수원 훈장골 만의 특색이 나타나기를 바랐어요.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손님들은 여느 음식점과는 다른 훈장골 만의 맛을 알아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기본 식재료부터 직접 만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면 그 안에서 음식의 최고 덕목인 맛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타 지역에 비해 수원갈비가 유명한 까닭은?

- 광복 이후 수원 영화동에는 예전부터 큰 소시장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 환경으로 인해 자연히 소를 재료로 한 여러 음식들이 발전할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갈비가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 우수한 재료공급의 인프라 덕분에 예전부터 고급갈비집들이 많이 자리 잡으며 점점 더 좋은 품질의 갈비문화가 형성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수원시에서도 지역향토음식문화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정책을 펼쳐 수원갈비가 전국에서 으뜸으로 가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 훈장골이 비록 늦게 수원에서 시작했지만 식재료부터 조리과정 등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많은 고객 분들이 찾아주시는 수원의 명소가 되었고 지금은 유명한 갈비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서로 선의의 경쟁의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10년, 20년 후에도 갈비문화에서 전국최고의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것 같습니다.

▲ 음식업 종류 중 갈비업종에 대한 평가는?

- 오랜 시간 동안 갈비는 우리식단에서 최고로 선망하는 단골 외식메뉴였습니다. 저도 우리가족과 함께 경사스런 일이 생기면 항상 갈비 집에서 갈비를 구워먹곤 했어요.(웃음)
여전히 단골 외식메뉴인 것은 맞지만 다양한 음식들이 많이 생김으로 인해 고객들의 선택에 폭이 엄청나게 확장됨에 따라 예전에 비해서는 갈비 집을 덜 찾지 않나 싶네요.
음식문화쪽도 다양성이 대세인 현실의 흐름에 맞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원의 여러 다른 갈비집들도 그렇겠지만 저희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 훈장골 갈비만의 특징이 있다면?

-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양념 중, 간을 맞추는 방법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원갈비는 죽염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게 특징이라면 저희 훈장골 갈비는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있습니다.
수원갈비는 얇은 ‘포’의 개념이라면 저희 훈장골 갈비는 좀 더 두툼하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 수원시 요식업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서로 모두가 공생하며 꾸준하게 상생 할 수 있도록 현명한 대책을 슬기롭게 마련 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 모두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함께 더불어 가는 단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 아주 특별한 생일파티 등 많은 선행을 하시는데 대표적인 일은?

- 시각장애를 가진 분을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는데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음식을 마음으로 봐주시고 감사하다며 말씀하실 때 초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 생일에도 뵙기로 약속했는데 장아찌를 좋아하신다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 내년에는 더 맛있는 장아찌를 대접하고 싶네요.
저는 지금 훈장골이 잘 되고 있는 이유가 지역 주민 분들께서 많이 찾아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주민 분들을 위한 일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그 일부로, 올 해에는 호매실동과 금곡동에 사시는 어르신들께 식사대접을 할 생각이에요.

▲ 어떤 삶을 사시는 분을 존경하시는 지?

- 늘 도전하는 삶을 사시는 분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많은 분들께서도 기억을 하시겠지만 고 정주영 회장은 늘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하지 못하고 주저하기만 하죠. 그런데 주저하기만 한다면 이룰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 분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임자 해 봤어?”라는 문구입니다.
그리고 사회약자를 위해 늘 그들을 도우며 사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입지나 위치가 안정되면 진심으로 남을 돕는 일에 열중하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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