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수원=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 국가의 힘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문화 수준에서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대국의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문화를 창조하는 데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번 아이파크미술관이 기획한 ‘셩, 판타스틱 시티’전은 그런 아쉬움을 떨쳐내고 전국 최고의 지자체로서의 시격(市格)을 높였다.

시민들은 도시를 가꿔 나가는 문화의 주체다. 시승격 70주년을 맞는 수원은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도시다.

조선 최초의 신도시인 수원화성을 축성했다. 화성은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역사와 전통을 내뿜고 있다. 수원과 수원화성을 소재로 이 시대의 대표 작가들이 나섰다. 각기 다른 시각으로 회화, 설치, 사진미디어 등으로 나누어 총 22점의 이색적인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전시제목이 특이하다. ‘셩’은 방어시설인 ‘성(城)’의 의미와 함께 밝게 살펴서 헤아린다는 뜻을 지닌 정조의 이름 ‘셩과 성’을 모두 포함한 이중적 표현이다. 우리들은 정조의 이름을 흔히 ‘산’으로 알고 있으나 즉위하면서 ‘성’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좋은 작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를 더 큰 차원의 공간과 연결해준다.

위촉된 참여 작가들은 수원화성을 몇 차례 답사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전문 사학자로부터 듣고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수원화성과 정조를 작품으로 만날 수 있게 형상화했다.

수원이라는 도시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두 개의 성인 ‘수원화성과 정조(셩)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냈다.

조선시대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신사임당은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릴 대상을 꼼꼼히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라고 말했다.

10명의 참여 작가들이 수원화성과 정조가 지녔던 정신을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신작(新作)들은 가슴을 두들긴다.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 미래를 사유(思惟)하게 한다.

3부로 나눠 정조의 혁신이 켜켜이 쌓인 실체들을 보여준다. 전시1부는 정조의 삶과 수원화성에 담긴 이념에 주목한 민정기 화백의 작품이다. ‘봉수당을 복원하다’와 ‘서장대에서 본 광교산’ ‘유형원의 반계서당’은 지역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수채화 같은 맑은 색감과 자유로운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민정기 화백의 작품은 정조가 봉수당에서 어머님인 혜경궁 홍씨의 생신을 크게 모시는 장면에서 관람객들이 부친과 모친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서용선 작가는 ‘화성 팔달문’과 ‘정조와 화성축조’란 작품으로 정조의 실존적 삶에 주목했다. 짙은 색채와 형상의 불균형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정조가 보낸 무거운 시간과 극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나현 작가의 작품은 독특하다. 개망초, 클로버 등 귀화식물과 16세기 서양기술을 소개한 도서 기기도설을 결합한 ‘귀화식물도서와 선인문과 환경전’이란 영상작품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사용한 “거중기는 기기도설과 관련 있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전시2부는 개혁군주로서의 정조와 죽음 이후 미완(未完)의 군주로 남은 정조의 면모를 작품에 담았다. 최선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침대시트를 소재로 수원 팔달산의 형상인 ‘침대 성’을 통해 인종, 성별, 언어,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실존과 숭고함에 대해 관람객에게 질문한다.

김도희 작가의 작품도 특이하다. 전국에서 가져온 흙으로 하나하나 작은 봉분(封墳)을 만든 ‘만인융릉’이 시선을 압도한다.

융릉은 정조가 사도세자인 아버지와 혜경궁 홍씨 어머니를 합장하고 붙인 이름이다. 전시3부는 왕릉의 능침공간인 신성한 성역의 공간에 해당된다.

이이남, 김성배, 안상수, 김경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정조의 이상향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220여 년간 수원화성이 품고 있는 가치와 정신을 정상의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현대적으로 구현시킬까하는 사유가 캔버스에 얹혀있는 값진 기획전이다. 시승격 7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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