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상가시장은 내인생 중·후반부의 동반자와 같아”

▲ 박영진 시민상가시장 상인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김동초 대기자 =

수원 전통시장 사이에선 ‘왕회장’으로 불려
시민상가시장은 중년여성 의류 등 취급 전문
상가 옥상엔 호박넝쿨·수세미 등 심어 녹색천지
당장 시급한건 화장실·냉난방 등 시설 현대화

시민상가시장 상인회사무실 입구로 들어서는데 사과보다 더 큰 하얀 국화가 입구에 풍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옥상이 한여름에는 녹색의 정원이었다는 사전정보로 받은 느낌대로 겨울의 초입인데도 실내에는 화초들이 여느 식물원 못지않게 다양한 식물들이 자기자리를 뽐내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부장님과 실장님이 익숙하게 필진을 대한다.

언론에 대한 접촉이 많았던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았다. 박영진 왕회장님은 사모님 병 수발관계로 빈센트병원에 계신다는 전갈이다.

약 한 시간여의 텀이 생겨 바로 옆에 위치한 ‘지동시장’의 최극렬 수원전통시장상인회장을 만나 그 간극을 메우고 돌아오니 백발이 성성하지만 혈기와 풍채가 당당하신 어르신이 상인회장석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인사와 더불어 인터뷰취지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사진촬영을 시작했는데 표정이 근엄해 조금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바로 여러 포즈를 취해주셔서 순조로운 촬영이 되었다.

박영진 회장의 집안은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서만 400여년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가문이며 선대에는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농이었다고 했다.

수원에는 파장동에는 이씨, 정자동에는 조씨, 이목동에는 유씨, 조원동에는 용씨, 율전동에는 염씨, 그리고 천천동에는 자신의 조상들인 박씨가 대대로 터를 내려 살아온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3남1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파장초’를 거쳐 ‘북중’, 그리고 ‘수원농고’를 졸업, ‘경기대 상대’를 졸업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지식인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영진 상인회장은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에 입사해 공직생활을 시작했지만, 개척 정신이 강했던 탓에 퇴직 후 인근 임야 6.000평을 매입, 인부들과 손수 삽으로 그 넓은 대지를 일구어 과수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주로 복숭아와 자두나무를 키웠으며 수확한 과일들을 마차로 운반, 수원남문의 ‘공익상회‘, 역전 ‘장구상회‘ 등에 도매를 했고 ’여분‘은 서울에서 내려와 구매 해 갈 정도로 품질과 맛이 좋았다고 했다.

결혼도 과수원을 운영하던 25세에 했으며 23세였던 부인은 평택에 거주했던 관계로 중간지점인 ‘발안’에서 주로 만났으며 편지로 그리움을 전하고 약속을 하며 사랑을 키웠고 2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아내의 환심을 사기위해 당시에 발행되던 ‘주간여성’, ‘여화’ 등 여성잡지들은 모두 사서 전해 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고도 했다. 그리고 수원에서 데이트를 할 때에는 ‘중앙극장’에서 주로 외국영화를 같이 보았고 당시의 ‘황야의 무법자’ 등 서부영화는 모두 다 보았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졌다.

박영진 상인회장은 당시 4남매 중에 일찍 사업도 하고 대학도 졸업하며 집안 재산을 가장 많이 썼던 관계로 재산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을 내지 않고 형제들에게 양보를 했다고 한다.

해서 과수원을 10여년 운영하다 시민상가시장에서 수원시로부터 7평을 불하를 받아 사업을 시작, 아동복을 취급했고 서울 남대문으로 옷을 띠러(구매)가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67년에는 인천에서 운전면허를 따서 잠시 ‘코티나’택시2대를 운영하며 ‘운수사업’도 했지만 당시는 수원의 도로가 거의 다 비포장도로였던 관계로 고장도 잦았고 이익도 적어 운수업을 접고 아동복 쪽으로 전념을 했다고 했다.

물건을 띠기 위해서 당시는 기차를 타고 남대문으로 올라갔으며 점차 물량이 늘어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하는 ‘토픽’이란 17인승 버스를 사서 상인들을 태우고 물건을 합동구매 하는 등 남대문을 왕복하며 사업에 뛰어난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수원시민상가시장에서 사업에 뛰어든 박영진 상인회장은 수원전통시장 최초로 2005년 6월 14일에 인정시장으로 등록을 마쳤으며 그 때부터 수원시민상가시장에서 회장직을 16년째 맡아오고 있는 왕회장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시민상가시장은 시민백화점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상권형성이 부진했던 관계로 건물이 쇠락해 시민상가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이 되었으며 수원시 소유였다고 했다. 해서 지역 상권활성화차원으로 시민들에게 분양을 했고 지금의 시민상가 시장이 탄생했다고 한다.

당시 시민백화점은 길거리에 윈도우 타입으로 물건도 모두 안쪽에 진열을 해 매출이 거의 없었고 자연적으로 상권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처음 선택한 품목은 ‘자개’를 매개로한 가구 등을 취급했으나 재미를 못 보고 바로 아동복으로 전환, 장사가 ‘興(흥)’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자손들이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다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추석이나 명절 때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오죽하면 우리들에게 ‘설빔(옷)’이란 말이 나왔겠느냐는 표현도 곁들이며 표정이 아주 해 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시민상가시장자체가 얼마나 장사가 잘됐으면 한때는 사람머리만 보일정도로 ‘성냥 곽의 성냥’들처럼 고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고 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시장만의 특징을 묻는 질문엔 시민시장은 고객들이 거의 다 오래된 단골들이라고 했다. 엄마가 자식들의 옷을 사주고 그 자식들이 자라 그 들의 자녀들에게 옷을 사주러 오는 시장이 시민상가 시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빅사이즈가 대세인 중년이상 여성들의 의류를 주로 취급해서 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박영진 시민상가상인회장은 특히 화초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과거 과수원도 운영하며 자연과 식물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취향 같다.

한 여름의 시민상가상인회 사무실 옥상에는 호박과 수세미가 ‘地天(지천)’으로 열린다고 했다. 해서 거두어지는 호박으로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하고 옥상의 온도를 낮춰 건물전체의 냉방비를 절감하기도 한다고 했다.

평균 4도 정도의 온도를 낮춘다고 하니 한 여름을 감안해도 적지 않은 경비도 절감하고 공기도 정화하며 환경을 개선시키는 ‘힐링’효과도 톡톡히 본다고 했다. 참으로 자연친화적인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무실 임직원들도 자연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가 1시간 정도 진행 되었을 때 박영진 회장이 무언가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 묻는 필자의 질문에 부인 ‘병간’을 가야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뇌경변’의 중증장애인으로 벌써 30년째 병간을 하고 있다고 한다.

7년 전엔 다른 한 쪽마저 풍을 맡아 거의 식물인간처럼 거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간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4남매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 훌륭하게 성장시킨 것 만해도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고 했다.

끝으로 80년 이상 살아온 인생에 대한 소회와 삶에 대한 견해를 묻자 “소신껏 살자”라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답은 짧지만 그 안에 함축된 깊은 의미가 가슴을 살짝 흔든다. 부인의 병간을 위해 30년을 변함없이 곁을 지킨 ‘순애보’와 지금도 그 곁을 지키러 가는 박영진 시민상가상인회장의 모습에서 참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깊이 깨우쳐 주는 자리였다. 1시간 내내, 가슴이 흥미진진하며 뭉클했다!

▲ 회장님과 시민상가시장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저는 천천동에서 400년 이상 대를 이어 살아온 박씨 집안의 자손입니다. 수원토박이 중에 토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장초를 나와 북중과 수원농고를 거쳐 경기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진흥청으로 공직생활도 했지만 모험정신이 강해 임야 6000평을 개간해 과수원을 해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후일 시민백화점이 시 소유일 적에 7평을 불하받아 둥지를 튼 것이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상권이 죽었던 시민백화점을 오픈개방점포로 만들어 전통시장의 특색을 갖춰 상권을 부활시켜 한때는 잠시 방심하면 일행을 잃어버릴 정도도 활성화된 시장을 만들어놨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시민상가시장을 수원전통시장 중 제일먼저 인정시장으로 등록하였고 시민상가회장직만 벌써 16년째를 하고 있으니 제 삶의 중 후반부는 시민상가 시장과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지요“ 아내와 같이 천생연분이라고 표현하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 회장님이 ‘왕회장’이라고 불리시는 까닭은?

-‘왕’이란 표현은 결국 최고라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 별칭이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가 많아서 ‘왕회장’이란 뜻은 좀 서글프기도 하지요. 세상 누구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야 모든 인간이 저절로 먹는 거지만 삶의 질곡이나 노력은 저마다 개인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제가 ‘왕회장’이란 별칭을 얻은 것은 나이도 있고 흰머리가 무성해 아마 옛날 ‘사극’에 나오는 ‘선대 왕’과 비슷해서 일겁니다. 그리고 현재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에서 저를 나름대로 대우를 해주어서 붙여준 별명인데 제가 의식하지 않아도 별명처럼 또 그렇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수원의 ‘토박이’로서 아주 옛날의 수원의 역사부터 시장의 발전사까지 모두 겪어온 삶도 일정 부분 ‘왕회장’이란 별칭을 얻는데 일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듣는 만큼 수원의 전체 전통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왕회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과거 시민백화점이라 불리던 시민상가시장만의 특징이 있다면?

-시민상가시장은 아마 수원22개 전통시장 중 점포수가 가장 적을 것입니다. 과거 수원시 소유의 시민백화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 태생적으로 작은 것 같습니다. 흔히 백화점이라면 전통시장보다 시설도 잘 정비되고 품질도 높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당시 상권을 살리는 데 실패를 했고 그 이유가 점포의 물건들이 점포 유리창이나 기타 구조물 안쪽에 진열되어 있어 물건에 대한 소비자의 실감도가 떨어졌고 그런 관계로 자연스럽게 상권이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지요. 하지만 개인들이 10평 미만 씩 수원시로부터 불하를 받아 열심히 장사를 해 한때는 수원제일의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모든 전통시장들이 난전거리에서 시작됐지만 시민상가시장은 애초에 그 자리가 백화점으로 시작된 시장으로 다른 전통시장과 탄생부터가 다르고 현재는 아마 유일하게 대부분의 점포들이 중년여성들의 의류와 악세사리를 취급하는 시장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몇 발작만 걸어도 아는 이웃 아주머니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수원에서 제일 정겨운 시장이랍니다.

▲ 시민상가시장의 옥상이 호박넝쿨의 숲이란 얘기는?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작물에 관한 분야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퇴사 후 6000평이 넘는 과수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작물과 식물에 대한 친근감이 형성됐고 그런 습성이 몸에 배어 작은 공간만 있어도 그 곳에 화초나 야채 등을 재배하곤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한 해 살이든 여러 해 살이든 그 대상을 열심히 가꾸고 보살피면 반드시 자연이 인간에게 보답을 해주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식물들의 녹색 잎이나 열매가 주는 뿌듯한 보람과 상쾌함은 그 어느 곳에서도 얻기 힘든 희열을 줍니다.
시민상가시장사무실이 있는 옥상에는 호박이나 수세미를 심어 그늘도 만들고 공기정화는 물론, 건물전체의 온도도 낮춰 냉방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박도 80여 두를 수확해 식품으로 만들어 불우이웃도 도우며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비슷한 구조의 전통시장건물 옥상이나 다른 업종의 건물들 일지라도 옥상에 숲을 만들어 수원전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푸른 초원이 늘어서 있는 느낌의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봄을 기다리며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며 싹을 트는 상상을 합니다.

▲ 시민상가시장 상인대학에 대해서 설명하신다면?

-시민상가시장 상인대학은 2009년 6월 시민상가 상인회교육장에서 상인대학 입학식을 가진 바 있습니다. 당시 김용서 수원시장이 명예학장으로 위촉되셨고 2주로 수강과목은 의식혁신, 고객만족특별서비스에 중점을 둔 기본과정과 상품구매, 상품디스플래이 등 판매기법 중심의 심화과정 등 단계별 교육을 통해 상인들의 경영능력개선과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상인대학입니다.
당시 50명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상인대학은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하고, 중소기업혁신전략연구원에서 위탁교육을 실시하며, 전액 국비로 지원 운영되는 상인대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일인이 운영하는 상가이기에 수업참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시민상가시장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있다면?

-시설 현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주차장이나 화장실 등 시장을 찾는 고객들의 편익을 위한 부분입니다. 수원의 대부분 전통시장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시민상가시장도 지난 1월 원인불명의 화재로 인해 화장실과 냉 난방기가 소실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상인회 자금으로 복구를 완료하여 화장실은 정상작동이 되나 냉난방은 아직도 한겨울의 추위에 대비해 시급한 실정입니다. 시와 상의해 조속하게 처리, 철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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