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1월의 독립운동가&6·25전쟁 영웅' 선정·발표

▲ 국가보훈처.
【서울=서울뉴스통신】 윤대헌 기자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정용기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발표했다.

또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살신성인 정신을 실천한 박평길 육군 병장을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2020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6·25전쟁영웅은 관련기관과 개인 등의 추천을 받아 내외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공적 등을 논의해 선정된다.

경북 영천 출신인 정용기(1862년 12월13일~1907년 9월2일)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침략 책동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고종은 정용기 선생의 부친인 시종관 정환직을 불러 의병을 일으킬 밀지를 내렸고, 이에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받들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정용기 선생은 부친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1906년 1월께 영천창의소를 설치하고, 권세가를 지어 일본인들이 들어와 문명과 종사가 무너지는 것이 을사 5적 때문임을 지탄하고, 역적들과 왜적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대한독립만세의 기치를 들고 모두 함께 의병으로 나설 것 등을 호소했다.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을 펼쳤던 정용기 선생은 청하군 죽장으로 이동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1907년 9월 전사했다. 또 선생이 전사한 후 부친 역시 일본군 영천수비대에게 잡혀 대구로 압송 중 영천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에 보답하고자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25년 제주읍 이도리에서 태어난 박평길 육군병장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참전을 결심하고, 부인과 자녀를 남겨두고 9월 1일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1950년 10월 보병 제11사단 13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에 편성돼 전북지역의 북한군 패잔병 주력부대를 분쇄했고, 1951년 4월에는 동부전선으로 이동해 제9중대 2소대 분대장을 맡았다.

하지만 1951년 6월 강원도 고성군 564고지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정부는 박평길 병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51년 9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