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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인호 동수원우체국 집배원 선임팀장“우편배달 30년 외길…비가오든 눈이 오든 뚫고갑니다”
  •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 승인 2020.01.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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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동수원우체국 집배원 선임팀장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았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김동초 대기자 =

사강우체국에서부터 집배원 생활시작
지금은 편지보다 소포가 많아 더 힘들어져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해 제일 나중에 퇴근
일이 그저 즐겁고 천직이라는 생각에 하는것
집배원들 홀대받는 사회적 저평가 아쉬워

오후 4시의 동수원 우체국 현관 우측, 우편물을 발착하는 창구가 분주하다. 우편물을 운송하는 탑차 트럭이 가득 실은 우편물을 입구에 내려놓고 있었다. 2020년 새해 첫 신년 인터뷰를 위해 취재진이 동수원우체국에 들어 설 때 눈에 들어온 광경이었다.

턱에 찬 숨을 밀어내며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가니 김춘옥 물류실장이 환한 미소로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해 준다. 상냥한 김 실장의 안내로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인 박인호 집배원 선임팀장을 만나러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넓은 우편물 분류공간에 여러 명의 집배원들이 우편물 분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쪽에는 갓 올라온 듯한 우편물 자루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주소지를 분류해 칸칸에 정돈하는 이들도 집배원들의 고된 업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로 한참 우편물 분류에 정신없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부드럽고 반듯하게 생긴 외모와 작지만 탄탄한 체구의 느낌이 드는 인물이었다.

바로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인 박인호 동수원우체국 집배원 선임팀장이었다. 수인사를 나누고 인터뷰에 필요한 사진 컷을 찍기 위해 우편물 분류 현장, 그리고 배달용 오토바이와 새롭게 투입 될 전기자동차가 주차해 있는 지하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처음엔 박인호 팀장의 수줍고 여린 성격 탓에 자세와 포즈가 몹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지만 점점 나름대로 열심히 협조해준 덕에 그런대로 괜찮은 컷을 건질 수가 있었다. 이어 늘 피상적으로만 훑어보던 우체국의 풍경이 눈에 익숙해지며 집배원들의 노고가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터뷰자료를 준비하기 위한 한고비를 넘기고 사무실에 들러 본격적인 대담에 들어가기 위해 필기도구를 챙기며 한숨을 돌리며 박인호 선임팀장의 표정을 살피니 마치 면접을 들어가는 신입사원처럼 살짝 긴장된 모습과 순수함이 어우러져 속으로 미소가 피어나기도 했다.

필자는 박인호 팀장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따뜻한 믹스커피가 마시기 좋게 식을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갔다. 먼저 그의 고향을 물어보았다. 시흥군 수암면 성포2리라고 했다.

그 옛날 시흥군이 엄청 컸었다는 얘기다. 서울의 영등포와 서초구의 양재동까지 시흥군 이었다고 하니 가히 그 넓이의 크기가 대단히 넓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안산시로 편입이 돼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으로 당시에는 집 앞에도 ‘뻘’이 있어 ‘게’나 ‘망둥이’ 들이 지천으로 깔렸었다고 했다. 안산에서 ‘정재초’와 안산중을 거쳐 체육특기생(복싱)으로 안양의 양명고로 진학을 했다고 했다.

웰터급으로 전국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나가 패한 후 자신의 한계를 느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완구업체에 취직을 해 88년 서울 올림픽 때 호돌이 마스코트를 만들기도 했다고 했다.

그 당시가 1982년으로 집안이 ‘고잔 신도시’ 개발로 약간의 보상을 받아 화성시의 ‘사강’으로 내려가 방앗간을 운영했었다고 했다. 서울생활을 끝내고 박인호 선임팀장은 수송병과로 군에 입대를 했고 벽제에 있는 군단사령부로 발령이 나 군단장 비서실근무를 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며 아련하게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85년 3월, 제대 후 화성의 집으로 내려가 아내와 결혼을 했고 당분간 생계를 위해 남양에서 5년 정도 염전생활을 했는데 몹시 힘들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인호 선임팀장의 우체국과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고된 염전생활을 하고 있을 때 동네 이장이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보았다가 우체국간부와 함께 자신을 찾아와서 우체국 집배원근무를 제의해 그때부터 ‘사강 우체국’에서 본격적인 집배원의 생활이 시작됐다고 했다.

당시 집배원생활을 상시근무로 시작했기 때문에 급여가 적었던 관계로 자녀 둘을 부양하며 생활을 하기 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2년의 상시집배원근무를 거쳐 시험을 봐 드디어 정규집배원으로 승격, 생활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시집배원제도는 2020년이면 종료될 것이라는 말도 덧 붙였다. 당시 시험과목이 국어, 국사, 영어, 한문 등을 보았다고 했다. 결코 쉬운 과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91년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 후 1달 정도가 지나 수원우체국으로 발령이 나며 지금까지 30년 동안 집배원으로서 한 길 만 걸어왔다고 했다. 한마디로 집배계통의 ‘달인’이 된 것이다. ‘수원우체국’과 ‘사강우체국’의 차이점에 대해서 묻는 질문엔 도시와 시골차이가 아닐까 하는 대답을 했다. 사강은 당시도 도시의 변방이었고 모든 생활이나 기반시설 인프라가 열악한 그야말로 시골이었다고 했다.

수원으로 올라오니 시설과 주위의 빽빽한 건물 등 모든 것이 사강에 비해 편리하고 복잡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우편물의 양도 사강에 비해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았다고 했다. 그 중 대부분이 편지란 말도 했다.

그 동안 우편배달을 하며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 묻자 박인호 선임팀장은 잠시 침묵을 하며 생각에 잠겼고 이어 나지막이 한 숨이 세나왔다.

언젠가 매우 가깝게 지내던 우체국근처의 지인이 교통사고를 내 법적문제로 사고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보험회사가 가해자인 지인에게 보낸 ‘등기 우편물’을 자신이 지인의 책상위에 배달해 놓고 나왔는데 못 받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자신이 금전적으로 병원비는 물론 시간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여린 성격에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해 한때 대인 기피증이 생겨나기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모질지 못한 심성으로 인해 다시 주위와 동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오고 있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김춘옥 물류실장의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에 대해서 묻는 질문엔 바로 대답이 나왔다. 얼굴도 살짝 상기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당시 세류동에 있던 비행장에는 다수의 미군병사들이 주둔해 있었고 그들이 한국에서 파견군복무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 여성들과 사귀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 파병 복무를 마치고 귀국을 하면서 그들이 한국의 옛 여자 친구들과 계속 서신왕래를 했지만 일부는 연락이 끊기거나 뜸해지며 한국의 여자 친구 소재지가 불분명 한 경우도 여러 차례 발생했었다고 했다. 해서 본국으로 귀국한 미군들이 수원에 있던 여자 친구들에게 보낸 우편물이 종종 수신자를 찾지 못해 되돌아가거나 파기되기도 했다고 했다.

박인호 선임팀장도 이런 우편물을 취급하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주소지가 불명이 된 수신자(미군의 옛 여자친구)를 끝까지 추적해 찾아내서 우편물을 배달해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우편물을 전달하고 내용물을 현장 확인을 한 결과, 미군이 보낸 우편물 안에 거액의 달러교환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신자가 너무 감격하고 고마워하던 것에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박인호 선임팀장은 우편 내용물의 중요도를 떠나 오직 우편물이 전달자에게 끝까지 무사하게 전달되어지는 것을 당연한 천직으로 여겼던 진정한 직장이며 집배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오늘 날의 집배업무에 대한 차이점을 묻자 91년 당시엔 편지가 우편물의 대부분이었는데 점차 인터넷을 통한 상품주문이나 기타 거래가 우편으로 많이 취급되어 지금은 소포가 우편물의 대부분이라며 조금 더 육체적인 피로가 심해졌다고 했다. 이어 집배업무는 서비스업에 속하는 관계로 사회적 인식이 낮아 집배원들이 홀대를 받으며 ‘노고’에 비해 제대로 된 저평가되는 것에 대해 몹시 아쉬워하기도 했다.

우체국에 집배물량이 몰리는 화요일은 평상시 물량인 1만 통보다 무려 60%이상이 증가한 16,000통 정도로 집배원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고 했다. 새벽부터 5톤 트럭이 8대정도가 들이 닥치며 우편물 분류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박인호 선임팀장은 강제사항이 아닌데도 화요일은 항상 5시 쯤 출근해 상당량의 우편물을 미리 2~3층에 배분해 놓고 직원들이 출근해 수월하게 업무를 시작 할 수 있도록 늘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이나 공치사가 전혀 없이 그저 당연한 일과인 것처럼 덤덤하고 업무를 해오고 있는 것에 대해 김춘옥 물류실장은 전 직원을 대신해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박인호 선임팀장의 출근시간은 9시 출근시간인 다른 직원보다 3시간이 앞서는 새벽 6시 이전에 출근을 하며 타 직원들보다 항상 늦게 퇴근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일이 즐겁고 집배원직업이 천직이라서 라는 간결하고 명쾌한 답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특별소통기간인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에는 우편물량이 엄청나게 증가하기에 ‘위탁택배’사업을 통해 처리하며 그래도 배달물량이 처리되지 못하면 집배원들이 한 달 정도는 ‘당번’을 정해 근무하며 근무 비상체제가 발동한다고 했다.

현재 동수원우체국의 편제를 묻는 질문엔 집배실장 밑에 5팀(광교팀, 영통팀, 매탄팀, 망포팀, 원천팀)이 있는데 박인호 선임팀장은 광교팀을 맡고 있으며 가장 ‘고참’이라고 한다.

박인호 선임팀장은 동수원우체국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아버지같이 직원을 감싸주고 아껴주는 국장님과 항상 세심하고 친절하게 자신들을 지원해주는 물류실장님과 과장님을 어머니같이 생각한다고 했다.

직장과 직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확고해 보이는 순간이다. 동수원우체국의 박인호 선임팀장은 사강우체국에서 상시직으로 시작해 91년 정규직으로 발령, 2020년 현재까지 30년의 집배원 생활을 해오고 있는 그야말로 현장의 배테랑이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시민들을 위해 30년을 한 결 같이 집배원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인물이다. 인터뷰 말미에 삶에 대한 자신만의 ‘좌우명’을 묻자 “淸白家風(청백가풍)”이라고 한다. 필자는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다. 재차 뜻을 묻자, 세상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공무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심성과 자세가 엿보였다.

박인호 동수원우체국 집배원 선임팀장은 말 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일선 삶의 현장에서 힘들고 험한 공무원의 길, 그리고 집배원의 사명을 누구보다 충실히 지켜온 사람이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우리사회의 든든한 대들보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음지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아직도 우리사회가 살만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바닥으로부터 애잔한 감동이 이는 인터뷰였다.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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