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수원=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 수원의 행궁거리에 수원문학인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에 가면 80이 넘은 원로시인이 아침마다 신문을 들여놓고 휴지를 주우며 주변을 관리한다. 그 원로시인의 곁에는 세 사람의 동네 어르신이 함께 하신다. 한 어르신은 젊은 날 제약회사의 사원이셨고 한 분은 유명신문사 기자이셨다.

추위가 조금 가라앉은 이월 어느 토요일 한 어르신의 제안으로 행궁동에 있는 그 분의 자택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 자리는 일반 점심식사자리가 아니었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상차림에 몇 십년 묵은 고급주를 곁들인 구 순 가까운 어르신의 생신상이었다.

세 어르신은 시조와 한시를 넘나들며 옛 선비들의 풍류를 음미하셨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총기와 너그러움과 자애의 눈빛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며 마음 푸근해 지는 환대는 감격 그 자체였다.

고향에 계신 아버님과 같은 동 연배이신 그 어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하시며 세상 끝나는 날까지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곳 하나 정갈함이 묻어있지 않은 그 집안의 모습은 정말 감히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관이었다. 옛 모습 그대로인 한옥을 얼마나 잘 가꾸어 놓으셨는지 우리나라의 평범한 가정집 중에 최고 중의 최고였다.

담소 중 서랍장 위에 올려놓은 사모님과의 여행사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젊은 날 미인소리를 들으셨을만큼 고우신 모습이 행복해 보이셨다.

그 눈길을 읽으셨는지 조심스럽게 사모님 말씀을 하시는데 가슴 뭉클한 것은 왜였을까.

뇌경색으로 몇 년 전부터 거동을 못 하시는 사모님을 옆방에 모시고 사신 날이 꽤 오래 되셨단다. 이제는 쾌유될 수 없을 만큼 병환은 깊어져서 성한 모습으로는 돌아 올수 없는 시점에 있다고 하시며 그래도 살아있어 많은 의지가 된다고 하신다.

말씀 속에 울어 나오는 삶의 내공이 훌륭하시다. 이저저러한 말씀을 들으며 우리 인간사에 생로병사는 기정사실이지만 이 세분들처럼 겸허한 마음으로 인생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터 한 끼의 식사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날이었다.

이런 날 수원의 인문정신이 살아 있는 행궁동이라 그런지 요소요소에 배어있는 수원의 스토리는 언제나 정조대왕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마련인데 이 날 세 어르신의 삶에서도 엿볼 수 있는 수원의 정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수원문학인의 집에 그 어르신들은 왜 오시고 살펴 주시는가?

아마도 수원문인들에게 거는 기대 때문이리라. 올해로 수원문인협회에서는 제 51호 「수원문학」을 꽃피는 봄 사월에 발간이 될 예정에 있다.

그날 문인들은 책 나눔 행사도 하고 인근 시민들과 소통의 장도 마련할 것이며 인문학강좌도 할 것이다. 수원의 어느 시인은 셰익스피어의 생가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Stratford upon Avon)의 타운 전체가 세계적인 관관명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 어마어마한 예술관광자원의 의미와 가치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했는데 수원도 인문학 도시인 만큼 그렇게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대목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가 큰 우리 수원도 어느 나라에도 지지않는 독보적이며 인문학적인 관관명소로 거듭나고 그 기저에 「수원문학」이란 이름의 대명사가 명실상부하게 부각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구순이 다 된 어르신이 가꾸신 행궁동의 그 한옥집처럼 수원전체가 품격있는 도시로 변모하고 인문학적 문화유산이 세계에 알려지고 그 스토리를 담는 수원문학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와 꿈을 동시에 가져 본다.

그러려면 먼저 수원문학인의 집이 변모해야할 것이고 그 곳에 드나드는 문인들의 정신이 맑아야 하며 수준높은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수원문인들은 삼삼오오 수원의 인문학을 논하고 정조대왕의 시정신이 담긴 어평을 옮겨 적은 「시경강의」를 논하며 세월을 풍류하는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

수원의 뿌리는 깊고 튼튼하며 수원의 거대한 인문학의 나무가 새 잎을 내고 또 내는 그날 까지 「수원문학」은 길이길이 빛날 것이며 무궁히 발전할 것을 기대해 본다.

T.S 엘리엇의 의미있는 전통에 대한 견해를 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수원의 자랑스런 역사의 뿌리를 잘 숙성시켜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옛날과 오늘 날의 가교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수원을 품는「수원문학」이라는 전제이며 과제일 것이다.

엘리엇은 다시 말한다.

"전통"은 무의식처럼 우리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맥락에서 글을 쓰게 만드는 "이념적 장치"로서의 동인(動因)이다. 개인의 재능은 전통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재능과 전통이 역동적인 대화적 관계를 유지할 때 살아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수원문학」의 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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