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명분 중시하면서 소신과 용기 지닌 정치인 돼야”

▲ 김기정 수원시의회 의원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글·사진=김동초 대기자 =

하루도 빠짐없이 발로 뛰며 현장 누벼
'정치를 위한 정치' 지양 '행정정치' 주력
공원 · 도서관 · 예술고 유치위해 분주
산악회장 오래 맡으며 인맥 두터워져
같은당이라도 날카로운 비판 서슴찮아

첫해엔 입찰 자격조건이 되지 않아 구청에서 발주하는 5천만 원 미만의 공사들을 주로 수의 계약을 통해 따냈고 그런대로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첫해에는 매출을 4억 5천 정도를 올렸고 다음해에는 9억, 그리고 2004년에는 13억 까지 매출이 상승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사업이 번창하며 사회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던 가운데 김 의원은 당시 영통지역에서 학부모들이 중심이 된 교육(초·중·고)운영위원장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정치입문의 계기가 된 김인종(전 도의원)의원을 만났고 그분의 권유로 영통지역(현역의원의 국회의원출마로 공석) 시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2004년 6월 드디어 정치인의 생활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김기정 의원은 지역정치계에 진출해 왕성하게 의정활동을 펼쳤지만 사업은 정치인으로서 병행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다고 했다.

우선 ‘지방자치법 제35조(겸직 등 금지) 제9항에 의거 사업에 관여가 불가능해 졌고 또한 브로커들의 극성으로 여러 가지 음해가 잇따라 도저히 사업의 진행이 어려워졌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로 인해 매출도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김의원은 수원사업장을 화성으로 옮겨 모든 사업을 아내에게 맡기고 의정활동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의정생활을 할 당시에는 하루에만 10~15건의 스케줄이 있었고 현장 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보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였다고 했다. 하다못해 너무 피곤해 “이대로 계속 잠이 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 였다고 당시 힘들었던 시절을 토로했다.

더구나 김의원은 수원 출신이 아니었던 관계로 주위 인맥이 별로 없었고 다른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며 남들이 ‘세’ 발짝 만 뛰어다녀도 될 일을 자신은 ‘열 발’을 움직여야 그 결과 나왔다고 했다.

그 당시는 심신의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발로 뛰며 최선을 다해 현장에서 답을 찾았던 관계로 2006년 재선에 성공,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2010년, 삼선에 실패하면서 시련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의원은 2014년 재도전을 통해 3선에 성공했고 지역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여세를 몰아 2018년 4선까지 정치인의 길만 20년에 가까운 베테랑이 되었다.

김기정 의원이 느끼는 ‘정치’ 특히 시의원으로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정치의 필요성이라면 바로 ‘행정 정치’라고 했다. 현실의 정치인들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이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게 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시의원으로 주민들과 근접해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시에서 펼치는 행정이 바로 주민들의 삶과 직결됨을 느낀 김의원은 ‘행정 정치’야 말로 지역정치들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정치가 성격에 맞느냐는 질문엔 의외의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자기성격에는 정치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숨도 쉬지 않고 했다. 그것도 20년 가까이 정치를 한 4선의원의 입을 통해서다. 하지만 맡은 바 일은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집념과 책임감이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지역구민들과의 약속이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구(망포1·2동 영통2·3동)에 ‘공원’과 ‘도서관’ 그리고 ‘예술고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현재는 을지병원 재단이 병원을 건립하고자 했던 부지가 GS건설에서 매입을 추진한 걸로 알고 있다며 잘 된다면 그 곳에 도서관과 체육관을 지어 시에 ‘기부체납’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하게 비췄다. 그러기 위해선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나름의 해법을 함께 찾기를 원하기도 했다. 현재 진행 중이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란 다짐도 함께 했다.

어떻게 사는 게 정치인이나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맞는가란 질문에는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명분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고 명분이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그걸 밀고 나갈 용기와 배짱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용서 전 수원시장시절에는 의회에서 시정 질문이나 5분 발언을 통해 시정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계속 던지자 “김용서 전 수원시장이 같은 당 사람끼리 너무한다며 좀 ‘살살’하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바에 한해선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과 신뢰를 베이스로 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최대치’를 끊임없이 도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노력하며 지금은 ‘신나무실 산악회’(구 영통산악회)회장을 13년째 맡으며 많은 인맥이 형성되었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자신이 산이 좋아서 산을 타다보니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산에 오르게 됐고 미흡하지만 그렇게 해서 오늘 날의 자신이 형성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자녀들에 관한 질문엔 31세 된 딸은 회사 교원을 다니며 안정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27세가 된 아들은 항공대학교 1학기를 마치고 공군에 입대해 무사히 전역, 지금은 한국항공공사에서 근무한다고 행복해 했다. 자녀들이 ‘영신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엄마’(아내)를 닮아서 인지 모두 머리가 좋다며 은근한 자랑을 하기도 했다. 딱딱한 정치얘기를 떠나 미소가 절로 번지는 순간이다.

김기정 수원시의회 의원과 인터뷰 내내 느낀 점이 있다면 ‘시원시원함’이었다. 어떤 분야의 얘기가 나와도 막힘이 없이 솔직하고 담백하며 명쾌했다. 어떨 땐 차라리 정치인이라기보다 ‘패널’이나 전문가와 가감 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눈 느낌이 들었다.

신뢰가 절로 가는 타입이다. 애써 자신을 포장하거나 연출함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진솔함으로 인해 즐거움과 진지함이 함께 배가되는 인터뷰였다. 수원시를 이끌 ‘재목’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棟粱之臣’(동량지신)이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기대를 해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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