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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광석 반딧불이 연무시장 상인회장"변화 추구하며 시대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살아남아"
  •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 승인 2020.03.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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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광석 반딧불이 연무시장 상인회장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았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글·사진=김동초 대기자 =

구시대 시장경영 탈피 위해 밤낮없이 연구
2019년 회장선거서 10표차로 중책 맡게돼
젊은층 함께하는 '야시장문화사업' 계획
낮엔 프리마켓 열어 다양한 컨텐츠로 승부
앞으로 상인들과 소통,협력해 시장 이끌터


서광석 반딧불이연무시장상인회장의 첫 느낌은 조용하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훤칠한 키에 사내다운 모습이었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차분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목소리엔 의지가 분명하고 힘이 들어있었다.

서광석 상인회장은 71년 충주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님은 23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8년 전에 작고하셨다고 했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早失父母(조실부모)’를 했다고 한다.

누구나 다 나이가 들면 고아가 된다고 하지만 나이 먹은 사나이가 자신은 고아란 표현에 웬 지 순수함과 ‘아동틱’한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충주에서 목행초와 미덕중학교를 거쳐 충주기계공고를 나왔다고 했다. 90년도에 부사관으로 입대 항공부대 헬기정비사로 근무, 5년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95년 10월, 중사로 제대를 했다고 했다.

제대 후 고향 충주에서 새한미디어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다 군대 주특기를 살려 97년 서산에 있는 ‘현대우주항공’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항공업계에 빅딜(삼성·현대·대우) 바람이 불어 三社가 ‘KAI‘로 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우주항공에서 7년간 근무를 했던 서광석 상인회장은 당시 三社 중 현대우주항공이 가장 강성노조였던 관계로 회사동료들 대부분이 KAI에서의 근무가 어려웠고 반 이상이 기아자동차(광명 소하리)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서 상인회장은 KAI에서 근무를 원했지만 회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삼성 측에서 홍성이나 창원에 있던 직업훈련소에서 6개월 간 의무교육을 시키는 바람에 현장 복귀가 지연됐고 소속은 KAI였으나 실질적인 출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급여만 제공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는 노골적인 퇴사 압력이었으며 결국 서 회장은 2002년 빅딜 10개월 만에 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직장을 접은 서 회장은 2002년 말 수원으로 올라와 원천유원지에서 ‘장수촌’이란 백숙식당을 운영하던 이모와 이모부에게서 식당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5년 후 2008년 파장동에서 자신만의 ‘장수촌’을 개업했는데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조류독감이 유행을 했고 매출이 평소의 1/10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월세도 낼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 되자 근처 건설현장의 인부들에게 새벽 식사를 제공하는 일명 ‘함바 집’에서 1년 동안 식사를 제공하며 사업과 병행,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가운데 조류독감이 물러가고 매출이 어느 정도 회복 될 즈음 건물주의 부도로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며 본의 아니게 분쟁에 휘말려 들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이해관계자들의 충돌로 인해 앞마당에 블록을 쌓아 식당출입이 봉쇄됨에 따라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보증금도 밀린 월세를 몇 개월 치나 제하고 나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서 회장은 사업을 접고 평소관심이 많았던 부동산 경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연무시장의 ‘땅땅 치킨’을 소개받고 인수를 결정, 연무시장과 연을 맺게 되었고 전통시장에서 삶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연무시장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며 8개월 만에 시장상인회의 사무국장자리를 맡아 시장 일에 관심과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1년 4개월 정도 ‘시장상인회’ 업무를 맡아 하던 중 2019년, 아주대 앞에 땅땅치킨 분점을 내며 사업을 확장하려했지만 일손이 모자라 연무시장 상인회 사무국장 일을 접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서 회장은 두 곳의 영업점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벅차 아주대 앞의 땅땅치킨점을 정리하고 연무시장 치킨점에 몰두하며 상인회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상인회장선거에 출마해 10여 표차이로 승리, 회장직에 취임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서 회장은 파장동에서 장수촌을 개업 할 당시부터 파장동 ‘방범기동순찰대’대원으로 지역사회에 봉사를 했으며 2017년부터는 연무동 지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인회장으로 등극한 서 회장의 취임포부는 변화를 추구하며 시대에 흐름에 맞게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구시대적인 시장경영에서 벗어나 고객이 찾아올 수 있는 계기와 동기를 부여 할 수 있는 그런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현재 반딧불이 연무시장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전통시장사업 중 하나인 문화관광 형 시장사업을 5년 동안 성공적으로 추진했고 2년 더 연속사업으로 연장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는 이 은숙 문화관광형시장사업 추진단장과 전 안 종국 상인회장의 업적이라며 그 성과를 이어받아 나머지 연장사업도 훌륭하게 마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 회장 본인은 젊은이들과 주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야시장문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낮에는 ’프리마켓‘을 열어 ’경기대 동아리팀‘들의 문화공연과 작품판매 등을 비롯해 먹거리개발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회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무겁다며 상인들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연무시장의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러기 위해선 연무시장의 자체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 광석 연무시장상인회장은 96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동갑내기라고 했다. 아내는 서 경석 회장의 친구와 대학동창으로서 우연하게 서 회장 집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친구가 소개를 해줘 자연스럽게 인연이 맺어졌다고 했다.

세 사람이 자주 어울렸고 동갑이라서 그런지 거리감이 별로 없었으며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난 지 3개월 만인 96년 12월에 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는 작은 형이 그 해 결혼을 해 약혼식만 올리고 같은 해를 피하려고 했지만 장모님이 연로하신 관계로 서둘러 같은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부인과 사이에 아들과 딸, 두명의 자녀가 있으며 23세 된 아들은 해병대에 입대해 부사관으로 복무 중이며 21세 된 작은 딸은 아주대 영문과에 2학년으로 재학 중이며 둘 다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었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훈 겸 좌우명을 묻는 질문엔 “화목하고 자유롭게 살자”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정체성이 있겠지만 타인과 화목하며 최대한 상대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서 광석 반딧불이연무시장 상인회장은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강하고 강하지만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란 생각과 함께 젊음과 장년의 사이에서 만 갖을 수 있는 패기와 노련함도 엿보이는 특별한 인물이었다.

반딧불이 연무시장이 일차 문화관광형시장의 관문을 거치며 어느 정도 발전단계에 이르렀다면 서 광석 상인회장의 임기 동안에 무한히 문화의 꽃을 피워 더욱더 성숙한 문화시장으로 완성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인터뷰였다. 기대해도 될 것 같다.


경기남부 취재본부 김인종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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