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도시계획,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법 개정해나가야”

이현구 수원시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현구 수원시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수원 = 서울뉴스통신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사진=김동초 대기자 =

 

수원 토박이…김진표 의원과 인연 정치 입문
시의원들과 가로주택정비연구회 만들어 왕성한 활동
매탄동 주민복지센터 조속한 착공위해 최선 다해

수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본사 편집장의 2년 선배인 관계로 몇 분간의 덕담시간이 주어졌다. 또한 편집장의 도의원 8년 지역구가 같아 공통분모가 매우 많아 이야기가 아주 화기애애(和氣靄靄)했다.

이현구 시의원은 1956년, 수원이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 정도 수준일 때 이의동(현, 광교)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산의초를 나와 수원북중과 수원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1975년 고등학교 졸업 며칠을 앞둔 1월 18일, 안양에 있던 현대 양행 전장부에 입사해 자동차 부품 을 생산·개발하는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전선 쪽의 파트를 맡았던 이현구 의원은 개발팀에 참여 6개월 간 합숙생활을 하며 초기 현대 자동차(포니)개발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했다.

1년 반 정도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 의원은 자신의 전기전공을 토대로 전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주로 취급하던 제품이 TV였는데 주로 금성과 대한도시바제품이 주로 수리의뢰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과 대우쪽 제품도 간간히 수리했다고 했다. 이현구 의원은 이렇게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성실하게 사업체를 경영했다.

1998년 IMF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인 리먼사태를 겪으면서도 오늘 날까지 꿋꿋하게 버텨 수원의 훌륭한 시의원으로 지역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이현구 수원시 도시환경 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다.

▲ 의원님의 성장기와 청년기는 어떠셨는지요?

-1950~60년대의 수원은 시골이었지요,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끼며 살았고 그래서 더욱 정겨운 시절이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초·중·고를 모두 수원에서 나왔고 인생의 시련과 질곡을 거치며 수원이 저의 모든것이 되었습니다.

제 첫 사업인 전파상도 수원 세류동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5세가 되던 1979년 9월 19일 논산훈련 소로 입대 신병교육을 받은 후 대기 중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사태가 일어나 몹시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통신가설병’의 보직을 받고 원주 통신훈련소에 갔는데 또 그곳에서 12·12사태가 터져 정말 사회가 혼란스런 시기였습니다.

통신훈련을 마치고 울진에 있는 해안1대대와 안동 36사를 거쳐 82년 6 월 18일 꽉 찬 33개월의 군 복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간 군대라 마음고생이 심했었습니다.

▲ 제대 후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제대 후 바로 농어촌 공사의 전기가설 하청 일 을 주로 하는 평택에 있는 ‘동아전기’에 입사 1년 동안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농어촌 공사가 주는 일을 하다 보니 작업장소가 거의 외진 농 · 어촌 산간벽지였고 작업환경이 열악했습니다.

드디어 83년 본격적으로 제 사업을 하기 위해 인계동에 ‘대명전기’란 상호로 전기공사업체를 설립했고 88년 매탄동으로 사업장을 옮겨 지금까지 성실하게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사업시작 당시는 자본이나 여러 면에서 취약했고 그만큼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사업을 일궈나갔습니다. 사업초기에는 주로 가정집 전기공사가 많았으나 차츰 공장공사 등으 로 규모를 키워나갔으며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며 관급공사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며 활동영역도 넓어졌고 지금 수원시 체육회장을 역임하시는 박광국 회장님(국제건설그룹)과도 연을 맺으며 일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 사업의 진행과정과 정치입문의 계기가 있으시다면?

-전기사업은 공사규모가 크지 않았고 단종사업으로 사업발전의 한계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8년 IMF 금융위기 때 국가와 국민이 모두 어려운 시기였지만 저희는 관급공사를 주로했던 관계로 오히려 약간은 사업이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못다한 학업을 위해 98년에 협성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 4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치입문의 계기가 된 것은 2004년 당시 수원 ‘정’ 지역에 김진표 의원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내려 온 시기였습니다.

당시 김진표 후보는 노무현정부에서 경제부총리까지 지내시고 내려온 분으로 수원 영통과 매탄동 지역에는 지역기반이 없었을 때였는데 하지만 저는 수원공고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었고 매탄 1동 주민 자치위원장과 영통구 범죄예방부위원장을 역임하며 지역구에 나름대로 광범위한 인맥이 형성돼 있을 때입니다.

김진표 후보는 저희 외사촌 형님과 초 · 중 동창이었던 관계로 친분이 있었고 선거운동원이 절실했던 김진표 후보는 사촌형님을 통해 저를 만나 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김진표 후보의 캠프에는 당원이 80여명 정도로 조직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제 도움이 절실했던 시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에 별관심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김진표 후보의 진지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독대 브리핑을 통해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김진표 후보는 수원의 100년 대계를 꿈꾸며 650만평의 도시 계획(IT·BT벨리)을 야심차게 설계하고 있는 것을 저에게 허심탄회하게 공개를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감동을 받은 저는 김진표 후보의 선거운동을 앞장서 도왔고 드디어 초선의 당선이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김진표 의원은 당선 후인 2006부터 영통구 지역위원장을 저에게 맡기셨고 저는 당원관리와 지역 사무들을 도맡아 하게 된 것입니다.

▲ 언제부터 의원생활을 시작하셨고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요?

-김진표 의원과 연을 맺어 영통구 지역위원장을 역임하던 중 2008년 터진 ‘리먼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저도 그때 보증을 잘못 섰던 관계로 수십 억의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 위기를 탈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2010년 민주당 공천을 받아 수원시 지역구(매탄1·2동, 원천동)의원으로 출마 당선이 되었습니다.

도시환경위원회 소속으로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고 2012년에는 경기대 건설 산업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의정의 경험을 쌓고 2014년 다시 도전을 하였으나 당시 지역구가 분할이 되면서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경선 후보 에서 패해 도전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해서 다시 4년 동안 열심히 ‘대명전기’ 사업체에 전념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지인의 텃밭 400여 평을 가꾸며 자연에서 땀을 흘리고 농작물을 수확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제겐 무척이나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밭에서 일군 야채나 채소를 집과 이웃에서 소화하고 남은 분량을 주민 복지센터에 기증도 하며 보람찬 시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 도전(매탄1·2·3·4동, 인구 10만),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 지역구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있다면?

-주차난으로 수원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지만 여기는 좀 더 심한 것 같 습니다. 공영주차장부지 확보가 우선이고 둘째로는 영통1·2구역의 재개 발·재건축이 시급합니다. 약 4,000세대를 예상하고 진행 중입니다.

세 번째는 구도심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이며 이미 블록별 지구단위계획은 완성된 상태입니다. 네 번째는 미세먼지가 극심한 상태로 학생들이 실내에서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학교체육관의 건립이며, 마지막 다섯 번째는 주민복지센터의 건립입니다.

수원시 모든 지역구에는 주민복지센터가 있지만 매탄동만 주민복지센 터가 없습니다. 공원지역의 구역정비로 이미 부지는 확보되었지만 건축비용이 확보되지 않아 착공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공사가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 지역구민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지역 발전을 이룩해 주민들의 삶에 질을 향상 시키겠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살고 싶어 하는 매탄동을 만들겠습니 다.

이런 계획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현재 시의원들과 함께 ‘가로주택정 비연구회’를 발족해 많은 연구모임과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매탄동을 전문화거리로 만들어 인구유입을 늘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수원의 도시의정 방향은?

-수원도시공사가 관리공단으로 넘어와도 아직 주체적인 사업이나 성 장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 많이 아쉽습니다.

도시개발을 잘하는 전문 업체와 MOU를 체결하고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효율성과 가성비 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폐수를 활용한 에너지 재생산과 일반쓰레기를 활용한 고형연료를 제조 생산하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의 시행을 위해서는 그에 따른 예산과 경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수원시에서 활용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 재원창출을 해 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시청이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잦은 데모는 현실 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개정해 보다 나은 도시계획을 운용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