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주민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이희승 수원시의회 의원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았다.

【 경기·남부 = 서울뉴스통신 】 김인종 기자 = 젊다는 것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해 보인다. 인간의 수명을 평균 85세 정도로 놓고 볼 때 만 40세란 나이는 아직 인생의 전반부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직업군 중에서 나이 대(代)가 별로 영향을 안 받지만 정치에서는 거의 예외다. 일반적으로 연륜이 있어야만 정치에 어울린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40세 정도라면 의원이란 직업정치인들 중에서 기초든 광역이든 국회의원이든 비서나 참모진에 많이 포진되어있는 나이다. 아마 팀원이라 할지라도 신참 쪽에 속할 나이다. 

그런데 이희승 수원시의회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수원시 의회에 입성했으니 37세의 나이에 지자체의 기초의원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빠른 나이며 무언가 그 만의 장점이 있을 거란 예감이 인터뷰 전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희승 의원은 수원토박이다. 어렸을 적부터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반장선거나 회장선거도 남들이 추천하는 ‘타천(他薦)’보다 ‘자천(自薦)’으로 출마, 거의 당선되었다고 했다. 월등한 자신감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나친 ‘혈기(血氣)’나 ‘객기(客氣)’로 치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커다란 장점이 있다면 성격이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어떤 일에 부닥치면 대개 호재보다는 난관이 많다. 그러나 이희승 의원은 매번 낙천적이며 활달한 성격을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젊은 나이에 그런 성격을 갖출 수 있다는 건 성장환경이 좋고 인성이 밝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나 그룹 활동에서 항상 리더 역할을 맡았고 사회생활에서도 33세 때 JC단체 회장을 역임 할 정도로 주목을 받는 리더였다. 그런 그가 만37세의 나이로 시의회에 입성을 했고 수원시의회가 젊어지는 첨병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주차난 문제 해소·버스노선 개설 등 보람
정치는 유불리 보다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말 명심

문. 의원님의 어린 시절 성장기는?

저는 1980년 수원시 세류동에서 1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서 저의 탄생과 동시에 오픈한 ‘석산민물매운탕’집도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수원역 세평지하차도 앞 ‘금풍기사식당’ 옆에서 민물매운탕 집을 차린 부모님은 오늘 날 수원의 명소가 되기까지 참으로 자식을 키우 듯 애지중지 최선을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장하면서 늘 기억 속에는 매운탕집의 가게 전경이 자리합니다. 입학 전 대부분의 놀이공간도 매운탕 가게였고 낮에는 손님들이 식사하던 방이 밤에는 저의 잠자리이기도 했으니까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그 방에서 TV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며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게를 오픈한지 10년 정도 지나 권선동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신곡초등학교를 거쳐 권선중학교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공고에 진학을 했지만 1학년 말 호주로 유학을 떠났고 현재는 수원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문. 사회생활의 시작은 어떠하셨는지?

호주에서 귀국을 한 후 입대할 나이가 되어 소방서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정도 복무를 했습니다. 당시 같이 있던 동료나 상사들 대부분이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정이 들었고 오늘 날 제가 있게 된 하나의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 후에는 ‘석산민물매운탕’집에서 어머님의 식당일을 돕다가 지역봉사활동에 눈을 뜨며 2010년도 리더십을 가진 지역청년들의 모임인 수원시 청년회의소인 JC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JC단체는 그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봉사활동과 자기역량개발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지역사회의 일꾼을 양성의 초석이 되거나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나름 의미 있는 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체운영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순수한 봉사단체로서 지원금이 없는 상태에서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을 하다 보니 회장 개인적으로도 적지 않은 지출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능동적인 활동을 펼친 결과 2012년, 아직은 젊은 나이인 33세 때 투표를 통해 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문. 지역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제가 수원지역 JC단체 회장을 역임하던 2012년에 같은 지역구의 더불어 민주당 청년위원장을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8년 정도 민주당 권선지역 청년위원장을 맡다보니 정치인들과 교류가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 더불어민주당 권선 지역구 신장용 전 국회의원의 권유로 본격적인 정당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 2016년 수원지역에 새로운 지역구인 ‘수원 무’ 지역이 새로 개편되면서 김진표 의원의 후보 캠프에서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경 김진표 의원께 기초의원 출마 의사를 밝혔고 김진표 의원은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승낙을 해주셔서 2018년 6·13지방선거에 경선을 거쳐 영통2·3동과 망포1·2동을 지역구로 출마해 당선, 드디어 정치일선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문. 풀뿌리민주주의의 최선봉인 지역기초의원 당선 후 일선정치에서 느끼신 점은?

저는 김진표 의원님이 저의 정치스승이시고 또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습니다. 김진표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치인은 “‘유불리(有不利)’ 보다 ‘정도(正道)’를 걸어야한다”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일선 정책에서도 정치공학적인 행보보다는 주민들과 슬기롭게 현안을 풀어나가려고 항상 애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정치 쪽에서도 비교적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느끼며 최소한 양심적인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문. 시의원이 되고나서 하신 일 중 가장 보람 있는 업적이라면?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가지만 지역구에 새로운 ‘버스’를 개설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의 지역구에는 수원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버스노선이 많은 데 정작 ‘망포역’을 기준으로 ‘광교’와 ‘동탄역’을 이어주는 버스노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장에 나가 노선을 스케치 하고 직접동선을 따라 정밀 체크를 한 결과 그 자료를 바탕으로 수원시 대중교통과에 건의, 1년 만에 53번(광교→망포→동탄역) 버스노선을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통구의 만성적인 주차문제를 풀어나간 것입니다. 당시 지역별로 ‘거주민주차우선’제도가 실시되고 있었으나 그 근처의 몇몇 상인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위법이 자행되는 현실이었고 이를 수정하고자 도시공사에 건의, 무인시스템공영주차장 설치를 추진해 주차난 해소와 경제 창출의 효과를 한꺼번에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어 복지 쪽으로는 코로나로 인해 어르신들의 여가생활이 거의 정지되었고 그로인한 우울증과 건강이 쇠약해지며 안정감이 결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 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순차적으로도 반드시 사회적 약자나 어르신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공간 확보와 환경개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사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진 민간·가정 어린이집 지원을 위해 보육아동과에 건의하여 약21억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여 그들의 운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문. 지역구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코로나 대 확산 속에서 힘든 지역구민들께 늘 격려를 보냅니다. 저는 항상 소통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원활하게 지역주민들과 교감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라도 저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구청 최다 방문 의원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가리지 마시고 찾아주셔서 상의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지역구민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코로나’ 또한 지나가리니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물리쳐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문. 의원님의 가정사와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저는 제 아내를 얻기 위해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공을 들였습니다. 연락처를 몰라 아는 지인에게 자리 마련을 부탁했고 그래서 고대하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늘 먼발치에서 가슴조리다 막상 만나니 꿈만 같았습니다. 제 아내는 착하고 현명하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거기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저는 아내 복이 참으로 많은 남자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아내와의 사이에 12살과 8살 된 아들이 둘 있습니다. 저를 닮아 건강하고 씩씩하며 아내를 닮아 착한 개구쟁이들입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제 좌우명이라면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무릇 모든 인간관계는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삶을 살면 사람은 이미 반의 행복은 확보한 거라고 여겨집니다. 

끝으로 내가 힘들어야 지역민이 편해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는 의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구 여러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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