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하늘로 달아나던 악다귀가 비둘기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곰탱이 옆에 떨어졌다.
“으아, 항복!” 
달아나던 쪽비는 백구에게 꼬리가 물리자, 앞다리를 번쩍 들었다가 납작 엎드리며 빌었다.
“에라이, 지저분하게도 오래 사는 악질놈아!” 
길대장이 쪽비를 발길로 힘껏 걷어찼다.
“너 같은 놈을 한때 형님이라고 부른 것이 기분 더럽다.” 
분이 덜 풀리는지 한 번 더 차려다 참았다.
“용서해 주십쇼.” 
아직도 많이 남은 족제비와 까치와 까마귀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애꾸눈 부하로 살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자들만 이곳을 떠날 수 있다.” 
길대장이 말하자, 너도나도 행궁에서 도망치기 바빴다.
“너희들은 왜 안 가?” 
소록도 까마귀들이 미적거리자 궁궁이가 물었다.
“대장을 데려가게 해 주십쇼.”
“잘 묻어 줘. 다시는 남 괴롭히지 말고 살아. 미안하다.” 
백구가 말해 주자, 까마귀 여러 마리가 곰탱이를 함께 물고 남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남은 것은 족제비 한 마리뿐이었다.
“그럼, 가 볼게.”
“너는 할 일이 남았어. 눈빛보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백구가 앞발로 쪽비의 꼬리를 다시 슬쩍 밟으며 말했다.
“연합군, 팔달산으로 진군!” 
사령관이 된 길대장은 봉수당 대청마루에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행궁에 수비대 병력을 배치한 다음, 작은 동물 수십만 대군이 팔달산으로 대형을 갖추며 이동했다.

흥정
“또스또스.” 
하델 해적별에 수신기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하델 각하, 안녕하십니꺼?” 
“어떤 놈인데 해적 성명도 안대고 전화질이야?” 
하델이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제가 기드로온 왕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구매하실 의향이 있는지 사업 정보를 묻는 것입니다만.” 
하델의 귀가 솔깃했다.
“뉘신지?”
“암거래는 신상을 밝혀 좋을 일이 없어서 업계 이름으로 배드엑스라고 해 두지요.” 
음산한 목소리는 하델에게 더욱 구미가 당기게 했다.
“얼마를 요구하시나?”
“각하의 20개 행성 중에 6개를 주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뭐야?” 
하델은 배드엑스의 제안을 듣다가 화를 버럭 냈다.
“아아, 제안일 뿐입니다. 마음에 안 드신다면 저는 다른 고객을 찾으면 되는 일입지요. 그럼, 다른 좋은 상품이 있을 때 연락하겠습니다.”
“자자자잠깐만. 4개면 안 되겠수?” 
하델은 급하게 수정 제의를 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바빠서.”
“화끈하게 5개!”
“생각해 보겠습니다. 딸깍!” 
배드엑스의 정중한 듯하면서 냉정하게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개자식, 후아. 럼주!” 
하델이 화덕처럼 입으로 식식대며 말하자, 문 밖에 있던 20인자가 얼른 들어와 럼주를 따러 주었다.
“한 잔, 더!” 
20인자는 또 한 잔 따러 주고 얼른 달아나듯 동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에잇!” 
럼주를 입 안에 털어 넣자마자 빈 잔을 20인자 뒤통수를 향해 던졌다. 20인자는 뛰어나가면서 고개를 숙였고 빈 잔이 쌩 지나가 동굴 밖 우주 속으로 깊이 떨어져갔다.
“또 안 맞아? 에라이!”
“으아!” 
하델이 뒤쫓아가서 엉덩이를 차버리는 바람에 20인자가 동굴 밖 깜깜한 우주로 추락한 것이다.
“또스또, 또스또.” 
하델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마주 보이는 별인 키드라 별에서 수신기의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누군가?”
“배드엑스라고 합니다.” 
키드라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낯설지 않은 목소리라 고개를 갸웃했다. 
“화상으로 통화하면 안 될는지?”
“그건 곤란하고 비밀 거래할 최고급 상품이 있는데 소개할까 하는데?”
“어떤 물건이슈?” 
키드라는 해적이면 불결하다는 것에 콤플렉스가 심해 해적도 세련되어야 한다며 멋부리기를 좋아하고 고급스러운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키드라 별은 하델 별을 돼지우리라며 얕잡아 보고 있다.
“기드로온 왕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만.”
“호오, 그래요? 내가 투자할 의향이 있긴 있는데.”
“왕께서 거느리시는 별 중 6개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키드라가 관심을 보이자 배드엑스가 거래 수준을 밝혔다.
“예끼, 여보슈.”
“흠, 제가 투자자를 잘못 찾았나 보군요. 그럼.”
“아, 그러시지 말고 조금만 깎아 4개로 합시다.” 
키드라도 가격만 맞으면 사려는 것이었다.
“6개면 모를까?”
“이보슈, 배드엑스, 요즘 작은 별 하나 값도 얼마나 비싼지 알고 하는 말이요? 서로 섭섭지 않게 5개로 합시다.”
“고매하신 왕께서 셈을 후리시니 우리 같은 기업가들이 이익내기 힘듭니다. 하여튼 생각해 보고 연락합지요.” 통화가 끊어지자 키드라는 자신의 뒷머리를 쳤다.
“도둑놈의 가격이 다 그런 줄 알지만 그냥 6개 준다고 할 걸. 어휴, 내가 내 뒤통수를 친다니까.” 
너무 재다가 놓친 것 같다고 후회하는 것이었다.
“여섯그만 불러봐!”
“옛, 접니다요.”    
키드라는 여섯그만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다시 한 번 갸웃했다.
“배드엑스라는 놈이 누군지 알아?”
“아아니, 모릅니다요. 알아는 보겠습니다요.” 
팔달산 동굴 속에서 키드라의 전화를 받고 여섯그만은 한동안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냐 하면, 자신이 목소리를 바꿔가며 전화하고 난 다음 바로 전화가 와서 들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여섯그만은 동굴 속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아직도 족제비들과 까마귀와 까치들이 삼사만은 남은 것 같았다. 여섯그만에게는 그 몇 만 마리를 동굴에 남겨 둘 이유가 있었다. 기드로온 왕자를 거래하고 소유할 자신의 별들에 나누어 살게 할 백성과 부하였다(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생각과 반대로 살아가는 일이 훨씬 많다. 점묘화 같은 수많은 작은 색점 중에 하나처럼 조화를 이루며.). 
“여섯그만, 내가 나타나면 내 친구들 살려준다고 했잖아!” 
철창 속에 갇혀 있는 눈빛보석이 소리쳤다.
“크크, 내가 아는 너는 눈빛보석이야. 기드로온이 아니라구. 너를 팔 때는 기드로온 왕자로 팔겠지만 말이야. 큭큭큭." 
기만당한 눈빛보석은 친구들의 생사 걱정으로 분해서 눈물이 배어나왔다.
“걱정하지 마. 모두 무사하니까.” 
창살에 붙어서 아주 작게 말하는 은바퀴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들어왔어?”
“쉿, 이따가 다시 올게.” 
은바퀴는 눈빛보석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는 팔달문 친구들을 대표해서 작은 몸을 이용하여 들어왔던 것이다. 
“휴우. 어떻게든 살아들 나갔어. 정말 다행이야. 백구가 돌아왔나 보구나. 그런데 너희들 이 동굴에 들어오면 살아나가기 불가능할 수 있어. 들어오지 마.” 
은바퀴를 돌려보낸 뒤 눈빛보석은 안도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한숨을 쉬었다.
“기드로온 왕자, 한숨 쉬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너를 아주 좋은 값으로 팔 거니까. 흐흐흐.”
“네가 나를 팔아서 그 가치로 남에게 다시는 나쁜 짓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인데 나에게 놓인 몇 가지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구나. 그것이 슬퍼.” 
눈빛보석은 상처 난 곳들이 고통스러운지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여섯그만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많지. 너 같이 가질 것 다 가진 것들은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해.” 
여섯그만은 애꾸눈으로 눈빛보석의 신음 소리조차 비꼬듯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다시 잡힐 테니까 지금은 나를 풀어 주면 안 될까? 은혜 잊지 않을게.”
“이거 봐, 나 머리 복잡한 거 싫어해. 내 이름 여섯그만이야. 여섯그만!” 
눈빛보석과 여섯그만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기습이다!” 
동굴의 뒷문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몇 만 마리의 여섯그만 부하 동물들이 밀리고 있었다. 점점 그들은 앞문 쪽으로 쫓기다시피 했다. 철창 속에서 눈빛보석이 뒷문 쪽을 보니까 백구와 함께 팔달문 친구들이 수십만 마리의 작은 동물 연합군을 지휘하며 진격해 오고 있었다.
“앞문도 뚫렸다!” 
앞문 쪽에서는 광선총이 빗발치고 있었다.
“배반자, 여섯그만! 이 새끼 어디 있어?” 
총지휘관 알박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키드라는 아무래도 수상해서 배드엑스와 여섯그만의 목소리 감식을 지시했는데 동일 음성으로 판명 났던 것이다. 다급해진 여섯그만은 철창에 갇혀 있는 눈빛보석을 끌고 나왔다. 비상통로로 빠져나가려는 것 같았다. 따르는 동물은 정예병 삼백 정도였다. 어두침침한 통로는 좁고 길었다. 눈빛보석은 끌려가며 묶인 매듭을 몰래 풀어 놓았다. 여섯그만은 비상통로 밖으로 나오자 서문 쪽을 향해 눈빛보석을 끌고 갔다.
‘하델 쪽에 나를 넘기려고 하는구나.’ 
눈빛보석의 예측이 맞았다. 여섯그만은 하델의 부하가 되면서 일등 공신이 되려하는 것이었다.
“여섯그만, 나 이제 내 갈길 갈 테니 앞으로 착하게 살아.” 
눈빛보석은 멈추더니 묶인 줄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이거 무슨 쉬어터진 김밥 옆구리에서 다꽝 나오는 소리야? 얌전히 따라와 임마!” 
여섯그만은 앞서 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신경질을 냈다. 계획이 절반 이상 수포로 돌아갔으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도 이제 그만 남 괴롭히지 말고 잘 살아. 나 갈게.” 
눈빛보석이 까마귀와 까치와 족제비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고 떠나려 하자, 동물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여섯그만 참주님, 이놈이 달아나려 합니다.”
“잡아!” 
그제서야 여섯그만이 가다말고 돌아보며 소리치자 동물들은 눈빛보석에게 공격해 왔다. 눈빛보석의 호신술은 느린 듯 빠른 손놀림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허공에 물결을 만들어 냈다. 손끝에 닿을 때마다 동물들은 신경 쇼크를 받아 기절했고, 투둑 바닥에 누워야 했다. 
“으윽!”
여섯그만은 눈빛보석의 두 번에 걸친 손과 발동작에 앞으로 꺼꾸러지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다시는 나쁜 짓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기 바래.” 
여섯그만은 비굴한 얼굴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났다.

동물 연합군
팔달산에서 내려다보니 수원 성곽을 따라 키드라와 하델 해적들이 여전히 대치중이었다. 군을 이동시킬 때 엄호하느라 간헐적으로 광선총을 쏠 뿐 전면전의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눈빛보석은 동굴 뒷문을 찾기 위해 산 뒤쪽 이곳저곳을 살폈다.
‘저 곳이다.’ 
수많은 작은 동물이 쫓겨나오고 있었다. 나중에는 까치와 까마귀와 족제비 몇 마리도 마지막으로 도망쳐 나오는 동굴이 보였다. 
“조무래기들아, 걸리적거리지 말고 꺼져버려!” 
해적들이 동굴 앞까지 나와서 광선총을 냅다 난사했다. 그렇게 겁주고는 동굴 안으로 사라지며 뒷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해적들은 지구의 작은 동물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굴 안에 있던 몇 만 마리나 되던 애꾸눈 수리부엉이의 부하들은 작은 동물 연합군에 의해 안으로 밀리다 앞문 쪽에서 광선총을 쏘아대며 들이닥친 키드라 해적들에게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다.
“백구!”
“눈빛보석.” 
귀 밝은 백구가 눈빛보석이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마자 달려오고, 뒤이어 팔달문 식구들이 달려왔다.
“모두 무사하구나.”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다들 기뻐하며 눈물범벅이 되었다.
“대장님, 어디로 이동시킬까요?” 
부관의 물음에 돌아보니 수십만의 작은 동물 연합군이 길대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궁으로 집결하도록 해.” 
팔달문 친구들은 연합군과 행궁으로 갔다. 행궁 안이 좁아 지붕뿐만 아니라 신풍루 앞 광장까지 빈자리가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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