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원역 일대를 깨끗하고 청결한 구역으로 만들죠”

▲ 문광현 수원시 수원역사환경관리원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서울뉴스통신】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김동초 대기자 =

삼성맨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보유
대기업 다닐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워
무얼 하느냐보다 어떻게사느냐가 더 중요
오늘도 거친 음지서 묵묵히 일하며 보람

수원시 팔달구 환경관리원들의 쉼터에 들어서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눅눅한 공기와 하늘이 깔끔한 느낌을 밀어내고 있는 가운데 시작된 인터뷰 였다. 하지만 문광현 매산동수원역사 환경관리원을 만나면서 바로 기분이 업 되고 즐거운 시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문광현 환경관리원과 동료들 그리고 그 곳을 책임지고 있는 최종구 반장의 푸근하고 상쾌한 응대가 쾌적한 환경관리원 쉼터의 분위기와 함께 맞아 떨어지며 흥겨운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환경관리원의 직업상 인터뷰란 생소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표정과 행동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쾌활한 분위기를 풍겼다.

인터뷰 컷 중 쉼터에서 보내는 휴식 장면의 얻기 위해 문광현 환경관리원의 상사와 동료들에게 연기자 역할을 부탁을 하자. 그들은 흔쾌히 승낙함과 동시에 장기 등 게임을 진행,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순수하고도 진지한 가족애가 묻어나오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인 문광현 환경관리원의 긴 신장이 사진촬영에 약간 애를 먹이기도 했지만 무사히 끝내고 드디어 식탁을 끌어다 인터뷰용 탁자로 사용하며 마주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문광현 환경관리원은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3살 때 수원으로 가족이 이주했었다고 했다.

당시에 아버지가 먼저 올라와 세류동에서 자리를 잡았고 뒤이어 어머니랑 여동생과 함께 올라왔다고 했다. 얼마 후 막내가 수원에서 태어나 가족이 늘었다고 회상했다. 신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북중을 거쳐 용인의 신갈고를 졸업했다고 했다.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정부에 있는 306보충대를 거쳐 백골부대에서 보람찬 군 생활을 시작했고 제대가 다가올 즈음 대대장으로부터 장기복무를 권유받았지만 그래도 사회가 좋아 만기 전역을 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빡빡한 사회현실을 맞닥뜨리니 한 때는 장기복무를 택할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었다고 한다. 93년 3월 23일에 입대해 95년 5월 25일 제대하기 까지 2년 2개월 2일이란 묘한 숫자만큼의 군 생활이 인생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고 되새겼다.

문광현 환경관리원은 제대 후 3일 만에 ‘삼성전관(5~7인치 제작)’의 하청업체에 입사해 근무를 했고 2개월 정도가 지난 후 아버님께서 삼성전자 입사지원서를 주셔서 지원을 통해 95년 7월 초에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일정기간 실시된 인문교육을 통해 지금도 기억하지만 95079928이란 사원번호를 받아 멀티미디어 사업부에 배치되었었다고 했다.

2002년도엔 우수사원으로 인정받아 생산직에서 DT(dest top)개발실 관리직으로 발령이 받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의 주 역할이 아닌 보조업무였기에 발령이 그리 반갑지 많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5년 정도 관리직생활을 하던 중 2007년 3월, 우리나라 경제계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바람으로 회사에서 협력회사 관리직 근무를 조건으로 명퇴를 권유해 12년간의 삼성맨 생활을 접고 퇴직을 하게 된 동기가 됐다고 했다.

삼성의 협력회사였던 그 직장은 삼성제품의 ‘신뢰성(내구성)’을 실험, 주로 ‘드럽’·‘온도’·‘습도’ 등 악조건속의 컴퓨터의 내구성을 측정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5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2012년 2월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삼성이란 이름이 붙은 직장생활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환경관리원들의 쉼터에 들어서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그 곳의 직장생활을 접을 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삼성무선사업부’와 ‘컴퓨터사업부’가 합쳐지면서 자신이 다니던 하청회사에서 하던 일을 삼성본사에서 직접 일을 처리함으로서 하청회사의 수명이 거기에서 다한 거라고 설명했다.

2달여의 휴식기를 거친 문광현 환경관리원은 2012년 4월에 아산에 있는 터치패드 제작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삼성출신이라는 자신의 이력에 회사에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었고 업무가 너무 과도해 2개월 만에 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달 간, 방황의 시간이 지나 세류동에 있는 ‘동진 레미콘’에 입사를 해 컴퓨터로 콘크리트 내용물을 ‘믹싱’하는 작업을 맡으며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장래성이 불투명했고 이어 작업장의 분진 등 근무환경이 너무 안 좋아 2015년 6월 말, 결국 퇴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컴퓨터 믹싱작업이 한가해지면 뒤에 나가 직접 ‘삽’을 들고 일부 물리적 믹싱작업을 하면서 체력은 많이 좋아져 훗날 환경관리원 체력시험에 거뜬히 임할 수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직장에 대한 공백을 갖고 있을 때 아는 동생으로부터 수원시 수원역 환경관리원의 모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원시청의 홈페이지를 통해 환경관리원 입사를 지원과 시험을 통해 환경관리원 업무를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시험과목으로 서류전형과 체력·인적성이 있었고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되었다고 만족스러워하기도 했다. 문광현 환경관리원은 2015년 7월 1일부로 권선구 세류3동 구역으로 발령이 났고 얼마 전 수원역전으로 발령이 나기 전까지 정말로 환경관리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삼성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기업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했는데 환경관리원이란 직업이 주는 직업적 괴리감이 없느냐는 질문엔 오히려 이전 몇 십 년의 직장생활보다 지금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냐는 질문엔 삼성 등 기업의 직장생활의 만족도는 지금이 100이라면 50정도나 그 밑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묻자 그 전의 직상생활들은 여러 부서와 여러 사람이 항상 연관되어 있었고 실적과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만 지금의 환경관리원 직업은 자기 자신이 맡은 구역을 정성을 다해 깨끗하게 관리하면 최고의 성과와 보람을 느낀다며 현재 속해있는 환경관리원 직업에 대만족을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처음에는 좀 의아하기도 했지만 인터뷰를 진행 할수록 흥이 더해지는 그의 표정과 태도에서 진실성과 함께 진정성이 느껴졌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는 이 직업이 너무 좋고 천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인터뷰를 위한 형식적인 ‘수사’라고 보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흡족해 보였다. 그간 업무를 진행해 오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스트레스에 관한 질문엔 거의 없었다는 대답이다.

그래도 힘든 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자 굳이 한 순간을 꼽는 다면 얼마 전 수원역 맞은편, 스쿨버스 등 시외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승객 들의 줄 사이를 어떤 남성이 우산을 들고 헤치고 지나가다 순서를 기다리고 서있던 여성의 얼굴에 상처를 냈었다고 했다.

그 여인이 상처에 대한 항의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남성은 발로 차며 막무가내로 항의하던 여성을 폭행했고 그 여성이 속수무책으로 폭행을 당할 당시 아무도 그 상황에 끼어들지 못 할 때 한 중년여성이 나서 폭행을 하던 남자를 제지하고 강력하게 그 남자에게 사과를 요구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남성은 새로 그 상황에 끼어든 여성도 함께 폭행을 가하자 그 여성도 그에 못지않게 그 남성의 머리채를 잡으며 대항하고 있었다고 했다. 해서 본인도 뒤 늦게 그 남성이 도주 하지 못하게 제지하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현장에서 남성을 제압, 무사히 경찰이 인계할 수 있게 한 기억이 제일 기억에 남는 다고 했다.

또한 일의 속성상 새벽3시에 기상해 4시까지 현장 출근이 좀 어렵지만 거의 익숙해졌다고 했다. 얼마 후는 새벽근무의 환경관리원들의 안전문제로 업무개시 시간이 새벽6시로 늦춰 질 거라며 미소를 띠기도 했다.

업무 일상의 패턴에 관해 묻자 새벽3시 기상, 4시 현장 도착, 작업 장비인 리어커·빗자루·집게·쓰레받기·삽자루를 포함한 여러 가지 도구를 챙기고 난 후 할당 구역 청소를 시작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 7시 반쯤 식사를 마치고 9시 경 다시 근무를 시작해 12시 30분 쯤 작업이 끝난다고 했다.

그 이후의 자유 시간에는 등산도 하고 거의 매일 집사람과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서로를 위로하며 애정을 키워나간다고 했다. 해서 대략 4시쯤이면 저녁을 먹고 주로 TV시청이나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소일을 하다 9시 쯤 취침을 한다고 했다.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그 생활패턴이 오히려 자신을 건강하게 한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한편의 건강비결의 이유로는 자신이 춤을 좋아해 틈만 나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즐긴다고 했다.

워낙 춤을 좋아해 결혼 초기, 나이트에 가면 12시가 넘을 때까지 춤을 추고 들어가 집사람이 잠도 못자고 기다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부터는 밤 12시가 되면 어떠한 경우라도 집으로 들어가 동화 속에서 열두시를 알리면 어김없이 사라지다 유리구두가 벗겨진 ‘신데렐라’에 빗대어 ‘문데렐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고 하며 상대에게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했다. 참으로 재미있고 긍정적인 사나이로 보인다.

현재 직업여건 상 힘든 점이나 자신의 경험상에서 느낀 개선 점을 묻자 거의 없고 만족한 편이라고 했다. 단지 어려운 점은 시민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재활용과 일반 소각용 쓰레기 구분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자신들에는 분리수거가 하루 업무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할애되므로 시민들이 도와주시면 남는 시간에 청결에 힘써 시민들에게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에 관해선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며 현장에서 환경관리원들이 쓰레기를 분류하는 장면과 업무시작 전 회의 장면 컷 등을 제공해준 최종구 반장도 커다란 공감대를 표했다. 많은 환경관리원들의 노고와 업무를 항상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함께 애쓴 리더로서 극하게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환경관리원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수원시청노동조합이 있어 웬만한 일은 조합을 통해서 해결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구 반장은 모든 직원들이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챙기는 인물이었다. 몸이 재산이라며 몸이 있어야 다음 일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서 모든 환경관리원들이 튼튼한 몸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는 게 자신의 가장 큰 바램 이라고 소박하게 웃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접어들며 늘 물어오던 항목인 인터뷰 주인공인 문광현 환경관리원에게 ‘좌우명’을 묻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대답과 함께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한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업의 내용보다는 얼만 큼 그 일에 충실 하느냐가 훨씬 중하다는 얘기다. 백번 공감이 순간이다. 문광현 환경관리원은 화려하지 않게 멋있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가치 기준에 따라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회의 거칠고 험한 음지에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인물들이 있어 이 사회가 유지 되는 것이다. 고마운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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