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수원=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 요즘 도시사람들의 생활은 많이 팍팍하다. 어디가나 빼곡이 들어선 건물들과 숨막히는 자동차 소리와 소음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살지 않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약간 숨통이 트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마당이 있어 꽃을 심고 나무를 가꿀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마당에 수선화 꽃이 피어났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들은 얼마나 행복해 할까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집 마당에 수선화 꽃들이 피어나고 있어요.”

내가 잘 아는 분 중에 아침마다 시인들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속삭임처럼 보내 주시는 시인이 계신다. 오늘의 소식에는 카톡에 찍힌 세 송이 수선화의 노란 미소를 보내 오셨다. 어찌 그리 예쁜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 시인은 지난 가을 수선화의 둥근뿌리를 잘 보관하고 겨우내 보살피셨다고 한다. 이른 봄부터 간절하게 꽃피기만 기다리며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수선화가 대단히 강한 꽃이어요. 어떻게 추운 겨울을 땅 속에서 지내는지 몰라요. 수선화 뿌리를 벗겨보면 양파처럼 비늘 밖에 없는데 어디서 이런 예쁜 색깔의 꽃이 나오는지 필 때마다 감동이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문득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란 시가 떠오른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수선화에게” 전문-

시인의 눈길은 어디에 닿든 시어를 캐낸다. 정호승 시인은 왜 수선화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분명 수선화를 닮은 여느 사람일 텐데 아마도 그 시를 쓰기 전 수선화를 닮은 또 다른 수선화같은 사람에게 시인다운 말을 시로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수선화의 유래를 보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나르키소스)가 제 모습에 반하여 죽어 꽃이 되었다고 한다.

꽃 모양은 은 접시에 금잔이 놓여있는 듯 아름답고 향기도 강하다고 했다. 감탄이 절로 난다. 어쩌면 그리도 실감나게 수선화를 표현했을까. 언어의 표현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다.

서양 사람들의 수선화에 대한 가르침의 비유는 아주 인상적이다.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
수선화를 바라보며 마음 둘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놓으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공연히 숙연해지는 그 말은 현재에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아주 필요한 암시적 교훈이다.

그런데 옛 시인의 시 수선화에도 눈길이 간다.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준수하구나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 김정희 〈수선화〉 -

위 시의 마지막 행처럼 추사 김정희선생은 길가에 야생화처럼 피는 수선화에서 해탈한 신선을 보셨다. 그러하기에 봄꽃이 피기 전 노란 웃음을 머금고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닌가.

놀랍도록 청초함을 가히 해탈에 가깝다고 보셨으니 아마도 생각의 생각 중에 채취한 시어이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아름다운 수선화를 올 봄에는 좀 더 가까이 나만의 시와 함께 가까이 두고 접해보면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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