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수필/동강 시스터즈

2025-06-30     김인종 기자

분명 계절은 봄이건만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는 무렵 제25회 ‘수필의 날’ 행사가 강원도 영월에서 개최되었다. 4월은 각 소속 단체마다 문학기행이 계획되어 있어 매주 관광버스를 타는 셈이다. 메모장에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있어 일단 모든 단체에 등록 신청은 하였다. 실로 봄, 봄, 봄이다. 수필 인들의 생일이기도 한 이 행사는 코로나 시국을 빼고 거의 참석을 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필가들과의 상봉 날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바로 전날 큰 행사가 있어 염려가 되었다.

이젠 조금 무리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내기에 아침에 눈을 떠 내 몸과 협의를 해야 한다. 기본적인 짐 가방을 준비해 놓고 휴식을 취한 덕인지 자신감이 붙었다. 다행히 일찍 눈이 떠져 천천히 준비하며 동강의 맑은 공기와 ‘단종문화제’ 행사 등 영월의 연중행사와 맞물린 수필의 날 행사로 마음은 달려가고 있었다. 서둘러 출발했음에도 금싸라기 서울 집값에 지레 겁먹은 자동차 바퀴가 서울 땅에 닿자마자 거북이가 되었다. 택시미터기는 거리와 시간이 합산되어 시계 초침처럼 움직여 요금은 혈압수축기처럼 솟는다. 자꾸 도착 시간이 늘어나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맨 뒷자리에 앉으려는데 뒤는 위험하니 앞에 함께 앉자고 하신 분은 알고 보니 한 방으로 배정된 룸메이트여서 우린 더욱 반가워했다. 어릴 때만 짝꿍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세월을 보냈어도 어딜 혼자 다니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과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았다.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님과 심포지엄을 주재하는 공광규 시인님이 동승한 1호차 안은 각자 인사 소개로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친숙해지고 있었다. 희한하게서울을 벗어나자 길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팝나무 꽃이 도열한 창밖 풍광에 한 눈 팔 새도 없이 우리의 수다는 옆, 앞 좌석 수필가들과도 문학을 공통분모에 두었고 흥겨운 탓에 얼굴 주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필가라는 칭호를 떠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서로의 소속과 등단 경유, 개인집 발간, 같은 수필가인데도 수필과 지내는 방식이 다양해서 각자 명함과 전화번호를 공유하였다. 모든 벽을 허무는 수필문학이다.

룸메이트 다섯 명은 활동하는 지역이 모두 다르고 그날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임에도 그새 가족처럼 끈끈해져 휴게소나 식당을 가더라도 챙기게 되고 짧은 단 시간에 하나로 묶어 준 수필 실용문학의 위력이랄까. 별 것 아닌 한 마디에도 수시로 웃음보가 터졌고 매일 수차례 넣던 인공눈물 약을 단 한 번도 넣지 않았음에 실로 놀라웠다. 이렇게 밖으로 매일 나와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하는 팔자인데 한 해 한 해 낡아가는 것에 아쉬워만 하고 있었나 보다.

드디어 영월에 도착하여 단종의 애환이 깃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라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온갖 나무와 꽃이 영근 천국 같은 지반에 고급스럽게 자리 잡은 군청 대 회의실로 향했다. 이젠 어느 도시를 가든 문화적 차이가 없음을 느끼지만 휴게실이나 복도의 벽면을 모두 화초로 꾸민 것은 인상적이었고 공간 활용에 시각적으로 감탄했다. 산소가 쏟아지는 실내를 지나 대 연회장의 규모도 200여 명의 인원이 적어 보일 정도였다. 최명서 영월 군수님의 축사와 권남희 이사장님의 개회를 시작으로 시상식과 최원현 명예이사장님이 좌장이신 심포지엄, 연극, 축하공연 등 행사는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우린 이 지역에서 스위스라 불리는 ‘동강 시스타’ 리조트 투숙에 기대가 컸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 쌓여있는 곳에 자리한 명소로 연식에 비해 퀸 베드와 두 개의 욕실, 넓은 거실 등 내부가 고급스러웠고 카메라를 어디다 맞춰도 유럽에 온 듯하였다. 입실하여 짐 정리를 하곤 석식 뷔페 장으로 이동했다. 숙식이 흡족하니 그저 흥겹기만 했다. 가볍게 알코올도 나누며 네 명이 앉는 긴 소파에 다섯 명이 붙어 앉아 중등 교장으로 퇴임하신 우리 팀 왕언니 K선생님의 조크에 박장대소했다. 상상력 풍부한 문학인이라 가능하다. 우린 작은 일로도 기분이 업되어 쉼 없이 웃느라 너덧 살은 줄어든 것 같다. 그렇게 동강의 밤은 여물어 가고 있었다.

1박 2일, 만리장성을 쌓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동강 시스터즈’. 우리의 흔적이 남은 사진 공유와 아쉬움으로 단톡방이 만들어져 추억 하나를 또 이어가게 되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풍류를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문학을 한다는 이유 하나로 귀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거듭 고마운 마음이 인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이틀간 쪼르르 봄나들이 나선 어린 오리처럼, 서로를 헤아려주던‘시스터즈’의 무한한 행운을 빈다.


이경선 수필가

[약력]

2006년 [한국문인] 수필 등단,

한국수필 부이사장. 수원문협 이사,

한국수필문학상, 경기도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등

수필집: 『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 外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