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여울/가지 꽃
당신이 심고 간 가지 꽃 피었네
입술엔 꽃잎마다
사랑 가득 물었네
가지가지 꽃 중에 슬픔을 닮은 꽃
당신이 떠났다고
이별같이 피었네
단아한 그 자태 화려할 리 없건만
소박함 감싸들고
수줍어 미소 짓는
가지 꽃 바라보며 뜨거운 말 한마디
가지 꽃은 보라색
보랏빛은 애수라고
【감상】
봄이 오면서 계절이 여름으로 건너갈 때 즈음, 눈에 띄지 않게 피어나는 보랏빛 가지 꽃. 그 조용하고 수줍은 자태에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잊지 못할 한 사람의 흔적이 스며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기억의 형상, 감정의 은유이리라.
「가지 꽃」은 바로 그 ‘보랏빛’의 의미를 깊고 단아하게 펼쳐진다. 이 꽃은 누군가 심고 떠난 ‘기억의 화신’이다. 사랑의 감정이 꽃잎마다 배어 있다. 가지 꽃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수줍다. 이 절제된 미감은 동양적 사유에 가까운 미학이다. ‘화려함’보다 ‘담백함’, ‘외침’보다 ‘속삭임’을 미덕으로 삼는 시인의 세계관과 오래도록 견지해온 창작의 자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라색은 흔히 애수, 사색, 잔잔한 그리움의 색으로 여겨진다. 시인은 이 보랏빛에 ‘뜨거운 말 한마디’, 즉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의 깊이를 담는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 이별, 그리움, 고백의 응축된 상징이 된다. 시인의 절제된 표현과 색채 감각은 잔잔한 슬픔에 젖게 하며, 동시에 소박한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눈부신, 조용해서 더 깊이 다가오는 가지 꽃은 그렇게 피어나,
우리 안에 조용히 말을 건넨다.
- 수원문인협회 수석부회장 김경옥
약력
등단 1990년 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 대상 경기여류문학상 대상 외 다수
수필집 『금빛 내리는 계절』 『운평선 추억에 비치다』
시집『내 영혼의 텃밭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