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준석 "감나무의 풍요, 사북의 쓸쓸함, 그리고 와인"

오치균의 작품 세계와 프리미티보가 전하는 따뜻한 풍미 '주제여행포럼' 시리즈 기고③

2025-10-21     이민희 기자
오준석 와인 교육자·칼럼니스트 2025.10.21,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 서울뉴스통신】 오치균의 감나무 시리즈는 늘 화제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표현된 감나무는 질감과 색감이 풍성하다. 집안이나 사무실에 두면 마치 풍요를 불러오는 부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부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작가에게 감나무는 가난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열 남매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새벽 첫차로 시장에 나가 감을 팔던 시간, 그 희생과 고단함이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한때 ‘포르쉐 타는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감나무보다 사북 시리즈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정선 여행길에 처음 사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온통 까만 풍경, 원색으로 칠해진 낡은 건물, 촌스러운 커튼. 마치 전투가 끝난 폐허 같았다. 길거리에 버려진 가전제품, 자물쇠로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리며 느낀 쓸쓸함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전체적으로 우울하지만, 어딘가 작은 촛불 같은 따뜻함도 함께 있다.

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볼 때마다 이 사북 시리즈가 떠올랐다. 우울하고 쓸쓸함이 관통하는 화면 속에서, 아이유는 ‘이지안’으로 분해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OST 〈어른〉을 부른 손디아의 목소리 역시 오래 남았다. 고단한 삶에도 희망의 빛을 남긴 작품이었다. 하지만 최근 전해진 배우 이선균의 황망한 소식은 안타까웠다. 극 중에서 내민 위로와 응원이 정작 본인에게는 닿지 못한 듯해 마음이 아프다. 그의 모습은 오치균의 사북처럼 회색빛 기억으로 남는다.

2025.10.21,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오치균의 이름을 붙인 와인의 품종은 프리미티보(Primitivo)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에서 자라는 포도로, 남부의 강렬한 태양과 땅의 힘을 담아낸다. 잘 익은 자두와 블랙베리의 향이 먼저 다가오고, 뒤이어 은은한 후추와 감초의 스파이시한 기운이 더해진다. 마무리에는 다크 초콜릿 같은 깊은 풍미가 남아, 한 모금만으로도 따뜻하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프리미티보는 힘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와인이다. 스테이크, 양고기, 바비큐와 잘 어울리고, 한국식으로는 양념 주물럭·돼지갈비·삼겹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데일리 와인, 회식용 와인으로도 부담이 없다.

최근 오치균은 강남에서 15년간 사용하던 작업실을 손봐 미술관으로 새롭게 열었다. 언젠가 직접 찾아가, 그의 그림 앞에서 프리미티보 한 잔을 떠올려 보고 싶다.

■필자 소개
오준석 와인 교육자·칼럼니스트, 前 글로벌 기업 법무책임자
이탈리아 와인 전문 수입사 ‘콜드스프링’을 운영하며, 기업인·대학 등을 대상으로 와인과 문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HP,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에서 법무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와인과 예술, 법률을 잇는 글쓰기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