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56곳 ‘평화의 소녀상’, 혐오·철거 시위 확산… 법적 보호 장치 미비

일부 단체, “철거 요구” 집회 이어 마스크·비닐 씌우는 훼손 행위도 손상 없으면 처벌 어려워… “법적 공백 메울 보호 입법 시급” 해외 소녀상도 일본 정부 압박 속 철거 위기… 외교적 대응 필요성 제기

2025-10-31     최정인 기자
 2022년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사진은 기사와 무관) / 사진 = 화성특례시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전국 각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잇따른 철거 시위와 훼손 시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행법상 소녀상 보호 규정이 없어 처벌과 관리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31일 경찰과 시민단체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일부 단체가 최근 서울과 경남 등지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신고했다. 해당 단체는 지난 29일 서울 성동구와 서초구 고등학교 앞에서 ‘흉물 소녀상 철거’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이 학습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집회를 제한 통고했다. 이에 단체 측은 “기습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단체는 경남 양산의 한 초등학교 인근 도서관 앞에서도 유사한 집회를 신고했다. 해당 지역 역시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곳으로, 경찰은 동일한 이유로 제한 조치를 내렸다.

이들의 ‘소녀상 철거 운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단체 구성원들은 과거에도 소녀상에 ‘위안부는 사기’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씌우거나 ‘철거’라고 적힌 검은 비닐을 덮는 등의 행위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현행법상 물리적 손상이 없으면 재물손괴죄 적용이 어렵고, 조형물에는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아 법적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소녀상 훼손 금지와 위안부 피해 왜곡 금지를 담은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평화비를 ‘위안부 피해자 추모 상징물’로 지정해 손상 시 고발·수사의뢰가 가능하도록 하는 별도 입법안도 발의됐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소녀상은 과거의 아픔을 넘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시민사회의 약속”이라며 “국가와 지자체가 공적 관리 체계를 마련해 인권의 상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소녀상들도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철거 압박으로 존치 위기에 놓여 있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현재 국내 156곳, 해외 34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지난 5월 기준 해외 소녀상은 35곳이었으나, 이달 중순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이 설치 5년 만에 소녀상 ‘아리’를 철거하면서 그 수가 줄었다.

정의기억연대는 “일본 정부가 베를린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소녀상 설치를 방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 항의하고, 해외 공관 차원의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해외 소녀상의 현황 조사는 사실상 정의기억연대가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관리 체계는 부재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역사와 인권의 상징”이라며 “국가 차원의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