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재마전(車在馬前)] 성남문화재단 ‘2025 오페라 바람의 노래’ 공연을 보고

음악가 박태현 선생을 모티브로, 그러나 작품 속에 박태현은 신기루

2025-11-19     김대운 대기자
        김대운 대기자

【기동취재본부 = 서울뉴스통신】 김대운 본부장 =성남문화재단이 대한민국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 나라의 독립과 이후 벌어진 6.25 전쟁의 동족상쟁의 상흔, 전쟁 이후 대한민국 동요 음악 작곡과 보급 등 음악의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는 박태현(1907~1993)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야심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를 지난 14~15일 양일간 성남 아트리움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박태현 선생님이 살아생전 거주하시던 자택(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주공 아파트, 현. 아튼빌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선생의 음악적 소회와 나라사랑, 어린이 사랑의 철학을 직접 듣고 이를 지면에 반영했던 필자였다.

그동안 그분의 뜻이 널리 펼쳐지지 않았던 점에 송구스런 마음도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성남문화재단의 야심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공연 표제부.

‘바람의 노래’는 그분이 살아생전 작곡해왔던 서정적인 동요를 매개체로 남녀노소, 지위고하와 연령 층 제한 없이 누구나 오페라라는 음악적 장르와 함께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요의 진수를 통해 심금을 울리는 마중물과 다림줄 역할을 할 것으로 큰 기대를 했다.

서울특별시의 청계천 빈민들 강제이주를 통해 급조된 정체성 불모지인 성남시가 지금은 모든 지자체 등이 부러워하며 성장 과정 등을 배우려하는 선진 도시로 변모하는 등 외형적으로 급성장해 온 반면 성남시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성남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겼었다.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가 자체 제작한 김훈 원작의 뮤지컬 ‘남한산성’공연(2010.9.30.~10.17)을 끝으로 이후 15년간 제대로 된 구실도 못한 채 외부 공연 업체들의 대관용 하우스나 시가 주관하는 집회 시설로 둔갑되어 운영되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낳고 있는 때 비록 오페라 공연 전용 무대는 아니지만 본 도심에 새롭게 개관한 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오페라, 그것도 성남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인 박태현 선생을 매개체로 꾸며진 공연이 열린다니 시민들이 얼마나 기대가 컸겠는가.

‘한국동요의 서정으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감성짙은 오페라’라고 밝히며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성남시립합창단과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 아트컴퍼니 하늘의 무용 등 조은비의 연출과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을 이끌며 한국 오페라 발전에 헌신해 온 김덕기씨가 지휘자로 나선 오페라 ‘바람의 노래’는 박태현 선생이 작곡한 동요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산바람 강바람)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면서 서서히 막이 올라갔다.

필자가 느끼는 박태현 선생에 대한 느낌은 여기까지였다.

그마저 주최 측이 제공한 공연 소개 책자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공연전개 과정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 지,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해서 감흥을 일으키려고 하는 지, 박태현 선생의 곡을 모티브로 했다는데 작품 속에 녹아든 박태현은 어디에 있는지 그 흔적을 가름하기 어려웠다.

오페라 ‘바람의 노래’ 소개 책자에 박태현 선생의 사진 한 장 실린 것이 없었다. 
율동에 제작된 박태현 선생이 어린이와 함께한 형상을 새겨 놓은 노래비 조각상 사진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성남시 분당구 율동 공원내에 설치되어 있는 박태현 선생의 노래비.

황00작가는 “ 바람의 노래는 한국전쟁 중 전쟁고아가 된 강바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을 지켜 줄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살아있던 엄마가 한때 들려주었던 동요의 기억을 부여잡고 홀로 남은 시간을 버틴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 작품의 전개 구도를 밝혔다.

엄마가 한때 불러주었던 동요는 무슨 곡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박태현 선생의 곡이 중요한 포인트로 여겨졌지만 필자의 느낌에는 박태현 선생을 연상시키며 동시대적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선율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태현 선생은 ‘코끼리 아저씨’, ‘산바람 강바람’, ‘태극기’ 등 200여 곡이 넘는 동요와 ‘3.1절 노래’, ‘한글날 노래’ 등 국가 기념일 노래를 남겼고 특히 혼란과 상처로 얼룩진 한국사의 격동기인 6.25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순수한 동심과 민족의 정서를 지켜 낸 수많은 노래를 작곡했다.

‘바람의 노래’를 관람하는 동안 필자의 뇌리 속에는 생전의 박태현 선생이 환생하신 것처럼 똬리를 틀고 계시면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빙의(憑依)의 상태였다.

성남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요 작곡가를 품고 있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태현선생을 기리는 전국창작동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정작 몇 회라는 순연적 횟수 표기도 생략된 채 년도만 표기된 채 2025년 박태현 전국창작동요제라는 형식으로 치르는 등(필자의 기억으로는 올해 23~4회차 정도되지 않을 까 싶다) 과거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전승해야 할 책무는 잊은 채 시민들은 박태현선생을 기리는 전국창작동요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만의 잔치(?)로 매번 끝나고 있다.

시민의 혈세로 매해 열리고 있는 박태현 선생 관련 동요제 등을 통폐합해 문화재단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문화시민의 긍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 마련의 초석과 함께 2026년도에는 박태현선생과 귀에 익숙한 ‘나무야♬ 나무야’의 동요를 작곡하신 지역의 동요작가 정세문선생과 함께 성남시가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아름다운 시상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동요의 선율이 넘실대는 동요 천국 문화도시로 가는 길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시금석 역할론도 내심 기대했었다

동요를 재해석한 오페라, 동요 작곡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하는 시대극 뮤지컬, 전국에서 모여드는 어린이들 창작동요의 아름다운 선율, 미래 동량들이 꿈꾸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선진 과학의 도시가 어우러진 성남시 미래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성남시가 가지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 홀, 시어터 앙상블, 아트리움 대극장, 청소년청년 수련관 등의 공연 장 등등 문화불모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세대들 웃음꽃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는 동요 도시 성남시를 그리는 것은 필자만의 사치스런 기우(杞憂)일까.

성남시가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50세인 지천명(知天命)을 넘었고 이제 귀가 열려 객관적으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인 이순(耳順.60세)을 앞두고 있다.

성남시가 탄생한 이후 60년을 바라본다, 이를 사람으로 치면 역사적이나 문화적이나 손주들을 볼 나이다, 이제 성남시도 문화적으로 후손들에게 흔적을 남겨야 할 때 아닌가? 

경험이 없는 말로 마차를 끌게 하려면 먼저 다른 말이 끄는 수레 뒤에 매달아 따라 다니게하는 훈련을 통해 길들여야 하는 것을 거재마전(車在馬前)이라 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역사의 발자취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초보적인 작은 일에서부터 훈련을 거듭한 뒤에 본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거듭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다.

한 지역, 한 시대의 문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성·발전·계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그렇다.

박태현 선생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삼일절 노래’, ‘한글날 노래’를 비롯 수많은 애국 가요와 국민가요 등을 작곡하였고 연주 활동 및 후진 양성을 위해 힘을 써온 분이셨다.

서울 중앙 방송국(현 KBS전신)의 음악계장을 역임했으며,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를 창립했으며 문교부 예술 위원과 음악과 교수 요목 제정 위원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는 물론 세계 일본 음악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등 그의 발자취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한민국 음악계의 거목이셨다.

문화재단이 오페라 ‘바람의 노래’ 공연을 앞두고 지역 전문가라 칭하는 인사들의 인터뷰 내용을 자체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주로 박태현 선생을 기리는 생전의 회고담을 실었을 뿐 정작 ‘바람의 노래’에 대한 작품구상 에 대한 사전 평가나 시사회 성격의 장면은 실리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 없었다는 것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이어질 공산이 컸을 것이고 결과는 그렇게 표출되고 말았다.

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실린 김성태 박태현 기념사업회 회장의 대담내용을 잠시 살펴 본다.

김 회장은 “박태현 선생은 음악으로 민족정신을 지켜 내고자 했던 선각자였으며 독립운동가였던 둘째 형 박태은 선생의 영향을 받아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우리말과 정신을 전하고자 했고, 일제 강점기에 남긴 선생의 동요는 예술로 이어 온 독립 정신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박 선생님은 평생 동요와 가곡 작곡에 매진하셨고 작고 직전까지도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크고 작은 공연에서 지휘봉을 놓지 않으셨으며 지역 예술계에는 예총 창립 과정에서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닦고 초석을 놓은 정신적 지주이자 큰 어른으로 깊이 남아 계시는 분이십니다”고 회상했다.

박태현 선생을 모티브로 새롭게 조명할 작품 내용인 ‘바람의 노래’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박태현 선생을 모티브로 한 야심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를 하늘나라에서 바라보시는 박태현선생은 무슨 상념에 잠기셨을까 ~~~!! 

박태현 선생을 모티브로 한 문화재단의 야심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공연을 지켜본 필자의 입장은 ‘시선이 무대를 향하고는 있었으나 마음이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이불견(視而不見: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태)’의 상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공연 이후 공연을 관람한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박태현 선생을 모티브로 했다고 했지만 정작 작품 속에 박태현 선생은 없었다, 박태현 선생의 동요작곡 사상과 철학을 알리며 관객들에게 동시대적 감흥을 현대에 접목시키려 했다는 작품 구성과 전개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큰 기대에 비례해 실망감이 더 컸다”고 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바람의 노래’ 관람을 하고 느낀 소감이 필자만이 느끼는 주관적 소회가 아니었음을 실증하는 대목이다. 

문화재단(성남아트센터)내에 설치되어 있는 오페라 하우스 명패는 언제쯤 빛 날 것이며 빈 무대와 객석은 언제쯤 관객들로 호황을 누리는 세계속의 성남 오페라 공연으로 채워지려나~~~! 

‘바람의 노래’는 정녕 박태현 선생을 바람 속에 흔적없이 실려보내려는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되고 끝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