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현대미술관 김혜정 연구원 인터뷰

전시해설 중인 김혜정 연구원.

【과천=서울뉴스통신】김지영 기자 = 김혜정 연구원(51)의 전시해설은 남달랐다. 과천현대미술관 하이라이트 해설을 듣다보면 꼭 거치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앞에서는 대개 다음의 멘트가 나온다. '고장이 나서 나오지 않는 브라운관이 있어요' 그런데 십수번 들어온 해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백남준 작가가 살아있었다면 최신TV로 교체하라고 했을까요? 저희 미술관의 고민이에요” 비디오테이프는 VHC에서 CD로, 또 DVD로 바뀌어왔다며 ‘만약’을 추론해보는 김혜정 해설사에게 반해 인터뷰를 부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팀에는 어떤 계기로 일하게 됐나.

“과천으로 이사 오면서 자원봉사 도슨트로 활동을 했다. 응용미술을 전공했고 미술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엄마로서 육아라는 현실적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해서 과감하게 도전했다”

-업무 범위가 궁금하다. 연구원이라고 소개했는데 도슨트와는 다른건가.

“지금 업무는 교육문화과에서 작품감상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전시와 연계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교재도 만들고, 강사 섭외서부터 어떤 컨셉으로 이번 전시의 맥을 짚을지 고민한다. 틈틈이 전시해설 스케줄도 있다. 또 자원봉사 도슨트가 전시에 참여하기까지 양성하고 심화하는 과정 모두를 포함한다”

-전시기획은 포함되지 않나.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의 분야이고, 우리는 전시가 주어지면 그에 연계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중섭이라 한다면 미술사적으로 바라본 이중섭이 있고, 정신분석학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교류했던 문인 그룹과의 이야기로 풀 수도 있다”

-해설이 관람객들에게 문답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해 재밌었다. 궁금증을 유도하고 답을 터뜨려주었을 때 소름이 돋기도 했는데, 관람객과의 관계에서 가장 신경쓰시는 부분은 뭔가.

“관객과 만날 때, 감동을 주는 전시를 운운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감동에 앞서서 배려인 것 같다. 이를테면 누군가 내 설명을 듣고 운다.그러면 내가 누군가의 감정을 움직였나보다 할 수도 있지만, 다시 돌아보면, '아유, 왜 이렇게 약장사같은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누군가에게 내 말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굉장히 위험한 거다. 그걸 감동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부끄럽다. 지금은 그보다는 작은 배려와 관심이다. 예를 들어 관람객중에 어르신이 왔다면 계단 올라오실 때 조금 기다렸다가는 것. 누군가가 감동을 받는다거나 이런 것보다, 저분 오셨나? 이런 것이다”

과천현대미술관 김혜정 연구원.

-과천관이 30주년 특별전으로 신경을 많이 쓴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타 미술관과 차별점을 갖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나.

“교육 쪽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수요일은 어르신, 목요일은 주부, 금요일은 학생들, 토요일은 어린이들. 이런 맞춤 프로그램이 2014년도에 만들어졌다. 소외계층이라고까지 하긴 그렇지만 다양한 계층에 눈높이 설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소개하고픈 교육문화팀의 사업이라면.

“수·목요일 오전 과천관과 덕수궁관에서 시니어와 주부들 대상의 작품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낭만수요일은 어르신 대상으로 이동동선을 줄이고 전시장에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작품을 감상한다. 또, 주부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지 않나. 힐링목요일은 주부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라면.

“낭만수요일을 시발점으로 실제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어르신 대상으로 하는 작품감상 프로그램를 운영하면서 노인복지센터나 탑골미술관 등에서 역으로 섭외가 온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슨트 훈련 요청이 들어오는데 그 분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는가”

-해설 준비과정은 어떤지 설명부탁드린다. 기본 스크립트같은 것이 있나.

“기본적인 교육안은 학예실로부터 넘어오고, 1차적으로는 논문을 많이 본다. 논문 외에는 도록. 관련 사이트, 작가 홈페이지 등 다양하다. 논문도 오래된 것들은 피하고, 최근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인터넷 검색은 참고만 한다. 정보의 신뢰성 문제 때문에. 그 외에는 동선을 연구해 기본 스크립트는 정리해 둔다. 3개층 전관을 투어해야 하니까”

김혜정 연구원이 전시해설을 하고 있다.

-동선은 어떻게 짜나.

“이해의 맥락에 따라 작품 엮는 동선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박래현의 ‘노점’을 가지고 국전이라는 제도권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도 있지만, 전쟁 이후 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들의 노점. 또 행상에 나선 엄마 대신에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 이 둘은 시대적인 이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분류될 수 있다. 수장고에서 꺼낸 작품을 어떻게 엮느냐. 작품을 보고 나갈때 어떤 이야기로 남을까. 이야기의 구조를 세우는 구상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시해설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왜 그들이 그때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시립미술관 고흐전으로 기억한다. 어느날 장애우들이 왔다. 그 친구들이 '노란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다. (일설에는 고흐가 '노란집'을 그린 시기에 독주인 압생트 중독으로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이 나타나 노란색을 썼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참 깜짝 놀랐다.

내가 설명하는 텍스트가 얼마나 부질없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내 말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 반응한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그래서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낀다. 혹시 나는 내가 알고 있는걸 전해주는 것은 아닐까 내 자신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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