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규방공예는 접화(接化)의 문화다. 서로 대립적인 존재가 만나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접화는 중심이 없는 균등한 통합이다. A와 B가 혼합되어 C라는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접화는 색동저고리가 그렇고 보자기가 그렇다. 보자기의 모국(母國)은 한국이다. 전통 보자기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증폭될 정도다. 규방공예는 말 그대로 바깥 출입과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이 규방에 모여 한복과 이불을 만들고 남은 조각들로 생활용품을 만들던 것에서 유래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이자 생활예술이다. 작품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동서고금을 횡단하며 펼쳐지는 아름다움의 향연이다. 세계인이 환호하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다.

‘수원 조선의 라이프스타일을 꽃 피운다’라는 주제로 수원규방공예 20주년 기념전이 지난달 아트스페이스광교미술관에서 펼쳐졌다. 규방공예는 수원시농업기술센터의 규방공예강좌가 단초가 되어 수원규방공예연구회가 탄생했다. 조각보와 규방공예작품 활동을 하면서 불모지였던 수원에 규방공예의 영역을 넓혀가며 20년의 연륜을 쌓았다. 50여 명의 규방공예 작가들이 모여 활동한다. 화성행궁 유여택 전통 공간에서 벗어나 600여 평의 현대공간에서 다채롭게 조각보, 공예 오브제를 표현한 색다른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복식, 염색, 자수, 매듭, 족두리 등 공예 전반에 걸친 소품들이다. 전통의 지혜와 역사성을 작품에 끌어와 아름다움을 엮었다.

수원규방공예연구회는 수원화성문화제 일환으로 전국규방공예공모전을 개최할 정도로 입지를 확고히 할 정도로 발전했다. 해외 여러 나라 작가들이 참여하여 세계와 규방공예의 가치를 나누는 국제보자기포럼도 개최했다. 관(官)이 아닌 규방공예를 사랑하는 순수하게 시민들이 앞장서 일으킨 수원의 문화자산이다. 조각보 명인 나정희 초대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결속이 만든 결과물이다. 손을 놓지 않고 충실하게 배움과 연구에 매진해 온 회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수원시규방공예연구회 서은영 회장은 “섬유공예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초대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섬유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대형 전시라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전통 조각보 규방공예를 널리 알리는 전시와 연구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하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복주머니, 한 땀 한 땀 수놓은 베개, 한복을 짓고 남은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 가리개, 보따리, 오방색과 자투리 천의 조형미, 매듭, 침선, 염색, 자수로 완성된 작품과 전통기법, 동시대에 변화하는 규방공예를 200여 점의 다채로운 전시작품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여성의 공간인 규방에서 만들어진 생활공예품들은 한국인의 삶을 온전히 품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다.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수를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오방색 유물을 통해 오행을 색으로 나타내어 목은 청(靑), 금은 백(白), 화는 적(赤), 수는 흑(黑), 토는 황(黃)으로 대응시킨 선조들의 지혜와 색채 감각을 읽게 한다. 동서남북 중앙의 다섯 방위도 이에 해당된다. 우리 색동은 오방색을 중심으로 배치하여 색동옷, 오방낭자. 벽사(辟邪)하는 귀주머니, 색동 덧버선, 오색실, 까치두루마기, 돌띠 등이 있다. 오방색은 우리 전통색으로서 건축물의 단청에서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조각보, 누비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귀하던 시절, 한국 여성의 특유의 재치와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는 기념전이다. 다양한 규방공예 작품을 통해 옛사람의 삶을 엿보는 일은 혼자 상상하며 그 시대 삶을 완성해보는 쏠쏠한 즐거움도 선사한다. 모든 문화는 문화 의지(意志)의 열매다. 규방공예의 특징은 품위와 어우러진 진지함, 아이디어의 다양함, 형태를 완성시키는 고전적인 간결함, 절도 있는 형식의 표현이다. 오방색 조각천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되듯 규방공예 작가들이 규방공예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여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