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하모니카를 수석 부두목으로 임명한다. 하모니카 앞으로 나와.”
“옥수수 이빨, 이 새끼 빨리 안 나와!” 
하모니카가 보이지 않자 하델은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엉엉.”
“어떤 새끼가 우는 거야?” 하델은 광선총을 빼어 들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확 쏴 죽인다. 나 우는 소리 겁나게 싫어하는 거 알지?”
“하모니카님이 우리를 살리고 대신 전사했어요.” 
우는 부하 멱살을 거머쥐고 머리에 총을 겨누자 그렇게 대답했다.
“훌쩍훌쩍.” 
여기저기 우는 소리가 더 나기 시작하더니 수천 군데가 되었다.
“이 새끼들아, 뚝 안 그쳐!”
퓽퓽퓽! 하델의 광선총이 허공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러자 우는 소리들이 진정되었다.
“하모니카 이 새끼가 해적답게 뒈질 일이지, 멋을 부리고 지랄이야.” 
하델은 럼주를 벌컥벌컥 마셔 댔다.
“우리 중에는 오르트와 싸우다 죽어 줄 놈들이 필요하다. 멋있게 뒈질 놈들 앞으로 나와.”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울던 부하들 대부분이 앞으로 나왔다. 부두목 중에는 20인자로 강등된 찌라시가 벌벌 떨면서도 용기 내어 보겠다고 앞으로 나섰다.
“더 없나?”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나를 오르트 대제에게  보내 줘. 내가 협상해 볼게.” 
동굴에서 눈빛보석이 투명공을 굴리고 나오며 말했다.
“햐, 내 입에서 욕 나올라 그러네. 오르트는 협상 같은 거 모르는 놈들이야.” 
하델은 화나는 것을 참느라 애썼다.
“찌라시, 왕자가 폼 나게 죽는 것에 관심이 많은가 본데, 네가 길동무해.”
“알겠습니다요!” 
하델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20개 별 중 4개의 별에 죽기를 각오한 부하들과 눈빛보석을 나누어 태웠다. 그리고 두목별인 자신의 별과 5인자부터 19인자까지의 부두목과 대부분의 다른 해적들을 골고루 태웠다. 마지막으로 20개 별들의 운행 각도와 주기를 하델 자신이 직접 맞추고 고정시킨 다음 봉인해 버렸다.
“키드라, 이 형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하델은 키드라에게 전화를 했다.
“아우야, 이 형님 애 떨어지게 말하지 마라.”
“쓸만한 별 네 개 보낼 테니 뜨내기 별 만들지 말고 살림으로 늘려라. 기드로온 왕자도 보내니까 잘 이용하면 우주 군단에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놈 괜찮은 놈이다. 험하게 다루지 마라.” 
키드라는 하델이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놈아야, 너 왜 그러니?”
“내가 우주 협곡 서쪽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며 오르트를 막을 것이다. 그동안 우주 군단과 협상 잘 해서 우리가 탈출할 때 가졌던 꿈처럼 살아 달라는 게 이 형님의 유언이다. 그럼.”
뚝! 이것이 키드라가 들은 하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이 새끼 이거 진짜 나쁜 놈이네. 나 보고 지가 똥 싸 놓은 거 다 닦으라는 거잖아? 야 이 새끼야, 나랑 역할 바꿔!” 
키드라는 빈 전화기에 대고 소리 지르며 난생 처음 눈물을 뿌렸다.
우주 협곡의 동쪽으로는 우주 3군단이 접근하고, 서쪽으로 혜성들의 집합체인 오르트 대군이 시시각각 몰려오고 있었다(서쪽 입구는 벌써 전투 중인 곳도 있었다.). 우주 협곡 서쪽 입구에는 하델의 별 20개가 나란히 띠를 이루고 있었다. 협곡 밖에 있던 명왕성은 메뚜기 떼에 습격당한 옥수수 밭처럼 황폐화되어 살아남은 것이 없었다. 
“오르트들이여, 이제 우주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와아아아.” 
오르트는 몰려다니는 먹장구름처럼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협곡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델의 용사들이여, 장렬하게 전사하자!” 
하델의 별은 달려드는 오르트를 향해 달려가며 모든 포문을 열고 쏘아댔다. 워낙 사납게 하델이 좌충우돌하자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던 오르트들이 주춤했다.
“죽기를 각오한 자들은 가라!” 
4개의 별이 오르트를 향해 가려 하자 그 별들은 반대 방향으로 바람처럼 날아갔다.
“아니? 우리도 도망치자.” 
15명의 부두목들이 타고 있는 별들도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수만 명의 해적이 타고 있는 그들의 별은 서서히 협곡을 향해 나란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끄럽게 산 것에 대해 사죄 한 번 하자! 내가 가장 먼저 죽을 것이다. 나 보다 먼저 죽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제서야 속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15개의 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르트에게는 항복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네 개의 별이 안전한 곳까지 달아나게 악귀처럼 싸워보자!” 
5인자가 소리 질렀다. 
“이왕 죽는 거 폼 나게 죽자!” 
죽음을 선택 받은 자들이 마지막 의미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했다. 협곡에 몰려든 수십억의 오르트들이(협곡 밖의 숫자까지 합하면 100억이 넘을 것이다.) 수만 명의 하델 해적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저지당하고 있었다.

해적 신사
네 개의 작은 별이 우주 협곡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도 남아서 싸워야 하는데 별이 말을 안 들어.” 
하델의 스무 번째 부두목인 찌라시가 방향을 바꿔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부두목님, 키드라 별이 보입니다요.”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거 아냐? 경계 태세를 갖추자고.” 
찌라시와 네 개의 별에 나누어 탄 해적들이 긴장했다.
“걱정하지 마. 키드라는 너희들을 한 식구로 맞이할 거야.” 
눈빛보석이 안심시켰다.
“왕자가 어떻게 알아? 부두목인 나도 모르는데.”
“못 믿겠지만 절대 먼저 총을 쏘지 마.” 
찌라시는 눈빛보석이 일러 준 대로 부하들이 먼저 총을 쏘지 못하게 지시했다. 네 개의 별이 키드라의 별들 한가운데 다다르자 자동으로 운행을 멈추었다.

키드라 해적들은 네 개의 별을 향해 어느 누구도 총을 겨누지 않고 있었다. 키드라가 찌라시와 눈빛보석이 타고 있는 별로 옮겨 탔다.
“오느라 수고들 많았다. 이곳의 대장은 누구인가?”
“예, 접니다요.”
“오, 너는 강등된 찌라시 아니냐?” 
키드라는 하델의 부두목을 알아보고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아는 척 해 주었다.
“반가움보다는 슬픔이 앞서지만 너희들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다. 이것은 하델 두목이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부탁한 것이다.” 
네 개의 별은 눈물의 별이 되어 흐느꼈다.
“하델 두목은 눈물을 증오했던 것으로 안다. 그를 위한다면 눈물 대신에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이 그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키드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알박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우리 별들이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화상 송출해.” 
알박이는 찌라시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키드라의 지시에 따랐다.
“모두 들어라. 나는 키드라다. 오늘부터 우리의 별이 네 개 더 늘었다. 한 가족이 된 새 식구들을 진심으로 환영해 주기 바란다.” 
키드라의 해적 별들은 원수가 되어 싸우던 네 개의 해적 별을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두목이 변했어. 해적왕 맞아?” 
키드라는 그동안 이런 연설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다섯 개의 별을 빼앗았을 때도 일언반구 없었다.
“식구가 늘어났으니, 이제부터는 품위 있는 해적이 되어 주기 바란다.”
“어떻게 하면 품위 있는 해적이 되는 거지?”
“넥타이 매고 백구두 신고 칼춤 추는 해적이 되어야 하는겨?”
“그랄라문 넥타이하고 백구두를 약탈하러 가야제!” 
두목의 말뜻을 해적들은 그간의 방식대로 킬킬거리며 떠들었다.
“이제 됐어.” 
알박이가 송출 신호를 차단하자 키드라는 두리번거렸다.
“기드로온 왕자는 어디 있는가?”
“아예, 옆 동굴에 가두었습죠. 끌고 올깝쇼?”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찌라시의 안내를 받으며 키드라는 옆 동굴로 갔다. 눈빛보석은 여전히 투명공 속에 갇혀 있었다.
“기드로온 왕자님이십니까? 나는 키드라라고 합니다.” 
키드라는 눈빛보석을 보자 반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갖추었다.
“무엇들 하느냐? 왕자님이시다!” 
알박이가 키드라를 따라 예의를 갖추며 주위에 서 있는 해적들을 향해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멀뚱멀뚱 구경하던 해적들이 엉겹결에 모두 반 무릎을 꿇었다.
“찌라시 너는 안 해?”
“아예!” 
알박이가 부두목 서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수를 친 셈이다. 찌라시도 얼른 반 무릎을 했다.
“왕께서는 말을 놓으세요. 저보다 높으신 분이잖아요.” 
눈빛보석은 이 해적 신사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고 싶어졌다. 왕이라 불러 줌으로써 왕자인 자신보다 위에 놓은 것이다.
“허 참, 촌구석 해적에게 왕이라니요? 민망합니다.”
“저야 말로 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얼른 일어나주세요.” 
키드라는 하델이 말한 대로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주위의 해적들도 키드라를 따라했다.
“부두목, 왕자님을 풀어드리도록.” 
찌라시가 투명공을 열려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뒤졌다.
“그냥 두십시오. 협상하시려면 제가 이렇게 갇혀 있는 것이 유리하실 겁니다.”
“그래도.” 
키드라는 미안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은 이곳으로 우주 군단이 다가오고 있어 서쪽 협곡 못지않게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눈빛보석도 우울한 표정으로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실례를 범해도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왕께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키드라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애를 썼고, 눈빛보석은 진심이 전해지는 것에 공을 들였다. 우주에 어떻게 저런 왕자가 있을까? 키드라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그동안 우주의 부당함이 가진 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해적질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납치극도 나름대로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왕자님께 불편함이 없도록 해 드려.” 
키드라는 찌라시에게 지시하고 동굴 문을 나서려 했다.
“왕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슨?” 
문을 나서려던 키드라가 눈빛보석의 말을 듣고 멈추며 돌아섰다.
“은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아, 그렇군요!” 
왕자의 말을 듣자마자 깜빡 잊은 것을 깨달은 듯이 키드라가 대답했다.
“당장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하나가 되다
키드라는 두목의 별로 부리나케 갔다.
“은교를 찾아온 손님이 있는데 만나려나?”
“그럴 리 없는데요.” 
은교가 이같이 대답한 것은 우주에서 자신을 찾아올 이는 오직 기드로온 하나뿐인데 하델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키드라는 예쁜 의자에 묶여 있던 은교를 손수 풀어 주었다.
“어찌 제가 할 일을 두목께서 하십니까요?”
“야 임마, 앞으로 제독이라고 불러.” 
작전 참모 알박이가 거들려 하자 키드라는 자신의 호칭을 수정해 주었다. 눈빛보석이 존칭해 준 왕이라고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웃음꺼리가 될 것 같아 조금 세련된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예예, 제독 두목님.”
“아이 이 자식 보게, 제독 두목님이 뭐냐?” 
키드라는 알박이의 뒤통수를 치려다 손바닥을 호호 불며 참았다. 이제부터 품위를 지키려고 연습하는 중이었다.
“저어, 찌라시에게는 부두목이라 부르시던데….” 
알박이가 키드라의 눈치를 살피더니 손을 비비며 말을 우물쭈물거렸다.
“알았어, 알았어. 너도 부제독으로 불러 줄게.”
“감사합니다. 제독 두목님 각하!”
“어휴, 갈수록 태산이네. 야 임마, 제독 두목님 각하는 뭐야?” 
탁! 손바닥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부제독이 된 것에 도취되어 있는 알박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데구르르, 두 눈알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히히히.” 
빠진 눈알을 찾아 헤매면서도 알박이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