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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별기획취재] “동북아 화해-평화의 성지로 화강원(和康苑) 만들겠다”<2>
  •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 승인 2017.06.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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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지원군정신연구회 왕휘 비서장과 김선교 양평군수가 화강원& 조성에 ;의견을 나눈 후 협력을 다짐했다..

용문산 전투는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물리친 큰 전투

사창리 전투 불명예를 씻은 大勝 전투로 국군의 위용 과시

 

<1>편에 이어

14일 낮 유엔공군은 진지 주변에 몰려있던 중공군을 로켓탄 및 네이팜 사격으로 강타하고 유엔군의 중상자들을 헬기로 후송하는 동시에 탄약과 보급품을 떨어트렸다. 밤이 되자 백병전은 더욱 치열해져 곳에 따라서는 수 백 명에 이르는 중공군의 시체가 겹겹이 쌓였고 23연대장은 중상을 입고도 후송을 마다하고 병사들 곁에서 싸움을 독려했다. 이날 밤 중공군은 마침내 유엔군 진지의 한 모퉁이를 점령했으나 15일 새벽 날이 새자 유엔공군의 근접 항공지원 사격을 견디지 못해 물러났다.

15일 지평리 남쪽 후방에 있던 미제1기병사단에서 나온 크롬베즈 특공대는 지평리로 들어가는 주보급로를 다시 열고 저녁 무렵엔 23연대의 원진으로 들어가 포위망을 풀었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화력으로 눌러 국군과 유엔군의 전의와 사기를 크게 드높였으며 유엔군 전사를 통해 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전투다.

용문산전투는 국군 제6사단이 1951년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일대에서 방어하여 큰 타격을 입힌 전투로 당시 국군 제6사단은 1951년 중공군의4월 공세 때 사창리 에서 시련을 겪은 후 용문산 1157고지 일대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 다시 5월 공세를 개시하여 혈전이 시작되었고 중공군은 제19병단 제63군 3개 사단(제187, 제188, 제189)이 북한강과 홍천강의 합류점 부근을 방어중인 미제9군단의 중앙인 국군 제6사단 지역을 공격해 왔다.

국군 제6사단은 당시 북한강 일대에서 중공군의 공세기도가 감지되자 좌 인접 국군제2사단 제31연대가 화야산에서, 우 인접 미제7사단 재31연대가 두능산 에서 주저항선으로 각각 철수함으로써 제2연대만이 청평호 남쪽에 남게 되었다. 연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창리 전투의 결과로 연대장과 일부 참모들이 해임되고 송대후 중령이 신임 연대장으로 부임했기 때문에 비장한 각오로 방어진지를 준비하였다.

 

6.25 한국전쟁 상흔 달래줄 ‘화강원’ 조성은 양평의 大사업

피해자가 조성한 가해자 위령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연대의 정찰대는 17일 적의 예상 도하지점을 탐색하던 중 이미 도강하여 방하리 계곡에 집결중인 중대규모의 중공군을 발견하고 격퇴하였으나 일몰이 되어 대규모의 적이 북한강의 도처에서 도하를 기도함으로써 자대로 복귀하였다.

1951년 5월 18일, 중공군은 중대규모로 국군 제6사단 전초진지인 제2연대를 향해 몇 차례 도하공격을 기도하였으나 모두 격퇴하였다. 제2연대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화력을 지원받아 완강하게 저항하며 진지를 고수하였다. 중공군은 이곳 전초진지를 주저항선으로 오판한 듯 19일 새벽부터 제187, 제188사단의 주력을 투입하여 돌파를 기도하였다. 중공군은 우전방 공격에 이어 이번에는 예비인 제189사단을 투입하여 최전방 재2대대의 울업산을 집중 공격하였다. 제2연대는 나산 일대 전초진지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이틀간의 격전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또 식량과 탄약이 절대 부족하여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러한 국군 제2연대의 전황을 간파한 중공군은 19일 야간에 총공격을 개시하였고 이때부터 제1대대는 나산에서, 제3대대는 353고지에서, 제2대대는 427고지에서 전면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조명 지원하에 진내로 접근한 적과 백병전으로 점철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연대는 20일 새벽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방어진지 일부가 돌파되고 통신이 두절되어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어려운 상항을 맞기도 하였으나 강력한 정신력으로 진지를 고수하였다. 제6사단은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던 제2연대와 연결한 후 즉시 반격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20일 07시부터 18시까지 중공군 사살 4,912명, 포로9명, 소화기 312정을 포획하는 전과를 올렸고 반면 국군 제6사단은 거의 피해가 없을 정도로 5명만 전사하고 200명이 부상을 입는 정도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이로써 6사단은 사창리 전투의 불명예를 씻고 설욕을 감행, 용문산 전투의 대승이라는 기록을 세워 국군의 위용을 내외에 과시했다.

 

위령충혼탑 설치에 보훈단체도 긍정적 협조

관광프로그램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

 

이러한 6.25 한국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양평군은 화강원을 조성하면서 기본적인 구상과 세부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중점적인 화강원 사업에 대하여 김선교 양평군수는 “화해와 평화의 성지로써 추모를 모티브로 수목(樹木)을 활용한 조경시설 도입, 전쟁을 접해보지 못한 세대와 전쟁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세대공감의 장, 분단국가로써 동북아 평화에 항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통일이후까지 내다 볼 수 있는 화해와 평화시설로 조성하며 추모관은 참전 군인이 경험한 이야기에 예술을 가미하여 기억의 상징적 공유와 기존의 진열식 전시형태를 탈피하여 평화를 위한 관람객의 느낌과 공감을 상호 유도하는 공간으로 구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또 “유엔추모광장은 다용도 활용이 가능하고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광장으로 참전국의 국기와 참전비는 물론 예술로 화합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 지평리 전투 기념일에는 참전용사를 초청하여 화합의 장을 마련하며 위령탑 건립은 전몰자 숫자만큼의 높이로 석재를 이용하여 만들고 전쟁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위하고 추모하는 세계유일의 위령시설을 조성하고 각 참전국 대사관 및 지방정부와 협의하여 참전군인 고향에서 공수해온 석재로 건립하며 참전국 예술가를 컨소시엄으로 제작에 참여를 시키고 세계유일의 피해자가 조성한 가해자의 위령시설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업대상지의 여건을 보면 특별히 이 지역 양평은 국제적인 전쟁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고 역사교육 현장과 나라사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주민의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연계가 가능한 관광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평막걸리, 용문산관광단지, 5일장, 구둔역, 해바라기마을 등이 있고 또한 위령탑 설치에 긍정적으로 보훈단체들이 협조를 하고 국가별 이념종식으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필요성이 증대되며 사업대상의 토지는 국방부와 교환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관광객이 더욱 더 증가를 하도록 노력하고 이에 맞물려 전철 지평역이 개통에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업지의 잠재력 및 발전가능성은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변화에 따라 전쟁관련 문화자원을 보는 인식의 변화가 있고 대상지주변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의지와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며 청정 자연환경과 관광단지, 농촌관광프로그램, 각종축제, 지역농협과 연계된 생산판매망 등 지역의 자원이 풍부하고 대상지 주변을 중심으로 거점을 설정하고 지역의 지원과 연계한 관광프로그램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며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특히 이 사업을 위한 추진전략으로는 지평-용문의 전투에서 희생한 중국측 망자들을 화해와 평화의 장으로 승화시키는 전략으로 김선교 군수는 중국당국과도 긴밀한 협의를 나누고 있다.

김선교 군수는 “양평에 화강원을 세우는 사업은 세계유일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위한 위령시설 조성으로 국격을 향상시키고 이념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에 촛첨을 맞추는 사업으로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면서 “이로써 양평을 세계적인 화해와 평화공원의 메카로 육성하고 이분법적 개념이 아닌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통한 지역창생 전략추구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을 확보하면서 민, 관, 학, 예가 함께 참여하는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거쳐 가는 지평에서 머무는 지평으로, 보는 지평에서 체험하는 지평으로, 지평만이 가진 천혜의 자연풍경, 지평에서 맛 보는 다양한 먹거리를 위하는 일”이라고 강조 했다.

<일간투데이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중국인민지원군정신연구회 왕휘 비서장이 6.25당시 전투현장인 지평 말미리를 돌아보고 있다.

 

총탄이 박혔던 흔적의 커다란 바위가 현재 지평 말미리에 있다.

 

중공군 전사자들이 매몰된 지평 말미리 현장

 

여러나무 가운데 유달리 큰 이 나무 밑에 중공군 시신들이 지평 월산리 야산에 다량으로 묻혀있다. (국방부민간유해발굴단 발표)

 

6.25당시 지평 전투현장을 설명하는 이정훈(85) 노인

 

류재복ㆍ최인영 기자  snakorea.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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