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경험’으로 지난 13년의 경기교육을 새롭게 바꾸겠습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당선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당선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경기교육의 지형이 바뀌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지난 6월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성기선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며 민선5기 경기도교육감직을 수행하게 됐다. 임태희 당선인은 당선 소감을 통해 “이번 선거기간 동안 도민 여러분께서 이구동성으로 이번에는 경기교육을 바꿔 달라고 말씀하셨다”며 “이제 그 약속을 실천하겠다. 13년의 획일, 편향, 현실안주 교육을 끝내고 자율, 균형, 미래지향 교육으로 경기교육을 새롭게 바꾸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임 당선인은 “경기교육의 불편했던 진실을 하나하나, 구석구석 잘 살펴 앞으로 4년간, 지난 13년 동안 누적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경기교육의 미래를 위해 쏟아 붓겠다”고 강조했다. 임 당선인이 공직자로서, 3선 국회의원으로서, 또 대학교 총장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경기교육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경기도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면서 임태희 당선인은 “경기도 모든 지역, 모든 학생에게 올바른 교육, 따뜻한 인성, 고른 교육기회를 누릴 권리를, 학부모는 돌봄과 사교육비, 진로, 폭력 등 걱정에서 벗어나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 드리겠다”며 “앞으로 4년,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를 더 경청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 정책에 반영하는 ‘소통’ 교육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코로나19, 학력저하 등으로 위기에 처한 경기교육에 임태희 당선인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들어오고 있다. 경기도의 미래, 경기교육이 꽃피울 새로운 모습이 기대가 되는 시점이다.

 

학부모들께 공교육에 대한 믿음 되찾아 드리겠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 정책반영…‘소통 교육감’ 되겠다

 

▲ 앞으로의 ‘경기교육’에 대해 미리 정의해본다면.

우리 아이들과 학생들이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글로벌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임태희와 함께하는 4년은 ‘바꾸고 새롭게’라는 슬로건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모든 지역, 모든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 따뜻한 인성, 고른 교육기회를 누릴 권리를 되찾아드릴 것입니다. 학부모님들께는 돌봄과 사교육비, 진로, 폭력 등 걱정에서 벗어나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를 더 경청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 정책에 반영하는 ‘소통하는 교육감’이 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교육 공약이 있다면.

우선 학력저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시험이 없는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1년이 우리 아이들의 기본학력을 망가뜨렸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시험은 문제가 있지만 학력진단 한 번 없이 7년을 보내면 기초기본 학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기본기가 없으면 어떤 역량도 쌓을 수 없으며, 학력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은 코로나19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돌봄문제의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돌봄이 교육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을 할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경기도는 맞벌이 부부가 맣ㄴ아 돌봄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고, 학부모는 학교돌봄을 원하지만 실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제한적이죠. 부모도, 아이도 안심 돌봄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돌봄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지속적인 검토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혁신학교·9시등교제 등 전 교육감의 정책들에 대한 변화가 있을지.

평가와 진단을 기피하는 진보교육시스템에서 학업성취도나 기초학력 수준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아 ‘혁신학교는 공부 못하는 학교’ 논란의 진위를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혁신학교 학력 저하 문제제기를 정치적 공세로 몰아붙이기 전에 평가 않는 교육을 만든 13년 경기교육 책임자들이 스스로 논란과 불신을 자처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혁신학교는 공부 못하는 학교’라는 학부모 불안을 종식시키려면 학업성취도평가를 하던 초·중학교에서 제대로 평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정된 교육예산을 혁신학교 학생들이 더 누리고 학생 수도 줄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반학교 역차별이 민주적 학교문화를 지향한다는 혁신학교의 이면에 가려진 씁쓸한 현실이며, 혁신학교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일반학교 학생들이 받게 되는 역차별도 바로잡을 것입니다.

9시 등교제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폐지가 아닌 학교 자율로 돌려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초중고교가 다르고, 지역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학생의 건의라고 무조건 밀어붙여 공론화도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학교 사정에 따라 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교원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말로만 자치라고 하지 않고 학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자치역량도 높이겠다는 것이죠.

아침을 먹고, 늦잠을 좀 더 자고 싶어 9시에 등교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으나 아침 결식률이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맞벌이 등으로 이른 등교가 부득이 필요한 학생은 아침급식을 실시해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고, 어린 초등생의 경우 홀로 등교하다 일어날 수 있는 사고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교학점제가 시행될 예정이나 교육현장에서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고교학점제는 학교의 수업·평가, 학교의 시설과 문화 등 고교 교육 전반을 변화시키는 제도라 할 수 있는데요. 교육현장에서 교원 인력의 부족과 교육 공간의 확보 등의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국교총이 발표한 교원인식조사 결과에서 고교학점제 도입을 반대하거나 최소 미뤄야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기사를 본적도 있구요.

그러나 경기도에선 이미 시범 시행을 진행하고 있고, 2025년에 전면 시행할 예정이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내년부터 시행을 위해 준비해왔다고 볼 수 있죠.

교육감이 되면 현재 운영 현황과 일선 학교 준비 상황 등을 토대로,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는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결정할 생각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고교 교육 다양화를 위해 학점제 시행에 찬성하지만, 고교 교육 체제 전반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가 되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난 후에 학점제 세부 추진 일정을 발표할 것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온라인 고등학교, 실습 학기 등을 활용한 고교학점제 시행을 예고한 만큼 국가 정책 기조와도 보조를 맞추고, 학부모와 교사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잘 점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 구성되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서도 교육부와 이 문제에 대한 방향을 조속히 정하도록 방침을 세우겠습니다.

▲ 13년간 이어져온 정책의 변화로 혼선이 우려된다. 교육현장과의 소통방안은.

지난 13년의 경기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경기교육을 새롭게 바꾸고자 하는 도민들의 의지와 열망이 담긴 것입니다. 물론 변화의 과정에서 불편함이나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교육현장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나갈 계획입니다. 당선 인사에서도 소통하는 교육감이 되겟다고 밝힌 것처럼, 교원단체와 교원노조를 비롯해 교육청 행정직, 공무직 등 노조 대표와 협의회 등을 만나 정책에 대한 이야기, 현장의 어려움 등을 들을 예정입니다.

학교 현장도 가능한 한 많이 찾아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교육감 방문으로 학교에 부담되지 않게 미리 예고는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많이 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견이 많은 정책을 추진할 때는 이해관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할 것입니다. 지난해 학교 업무 재구조화 사업이나 스쿨넷 사업 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불통행정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 경기 학부모·학생·교직원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민 여러분의 성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13년의 획일, 편향, 현실안주 교육을 끝내고 자율, 균형, 미래지향 교육으로 경기교육을 반드시 새롭게 바꾸겠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경기교육의 미래를 위해 쏟아 붓겠습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그는 누구인가

판교에서 서울로의 유학, 학창시절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1956년 12월 1일 광주 낙생면 판교리(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서 태어났다. 낙생초교와 양영중을 나와 서울로 유학을 떠난 그는 서울 경동고에 입학했다. 100m를 12.7초로 뛰고 멀리뛰기 최고 기록이 5m일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탄탄한 체격에 운동감각까지 갖췄다. 특히 유도에도 소질이 남달랐다.

그러나 입학 후 처음 치른 시험 결과는 타고난 운동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운동을 그만두게된 계기가 됐다. 반에서 46등이라는 난생 처음 받아본 두자릿수 등수에 그는 유도부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재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자신이 진정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법대가 아닌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경제 일꾼 꿈꾸던 샐러리맨에서 공직으로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행정고시에 응시하여 1차에 합격했지만, 시험 준비 대신 취직을 선택했다.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글로벌한 경제 감각을 키우며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임 당선인은 꿈을 펼칠 일터로 금융권을 생각했고, 그중에서 외환은행이 꿈의 근사치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생각했다. 1970년대 한국은 수출과 무역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시기였고, 197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종합상사에는 세계 무대 개척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경제적 후진국이었던 한국에 있어 경제와 경영은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하였으며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나라, 세계 무대에서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보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고, 고민 끝에 임 당선인은 은행을 나와 행정고시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6개월의 노력 끝에 받은 결과는 합격이었다. 경제 일꾼을 꿈꾸던 샐러리맨이 공무원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꾼 순간이었다.

대통령실장 공관시절

결혼 생활과 인생 전환점에 이르기까지

공직에 몸담게 된 임 당선인은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하던 중 현재의 아내와 만나게 됐다. 1984년 3월 1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스물아홉 공군 장교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회사에 다니던 스물네 살 아가씨가 선을 보게 된 것이다.

지금의 판교는 테크노밸리가 들어선 첨단도시이지만, 당시 판교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2남 3녀의 장남인데다 사실상 청년 가장이었던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긴 했지만 좋은 조건의 혼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임 당선인과 아내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만남을 이어나갔다. 명동 뒷골목 허름한 식당들은 둘의 단골 데이트 코스였다. 3얼 11일 처음 만난 임태희 당선인 부부는 4월 5일 부모님 상견례를 치르고 만난지 77일째 되는 날인 5월 26일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임 당선인 부부는 결혼 3년만인 1987년 오래된 농가 주택을 허물고 새롭게 집을 짓게 됐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당선인이 태어난 성남시 판교동 208번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지금까지 줄곧 성남시민으로 살아오고 있다.

1년 반의 영국 생활과 귀국

결혼 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사무관 수습을 뗀 뒤 재무부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새벽같이 나가면 퇴근은 시간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온종일 일에만 매달렸고, 온 가족이 모여 하는 식사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특별 이벤트였다.

그러던 그는 1996년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이했다. 2년 동안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 연구원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영국 생활을 결혼 이후 12년 만에 찾아온 단꿈같은 보너스라고 추억한다. 보통 사람들처럼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평범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뿐이었으나 그조차도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국가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6개월만 있으면 예정대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그는 경제부처 공무원으로서 문제해결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다.

2000년 제16대 총선 직후 당선 인사 장면.

정치에 출사표를 던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실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했다. 은행권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정말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정치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향인 분당에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특별한 전략이나 거창한 슬로건은 없었다. “국민을 위한 마음, 더 크게 쓰겠습니다”는 말이 전부였지만, 진심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비방이나 흑색선전 대신 지역주민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새내기 정치인의 초심을 주민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이후로 그는 3선 국회의원으로 국민들의 부름을 받아 일하게 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 당시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여당의 텃밭이었던 호남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역 현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자는 모임을 주도하고 스스로 목포지역을 맡았다.

처음엔 미덥지 않던 목포시민들도 제2의 고향, 제2의 지역구로 삼은 목포를 몇 년째 계속해서 찾아가자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목포 관련 예산 신청서를 들고 경제부처 공무원을 직접 설득하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목포 공무원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자신들의 지역구 의원을 찾듯이 자연스레 그의 방을 드나들게 됐다. 임 당선인은 1897년 목포 개항 이후 여섯 번째로 명예 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는 소식은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4선의원을 지낸 백봉 라봉균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정직성, 언행일치, 교양, 지성, 리더십, 소신, 모범적인 의정활동, 공정성, 합리성 등을 토대로 의정활동을 지켜본 국회 출입 기자들이 여러 국회의원 가운데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인데, 그는 ‘백봉신사상’을 모두 4번 받았다.

한경대 총장 재직 시절 학생들과 함께.

 ■ 다섯번째 공직생활, 경기교육 변화의 바람

그는 지난 40년 이상을 공직자로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해보기 어려운 일을, 그것도 분야를 달리해가며 네 번이나 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전부 공적인 자리였다는 것도 그에게 있어 과분한 영광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라고 여기며, 공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을 잊지않고 늘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다.

경기도 유권자와 학부모님들의 부름으로 이제 그는 경기도교육감으로서 다섯 번째 공직을 수행하려 한다. “이 또한 경기도 유권자와 학부모가 주신 ‘혜택’이자 ‘명령’이다” 임태희 당선인은 이같은 마음가짐과 함께, 본인의 좌우명인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하는 자세로 경기도교육감직 수행에 나선다.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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