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먼 산을 머금고 활동하고 있는 수원출신 원로작가 박영복⦁이선열⦁권영택의 미술전이 눈길을 끈다. 화풍(畫風)은 서로 다르지만 세 작가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젊은 시절 경기청년미술인회 창립회원으로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후학을 키우던 교육자들이었다. 고향 수원을 떠나 백두대간의 가파른 산과 굽이치는 강이 흐르는 강원도 평창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화풍을 추구하고 있다. 왜 그들은 청장년기와 교육자로서 잔뼈가 굳은 수원을 떠나 평창 산속으로 옮겨간 지를 기획전을 보면서 속내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화폭마다 가득 채워진 생명력 넘치는 풍광을 보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세 작가의 작품에 흐르는 주제는 자연이다. 박영복 작가는 일상의 소박한 풍경을 시적 세계로 변모시켰다. 이선열 작가는 명승지의 수려한 풍광을 섬세한 수묵담채로 표현했다. 권용택 작가는 산하의 풍경 속에 수천 년의 역사와 현실을 담았다. 아마도 세 작가가 혼잡한 도심을 벗어나 주변의 간섭을 벗어나 자유로움으로 자연을 음미한 묵직한 시선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박영복은 다양한 장르가 교차하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회화를 중심으로 굳건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온갖 꽃과 풀, 높고 낮은 언덕과 계곡이 어우러진 정감 가득한 풍경을 ‘일상일기’ 시리즈로 담아냈다. 그의 작품 중 캔버스에 아크리릭(acrylic)으로 그려진 대작(大作) 일상일기(마을이야기)는 아마도 박 작가의 화실 앞에 펼쳐진 백두대간 산줄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한 마을과 숲, 내려앉을 듯한 구름, 아지랑이가 이는 산골짜기, 자유롭게 펼쳐진 밭두렁들을 담아냈다. 작가 특유의 잔잔한 정서가 묻어난다. 2006년 이후 선보인 ‘일상일기’ 연작은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함께 거친 질감을 드러낸다. 특히 큰 수해를 입고 작업실이 흙더미에 뒤덮인 아픔을 구호품을 받은 포대자루를 붙이고 흙을 섞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선열은 수려한 산수 풍광을 작가의 눈에 보이는 경치를 단순히 묘사하기보다는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과 진지한 태도를 화폭 가득 채웠다. 도판(陶版)에 코발트 채색으로 선 보인 ‘비룡폭포’,‘정선(旌善)’,‘울산바위’,설악‘을 보면 그가 도자 패널과 청색 안료를 자유롭게 혼용해 제작한 작품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기획전시에서 선보이는 산수화(山水畵)는 전통 재료인 화선지와 먹으로 그린 작품을 통해 백두대간의 산맥의 선 굵은 능선과 푸른 석벽(石壁)이 겹겹이 둘러있는 계곡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충동을 안겨준다. 산하의 흥취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권용택은 평창 작업실 주변에 즐비한 청석(靑石)에 그의 시선이 머물러 그 돌을 재료로 작품화했다. 그가 평창에 옮겨온 뒤에 새롭게 시작한 작업이다. 백석산 중턱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야생화와 청석이 작품 소재이자 재료다. 권 작가는 돌의 굴곡진 틈새를 보며 장엄한 산맥과 힘차게 휘감아 도는 강줄기에 매료된 듯하다. 평창의 자연석 위에 아크릴릭으로 제작된 ’백두대간‘, ’토왕성 폭포‘ 등은 작가의 특이한 시각으로 자연 생태계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울퉁불퉁한 자연 그대로의 돌 위에 산과 물, 하늘을 그려 작품화하여 독특한 화풍을 자아낸다.

보는 관람객은 작가가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기존 사고(思考)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면 좋다. 그림은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세 작가는 수원 미술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래서 이번 기획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산을 머금은 화폭과 돌에 담긴 3인3색의 ’중후(重厚)한 시선‘으로 펼쳐진 수원출신 원로작가 박영복⦁이선열⦁권용택 기획전은 내달 12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시민 모두가 기쁨을 공유하는 전시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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