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당분간 은교를 이곳에 두어야 안전할 것 같아.”
“무슨 얘기야? 데려가야지.” 
범진의 말을 동의할 수 없다며 마리아가 팔을 저으며 말했다.
“혹시 요즘에 집 주위에 모르던 새들이 보이지 않았어?”
“전에는 없던 올빼미와 까치들이 많았어. 그러고 보니 까치?” 말을 하다 말고 마리아가 놀라는 표정으로 중단했다.
“새들이 처음부터 은교를 납치하려 한 것 같아. 어쩐지 이상해서 너만 오라고 한 거야. 오면서 따라오는 새들은 없었어?”
“못 봤어.” 
범진이 절로 직접 오게 하지 않고 퇴촌에 와서 전화하라고 했던 것은 혹시나 해서였다. 그리고 절까지 오는 도중에도 미니버스를 따라오는 누가 있을지 몰라 사이드 밀러를 보며 자꾸 살폈던 것이다.
“그 새들은 그냥 새가 아닌 게 분명해. 은교가 안전해질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
“여기 있으면 안전할까?”
“장담할 수 없지만 서대문보다는 나을 거야.” 
범진 스님이 은교의 맥을 짚으며 말할 때 은교가 깨어나려는지 눈을 뜨고 있었다.
“은교야! 에미다.”
“으음, 여기가 어디지?” 
마리아 원장이 기뻐서 얼른 은교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은교는 두리번거릴 뿐 마리아와 범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은교는 어제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가는 중에 조약돌을 긁고 있다가 시커먼 차들끼리 충돌할 때 충격으로 실신했던 것이다. 
“은교야, 왜 이래?” 
기쁨도 잠시, 마리아는 오열했다. 범진은 마리아를 안아 주며 등을 다독거렸다.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아직 밖에는 비가 내리고 범진의 눈도 젖고 있었다.

■ 우리 왜 싸우는 걸까? 
수원성의 공방전은 하루가 지나도 치열함이 멈추지 않았다. 양측의 병력이 수십만 명으로 더욱 증강되어 범위가 확전되고 있었다.
“바람만 센 게 아니고 장대비까지 퍼붓네.” 
팔달문 대청마루에서 밖을 내다보며 걱정스러운 듯 동물 친구들이 말했다. 그 친구들에게는 이런 날이 참으로 배고픈 날이었다. 돌아다녀야 먹을 것을 구하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대청마루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눈빛보석은 슬그머니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빗물을 받아 모으더니 스프를 한 솥 끓여 대청마루 한 가운데로 가져다 놓았다(스프에 캡슐 한 개를 풀어 넣었다.).
“우와, 맛있겠다.”
“웬 거야?”
“눈빛보석이 사 온 것 같아.” 
노랑가슴이 얼른 친구들의 궁금증을 수습했다.
“우리가 넋 놓고 비 구경할 때 건너편 스프집에 가서 사 왔구나?” 
궁궁이는 평소에 그 집 앞을 들락거리며 감자 스프를 먹고 싶어 했었다.
“감자 스프보다 맛있어.” 
꼬박 하루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작은 동물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다섯 작은 동물 친구들은 73년씩 더 살 수 있는 자연 수명을 얻은 것을 모르고 있다. 눈빛보석이 스프 속에 넣은 캡슐 한 알(1알 365년÷다섯 친구=73년)을 나누어 먹은 것이다.  별들의 전쟁 때문에 친구들이 먹는 일로 고생하고 있어. 비바람뿐만 아니라 지진과 추위까지 이들이 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없는데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이라며 이들을 괴롭히고 있어. 
세상이 타락해 신이 노하시어 지구에 종말이 다가왔다고 예언하는 자들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유혹하고 있어. 여기저기서 매력적인 빛깔로 돋아나온 독버섯처럼.
하루라도 더 살려는 사람들이 자신은 굶으며 그들을 배불리 먹이느라 돈을 바치잖아.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도 자기들끼리 먹고 사는 일과 죽음의 공포를 평생 안고 있어. 너무 슬픈 일이야. 눈빛보석이 볼 때는 실패의 결과는 휴지통에 버려지듯 우주의 실패를 지구에 버려놓고 이들을 지우개처럼 지우거나 썩어 없어지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주의 해적들보다 못한 삶을 살다니, 아버지는 데네브를 이런 곳으로 보냈어.  아버지의 권위와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안드로메다를 위한 일이고 우주의 안전에 소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어. 나를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는 나를 위해 주지 말았으면 좋겠어(구조를 요청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논리 속에서 내 논리가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계산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내 논리로 엄연히 공존하고 싶어. 지금 내 논리는 이들이 먹는 문제로 사력을 다하는 것만큼 데네브를 찾느라 죽을 고생하고 있다고!’
갑자기 북수동 성당에서 본 성체성운의 불쌍한 아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처럼 말 안 듣는 아들 때문에 절대자가 복장 터지겠군!
“북수동 성당에 다녀올게.”
“이 비바람 속으로 가겠다는 거야?” 
걱정이 되어 팔달문 친구들이 말렸다. 백구는 옷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안전하게 갔다 온다고 약속할 테니까 이곳 친구들을 지켜줘.” 눈빛보석은 백구에게 귓속말로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팔달문 보호막을 열고 나오자 광선총탄과 레이저빔은 산지사방 빈 곳 없이 빗발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리치고 싶었다. 그만해!
“뭘 그만해?” 
해적별에서 하델이 의자에 앉아 끄덕끄덕 졸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꿈을 꾼 것이다. 키드라와 수원성에서 아무리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자 지루해서 졸고 있었는데 전쟁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꿈속에서 자신에게 소리친 것이다.
“이 자식이 누굴 보고 반말로 그만하라는 거야?” 
퍽퍽퍽! 20인자인 찌라시가 이유도 없이 매를 맞아야 했다.
“야, 맨날 너 때리는 거 재미없다. 딴 놈 데려와. 못 보던 놈으로 주먹이 신선한 맛 좀 보게.” 
하델 두목은 발길질로 20인자를 동굴 밖으로 내쫓았다. 19인자까지의 부두목들은 지금 수원성 전투에 참전하고 있어, 두목 동굴에는 부관으로 쓰고 있는 20인자와 단 둘이 있었던 것이다. 
“각하!”
“너 왜 왔어?”
“각하의 주먹맛을 못 본 신선한 놈이 한 명도 없습니다.” 
20인자의 보고에 열받은 하델은 다시 악어부츠를 벗으려고 낑낑 댔다. 그것으로 20인자에게 던지려던 것이었다.
“또스또스.” 부츠를 벗느라 쩔쩔매고 있는데 수신기에서 빨간 불빛이 깜박이며 소리를 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방해하는 놈이 어떤 놈이야? 빨리 보고해.”
“아우야, 나 니 형 키드라야.” 
순간, 하델이 동작을 멈추더니 근엄한 자세로 옷차림을 정돈하며 거들먹거리는 폼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오호호, 이거 누구셩? 족보책 뜯어서 딱지치고 노는 개아들놈이잖아.”
“여어, 언어구사 능력이 카니스보다 품위 있구마이. 차기 의장감이야. 훌륭해.” 
두 해적 두목은 한때 목숨을 같이하기로 맹세한 오르트에 있던 전우였다. 그 둘은 오르트에서 최고의 전투 능력을 가진 혜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를 죽이지 못해 한이 맺힌 원수 사이가 된 것이다.
“말 돌리지 말고 용건만 말해 시키야!”
“얌마, 우리 수원성에서 왜 싸우는 거니?” 
키드라가 하델에게 물었다.
“글쎄, 우리 애들이 지구에 간 것은 기드로온 왕자 납치하러 간 건데.”
“우리 애들은 데네브를 납치하러 건 거야.” 
키드라는 데네브를 납치하는 이유가 기드로온과 직결된다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다. 키드라는 너무 신중해서 시간을 끌다 앞의 생각을 종종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하델은 무엇이든지 행동이 급해 앞뒤 생각과 기억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델도 키드라도 서로의 말을 듣고 보니 싸울 일이 없었다.
“우리 왜 싸우는 거지?” 
두 해적 두목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기드로온 왕자를 납치하랬지 누가 거기서 우리 애들 다 죽이랬어. 멍청아!”성미가 급한 하델은 앞뒤 생각없이 수원성에 있는 3인자를 불러 호통쳤다.
“데네브 가시내를 납치하랬지 누가 쓸데없이 애들만 다 죽이고 있으랬어. 깡통 대가리야!” 
키드라도 알박이에게 화를 퍼부었다.
“기드로온 왕자를 납치하러 가는데 쟤들이 길을 안 비켜 줘요.”
“데네브를 납치하러 가야 하는데 저것들이 길을 막았어요.” 
수원성에서 이렇게들 보고하자 키드라와 하델은 화해하려다 말고 표정이 성난 사자와 호랑이의 얼굴로 변해 버렸다.
“엉아 화난다. 예쁘게 길 비켜라.”
“니 할아부지 이미 화났다.” 
둘이 다시 으르렁 대기 시작했다.
“비켜! 거랑말코야.”
“네가 비켜! 개아들놈아.” 
잠시 소강상태이던 전쟁은 다시 치열하게 공세를 퍼부었다. 눈빛보석은 소강상태일 때 북수동 성당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썩은 옥수수, 북문과 서문은 난공불락이라 뚫리지 않아. 다른 곳을 알아 봐.” 
삐쭉이는 3인자의 명령을 받고 왕눈깔과 함께 동쪽과 남쪽을 돌아보러 갔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하델별로부터 더 높은 지휘관이 내려와 삐쭉이는 3인자의 부관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3인자 부두목님, 화홍문으로 진격하십시오. 수문이라 우리를 막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삐쭉이와 왕눈깔이 돌아와 정보를 알리자, 화홍문으로 흘러들어가는 수로를 따라 수만 명의 하델의 부하들이 어둠을 틈타 이동했다.

빗소리들의 축제 마당
비 퍼붓는 성당 뜰은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 없이 빗소리들만의 축제 마당이었다.
성당 안에는 가로줄이 죽죽 처져 있는 것처럼 놓인 나무 의자들 중간에 동그마니 이제 사춘기에 들어선 나이의 눈빛보석이 혼자 앉아 있다.
“사랑에 대해 묻고 싶어 왔어.”
“너에게 물어야 해.”
눈빛보석은 실망했다. 모든 사람이 손발에 못 박힌 자국이 있는 이 사람에게 묻기 때문에 알고 있을 거라고 믿고 물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못 박힌 거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어.”
“아버지의 책임이잖아!”
눈빛보석의 말은 절대자의 아들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절대자의 생각을 바꾸려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가 해결책 같지 않은 그의 희생에 화가 났던 것이다. 베드로가 세 번 모른다 하고 유다가 그를 시험해 보다 모든 이에게 저주받은 이 사건이 지구가 절대자에게 테러를 감행한 것일까? 저 못자국은 사람들이 절대자에게 가한 테러의 표시란 말이지? 절대자의 아들은 결말을 알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못 박혔고! 끔찍했다. 지구가 아니라 다음번에는 우주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책임지지 마! 이다음에 절대자가 되면 아들이 또 못 박히게 할 거야?
“세상에는 먹는 일보다 더 슬프게 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남의 생명을 장난치는 자들이지. 즐기기까지 하거든. 그렇게 혼란스러운 지구를 절대자께서 지우려 할 때 나의 어떤 논리도 막을 방법이 없었어. 우주에서 지우려 하시는 날에 내 몸을 지구에 던진 것이야. 나는 어머니가 없어. 지구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 같았어.”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