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백구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눈빛보석을 보고 종이에 쓰인 내용을 읽었다.
“뭐야, 이 애꾸눈. 당장 내가 가서 구해 올게.” “잠깐, 그냥 가면 친구들이 위험해.” 
눈빛보석은 달려 나가려는 백구를 막았다. “수리부엉이에게는 부하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
을 거야.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건 나야. 기드로온 왕자를 데려오면 친구들을 살려주겠다고 했어.” 수리부엉이가 만에 하나 친구들을 해치려 할 것에 대비해서 ‘고슴도치털’로 스스로를 지키는 능력을 가지게 했는데 힘을 쓰지 못하고 잡혀 갔 다면 지난번에 빠빠라기를 구할 때보다 그들의 전력이 비교가 안 될 만큼 훨씬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행궁 싸움과는 관계없는 기드로온 왕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해적들의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빛보석과 기드로온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
“그들은 아직 나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눈빛보석은 명상에 잠기듯 행궁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곧장 달려가서 잡혀주는 건 두렵지 않았다. 데네브를 찾지 못한 것이 마음 을 고통스럽게 했다. 더구나 은교를 기억상실인 상태로 두고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백구는 눈빛보석이 깊은 생각에 빠 진 사이 팔달문 지붕 위로 올라가 용마루 끝에 가 서서 행궁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저럴 수가.’ 
행궁에는 까치와 까마귀와 족제비들이 마당과 지붕으로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들 어찼고 봉수당 앞마당에는 팔달문 친구들이 묶여 있었다.
“안 되겠다. 다녀와야겠어.” 
백구는 어디론가 적토마처럼 달려갔다. “비겁한 일이야. 친구들부터 구해내고 생각해
야 해!” 
동쪽 하늘에서 어둠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을 때, 지붕 아래 대청마루에서는 눈빛보석이 이렇 게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월요일은 행궁이 휴관일이다. “쾅쾅쾅!” 
이른 아침부터 행궁 대문 두드리는 사람이 있 었다.
“시끄럽게 어떤 자식이야!” 
신풍루 누각에서 문을 지키던 까마귀들의 우두 머리인 곰탱이가 소리쳤다.
“기드로온이 왔다고 전해.” 
아직 12시가 되려면 멀었는데 눈빛보석이 나타 난 것이다.

“얌마, 기드로온이 미쳤냐? 저 죽을 줄 모르고 나타나게?”
“내 친구들 더 괴롭히지 말고 빨리 내 보내.” 눈빛보석과 기드로온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곰 탱이가 믿지 않자 눈빛보석은 빤히 올려다보았다.
“알았어. 그그렇게 알리면 될 거 아냐.” 
곰탱이는 눈빛보석의 두 눈에서 감아져 나오는 눈빛의 소용돌이에 현기증을 일으켜 엉거주춤 물 러서며 봉수당 대청마루로 달려가 애꾸눈 수리부 엉이에게 알렸다.
“기드로온이 왔다고? 얼른 모셔와.” 
두 눈이 휘둥그레진 건 여섯그만뿐만이 아니었 다. 화형대 위에 묶여 있던 팔달문 친구들도 마찬 가지였다.
잠시 후, 족제비들이 터 준 길로 걸어오는 눈빛 보석이 보였다.
“눈빛보석, 오지 마!” 
나뭇단 위에 묶여 있는 작은 동물 친구들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기드로온 왕자는 어디 있어?”
“내가 기드로온이야, 내 친구들 이제 풀어 줘.” 꽉 들어찬 모든 동물이 찬물을 끼얹은 듯 여섯 그만을 주시했다.
“이 새끼, 감히 나한테 장난질로 거짓말 쳐. 쫘악!” 흔들의자를 까딱까딱거리며 앉아 있던 여섯그 만이 느닷없이 대청마루에서 목발을 짚은 채 달 려 나오며 가마니만한 큰 날개로 눈빛보석의 왼 쪽 빰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눈빛보석은 마당 한 가운데로 나가떨어졌다.
“저것도 화형대 위에 세웟!” 
눈빛보석도 나뭇단 위로 끌어올려졌다. “너는 항상 바보짓 하는 게 문제야. 흑흑.” 길대장이 울며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몹시 슬 픈 눈으로 화형대 위로 끌려오는 눈빛보석을 바 라보며 눈물 흘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마.” 
눈빛보석은 마지막 기둥으로 끌려가며 친구들 에게 말하고, 뒤로 묶인 길대장의 손에 작은 칼 하나를 슬쩍 쥐어주었다.
“눈빛보석 이 자식, 죽기 전에 유언하냐?” 
여섯그만은 자신을 놀리고도 당당한 눈빛보석 의 표정에 부아가 치미는지 한 번에 화형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왔다. 부러졌던 다리가 거의 다 나 은 것 같았다. 퍽퍽, 눈빛보석을 목발로 때리며 사정없이 짓밟았다. 눈빛보석의 얼굴과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옷은 발톱에 여기저기 찢겨지며 팔 과 다리에서도 피가 젖었다. 눈빛보석의 호신술 이면 여섯그만은 상대가 되지 않지만 수많은 족제비와 까마귀와 까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팔 달문 친구들의 목숨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해, 나쁜 놈아!” 
작은 동물 친구들이 눈빛보석을 보호하려 소리 질렀다. 그들 또한 자칫 목숨을 버리는 행동이었 다. 여섯그만의 한 번 가격으로 죽을 수 있기 때 문이었다.
지구는 슬프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쓰러져 있 으면서도 눈빛보석은 고통을 잊는 감동으로 입가 에 미소를 흘렸다.
“기드로온인 내가 왔으니까 약속대로 친구들을 어서 풀어 줘.”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네, 왕자 병에 단단히 걸 린 놈 아냐? 거기다 웃어? 아직 애송이라서 죽는 게 뭔지 모르나 본데 그래 너 어디 먼저 죽어 봐.”
“제발 그만해, 눈빛보석을 자세히 봐. 기드로온 왕자라고!” 
눈빛보석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노랑가 슴이 절규를 하며 소리쳤다.
“뭐야, 저건?” 
여섯그만이 노랑가슴을 돌아보며 눈빛보석에 게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려던 치명적인 폭력을 잠 시 멈췄다. 그때 쪽비가 사진을 가지고 와 눈빛보 석을 살폈다.
“저어, 아무래도 많이 닮았으예.” 
쪽비는 눈빛보석의 멱살을 잡고 있는 여섯그만 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다. 여섯그만도 사진과 눈빛 보석을 살펴보다 말고 주춤하며 멱살을 풀었다.“음, 네가 기드로온 왕자라는 것을 증명해 봐.” 눈빛보석은 겨우 일어나 파마기 있는 머릿결 을 풀고 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모습으로 되 돌아갔다.
“하이고 큰일 났네. 비싼 놈 죽일 뻔했어. 빨리 묶어!” 
여섯그만은 덜덜덜 떨며 쪽비에게 명령했다. “너 나중에 네 아버지에게 이르지 말그라. 네
가 처음부터 이렇게 보여 주었으면 이런 일 없었 자녀.” 
족제비와 까치와 까마귀들이 달라붙어 눈빛보 석을 꽁꽁 묶었다.
“야, 이 자식들아. 멍들지 않게 잘 묶어!”
“참주님, 이제 어떻게 할깝쇼? 구운 쥐고기 맛 은 족제비에겐 일품입죠.” 
스스로 행궁의 참 주인이라며 이름 붙인 여섯 그만에게 쪽비가 궁궁이를 보고 침 흘리며 물었 다. 족제비는 쥐고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자 여러분,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했습니다. 우리의 재산을 되찾았으며 우리 형제들의 복수 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드로온이라고 사기 치는 눈빛보석인 두목놈은 내가 처단할 테니, 여 러분은 여러분의 동료를 죽인 저 놈들을 12시에 화형식으로 분풀이하고 해산합시다아!”
“와와!”
“동굴로 끌고 가자.” 
연설을 마친 여섯그만은 함성 소리에 둘러싸 인 채 눈빛보석을 끌고 뒷문을 통해 팔달산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우리는 시궁쥐와 청비둘기를 차지할 테니까, 너희들은 길고양이와 참새와 바퀴벌레를 맛있게 해치워.”
“누구맘대로?” 
쪽비와 곰탱이 까마귀가 논공행상할 때 악다 귀 까치가 눈을 부라리며 나타났다.
“너희들 먹을 까치밥인 감이 봉수당 안에 반 자루나 남았잖아.”
“지저분한 일은 우리가 다했는데 오늘 같은 날 은 색다른 즐거움도 있어야지. 우리는 참새구이 를 즐기니까 넘겨.” 
악다귀가 대두조를 돌아보고 소름 돋치게 윙 크까지 해 가며 한 자리 차지했다.
“아냐, 아냐. 그러면 우리가 손해잖아. 너희들 은 청비둘기를 좋아하잖아. 까치들에겐 청비둘 기가 어울려.”
“무슨 소리, 참새구이로 해.” 
각각의 우두머리들이 한참 입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점점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낮 12시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 나뭇단 위에는 화형에 처해질 여섯 친구들이 기둥에 하나씩 묶여 있었 다. 팔달문 친구들의 눈빛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 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망에 빠지고 있었다.
“우리를 살리려고 스스로 잡힌 눈빛보석을 봐 서라도 우리는 살아나가야 해.”
“우리 앞에 놓인 건 죽음밖에 없어.” 
길대장의 말에 대두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저었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고양이 부대, 정면 공격!” “쥐 부대, 오른쪽 공격!” “바퀴벌레 부대, 왼쪽 공격!”
“뒤는 참새 부대가 달아나는 놈들을 혼내 준다.” 간신 히 빠져나온 팔달문 친구들이 길대장의 작전 지시에 따라 병력을 배치하고 일사불란하게 공격을 해댔다. 
“나한테 칼이 있어. 내가 너희들의 줄을 끊어 주고‘고슴도치털’하면 다 같이 합창하며 대장인 나를 따라 앞만 보고 돌진해.” 
길대장이 작은 소리로 작전을 친구들에게 알 려 주었다.
“둥둥둥.” 
봉수당 대청마루에서 쪽비가 12시를 알리는 북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뭇단에 불이 붙여졌다.
“와아!” 
북소리와 함께 불연기가 오르자 행궁을 가득 메운 여섯그만의 부하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 댔다. 그와 동시에 길대장은 재빨리 친구들의 묶 인 줄을 모두 끊었다.
“고슴도치털!” 
길대장의 선창과 함께 합창을 한 팔달문 친구 들의 생존의지는 온몸의 털이 바늘보다 뾰쪽하 고 단단하게 세워졌다. 그들은 화형대의 불길을 뚫고 정문을 향해 한 줄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앗, 달아난다. 놓치지 마라!” 
여섯그만의 부하들이 팔달문 친구들을 향해 땅벌 떼처럼 뭉쳐지며 달라붙듯이 달려들었다.“아아악!” “나 죽어!” 
땅굴을 파듯 적들의 포위망을 파헤치고 앞으 로 나가는 팔달문 친구들은 불사신처럼 몸이 단 단해져 있었고 부딪치는 적들마다 털끝에 찔려 살이 찢기고 튕겨져 나갔다. 행궁의 한가운데서 부터 중앙문을 지나고 좌익문을 지나 신풍루 정 문으로 좍 갈라지며 일직선이 났다.
“곰탱아, 막아!” 
쪽비와 악다귀가 정문을 지키는 까마귀들의 대장인 곰탱이를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겁먹지 말고 한꺼번에 덮쳐!” 
그러자 까마귀들이 여러 장의 멍석처럼 덮쳐 왔다. 그리고 곰탱이는 정문을 단단히 지키고 있 었다. 까마귀들의 작전은 성공하고 있었다. 큰 새 들이 산을 쌓듯 덮친 위에 또 덮치는 겹겹이 전 술이었다. 용맹하던 작은 동물들을 무덤 속에 가 두 듯 봉해 버린 것이다.
“즉결처분조, 투입해!” 
이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승부가 끝난 마지막 단 계라는 뜻이다. 곰탱이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정문까지 돌진해 온 팔달문 친구들의 죽음을 보기 위해 막 신풍루 누각에서 날아 내려오려 했다.
“어딜!”
백구가 정문 밖에서 뛰어 올라오며 곰탱이의 목을 물었다.
“윽!” 
백구는 축 늘어진 곰탱이를 까마귀들에게 내 던지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겹겹이 쌓인 까마 귀들을 파헤쳐 댔다. 까마귀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백구에게 새카맣게 달라붙었고 추풍낙엽 처럼 허공으로 나가떨어져도 대장을 잃은 분노 때문인지 더욱 달라붙었다.
“족제비들아, 공격해!” “까치, 전원 공격!” 
백구 하나를 두고 까마귀와 족제비와 까치 수 만 마리가 공격을 해 왔다.
“삐이걱.” 
그때 대문이 열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신풍 루를 타고 넘어와 문을 열었다.
“와아아!” 
대문이 열리자 행궁 앞 광장에 집결해 있던 구 름같이 많은 작은 동물들이 물밀 듯 행궁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구가 이제 나타난 것은 약한 동물들에게 연통하고 총집결을 돕느 라 늦어진 것이었다.
“고양이 부대, 정면 공격!” “쥐 부대, 오른쪽 공격!” “바퀴벌레 부대, 왼쪽 공격!”
“뒤는 참새 부대가 달아나는 놈들을 혼내 준 다.” 간신히 빠져나온 팔달문 친구들이 길대장의 작전 지시에 따라 병력을 배치하고 일사불란하 게 공격을 해댔다. 
“하늘로 달아나는 것들은 우리 비둘기들이 책 임진다!” 
팔달산에 대기하고 있던 비둘기들이 행궁 하 늘을 뒤덮었다. 곰탱이가 죽고 난 뒤 작전이라는 것을 모르는 깡패 동물들은 사방에서 패하여 부 상병동을 이루고 있었다."털썩!"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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