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는 것을 화살이 날아가는 것에 비유하는 의미를 알겠다. 나이 탓에 몇 가지 지병을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몇 알의 약을 털어 넣으며 살고 있다던 만만한 대학 동창들 중 한 명이 며느리를 얻게 된 소식을 전해왔다. 아들을 잘 양육하여 예쁜 며느리를 맞게 된 친구를 축하해 주러 지방에서 친구들이 수원으로 나들이를 오게 된 것이다. 며느리 될 사람이 이곳 가까운 곳에 사는 이유로 예식을 수원에서 치루게 된 것이다. 아마 우리들 중 첫 혼사를 치루게 된 친구일 것이다. 부러운 마음 반 친구들 만난다는 기쁜 마음 반으로 수원역으로 나가 친구들을 맞았다. 우리는 얼싸안고 반가운 마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는데 그 큰 경사스러운 자리에 혼주의 지인으로 자녀를 축하해 주러 가게 된 의미로운 자리였다. 신랑과 신부를 둔 친구는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예식을 치렀다. 
 예식이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바쁜 일상으로 서로를 잊고 살았던 지난 몇 년의 안부를 한꺼번에 묻고 답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수원에 살고 있는 나는 혼주 대신 친구들을 안내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주어졌던 것이다.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수원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인생의 가을을 맞은 친구들과 여행을 시작했다. 경관이 아주 뛰어난 방화수류정에 늘어진 능수버들을 보며 춘향이도 되어보고, 호수에 비친 풍광과 주변을 돌아보며 친구들은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부지런히 아는 만큼 설명을 해주고 잠시 성곽길을 걸어 보기도 했고 행궁 열차를 타고 연무대 창공을 날고 있는 연을 타 보기도 했다. 화성행궁 경내에 들러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돌아보며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했으면 좋겠다고 한 친구가 푸념처럼 말했다. 일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순간 잔주름과 흰머리 카락이 쭈뼛하고 고개를 드는 듯했다. 스무 살 즈음 만나 공부도 인생 경험도 고민도 수없이 서로 나누며 커왔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리라.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화성을 돌아보았다. 동기들 중 몇몇은 세상살이 그만두고 먼 길 간 친구도 있었지만 각자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렵기만 하던 전공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며 대학 시절을 보냈던 그녀들과 오랜만에 단합대회를 하듯 하룻밤을 보내며 추억 하나 더 만들었던 날이었다. 이순(耳順)이 된 지금이지만 내 스무 살 적 풋풋했던 그녀들은 전공책 같이 늘 내 서고에 꽂혀 있어 행복하다.

 

김경은 시조시인

약력

시인 , 시낭송가 . 수원문인협회 부회장
경기문학인 대상 수상
한국작가회 낭송문학 본상 수상 
수원문학 작품상 
경기시조문학 작품상
저서 <선물 ><겨울꽃 흐르는 강 ><아름다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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