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산이었다
난폭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비틀거리는 잔가지들을 끌어안아
잠재우는 맑은 경전이었다
있으신 듯 없는 듯 세상사 거르는 필터도 없이
썩은 사과 알처럼 까맣게 속이 타들어 가도
무심하게 돋아난 의혹은 자라
몸속에 아린 옹이 하나 키웠다
그 의혹이 분열을 거듭하여
마음 뜨락은 온통 바오바브나무 뿌리로
황폐화되었지만
우리는 뭉툭한 위로와
가벼운 인사를
귓전에 심었다
세상사 귀 막고
별을 심었다

 

엄혜숙 시인

1960년 경북 영주 출생, 
영남대학교 공학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석사를 졸업.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도문」,「파도 소리에 귀를 걸고」
공무원문예대전 시 부문 우수상 수상

 

 

시평(詩評)

아버지의 강은 얼마나 넓고 깊을까. 아버지의 산은 얼마나 높고 장엄할까.
어떤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폭우가 쏟아져도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가슴으로 안고 넓고 깊은 강을 건너고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 저녁 무렵에도 높고 험한 산을 넘었다. 누가 소란을 피워도 아버지는 우리를 감싸 안으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맑은 경전 같은 사람이다. 무한정 베푸는 사랑 앞에 우리는 그 분을 위해 어떤 보은을 했는지 반성하는 시다. 바위산의 큰 바위 얼굴 같은 아버지가 바오바브 뿌리로 황폐화 되었을 때 화자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오늘날 우리들의 아버지를 함축적으로 상징화한 시였기에 눈길이 자꾸만 간다.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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