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시리우스는 지구인과 처음 대화를 해 봐서 서툴렀다. 공양을 하고 가라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 자기 말만한 것이다. 시리우스는 범진에게 엄지 손톱만한 버튼을 주고 탐사선에 올랐다.
“스노야, 가자.”
“에잉, 더 놀고 싶은데.”
“빨리 안 갈래?” 
시리우스가 재촉하는데도 스노는 법당에서 내다보고 있는 은교와 마당에 내려와 있는 범진을 번갈아 보며 아쉬워했다.
“말썽부리지 말고 또 놀러와.” 
범진 스님이 스노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 주며 떠밀었다.

뿌려놓은 삶
‘행복한 집’에서 미니버스가 출발하고 있었다.
“지수야, 은혜하고 아이들 잘 돌보고 있어. 볼일 보고 오면 조금 늦을 거야.”
“예, 이천에서 공연 요청 왔으니까 연극 연습하고 있을게요.” 
마리아 원장은 등나무 아치문을 지나 동쪽으로 달렸다. 연락 줄 때까지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사흘이 멀다 하고 은교가 보고 싶어 오늘도 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은혜와 지수가 언니 노릇하느라 아이들을 챙기고 연극 연습도 열심히 시키고 있다. 은교 대신으로 공연을 차질 없이 해 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은교가 심어 놓은 삶의 희망이라는 마음의 뿌리가 아이들에게 잘 착근되어 사과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차 안에는 은교가 좋아하던 떡과 과일을 실었고, 옷도 몇 가지 있다. 서울을 빠져 나와 경기도 광주를 지나 퇴촌으로 가기 위해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어? 저 차.” 
키드라 해적에게 쫓기게 된 여섯그만이 이리저리 숲 속을 숨어 다니다 ‘행복한 집 연극단’이라고 쓰여 있는 차가 다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애꾸부엉이 여섯그만은 미니버스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뒤쫓았다. 퇴촌을 지나 산중 도로를 올라갈 때 소나무들이 오지 말라고 손을 흔드는 데도 원장은 바람이 불어 그러는 줄만 알고 절간 마당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조용히 해.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 가지를 부러뜨려 놓을 거야!” 
여섯그만이 겁을 주자 소나무들은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했다.
“은교야, 엄마다!” 
절에 와서 범진 스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은교부터 불렀다.
“나무관세음, 또 왔네?” 
범진이 법당에서 나오며 조금은 나무라듯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마리아는 보따리를 들고 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은교는 요사체에서 지내지 않고 범진 스님 방에서 같이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 웬일이니? 네가 먼저 인사를 하다니?” 
시리우스 말대로 하루가 지나자 은교는 과거 일을 기억 못할 뿐 어지간한 것은 정상인에 가깝게 행동했다(몇 가지는 과거 일도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
“엄마 알아보겠어?”
“죄송해요.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은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마리아는 은교의 손을 만져 주었다.
“이구, 청승은 제 뱃속으로 난 자식보다 더 하네.” 
범진이 웃는 얼굴로 뒤따라 들어오며 핀잔을 주었다.
“얘가 많이 달라졌어. 곧 나를 알아보겠지?”
“그래 되기를 바라야지. 네 마음이 천심이면 지금이라도 낫게 해 주시겠지. 나무관세음.”
“하느님 아버지, 우리 은교 꼭 낫게 해 주세요. 아멘” 
범진이 합장을 하자, 마리아는 성호를 그으며 은교를 바라보는 눈으로 기도했다.
“꼭 나을게요. 염려들 놓으세요.” 
은교는 이제 어제와는 다른 그전의 생각 깊은 은교로 돌아가 있었다.
“어휴, 조약돌은 끔찍이도 쥐고 있구나?”
“저 돌을 내가 산 고개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쥐고 있어.”
“잠깐 공양간에 다녀올게요.” 
은교는 무안한지 슬그머니 일어나며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조약돌을 만질 때마다 끊어지듯 이어지듯 낱장 사진처럼 기억이 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흰 목도리를 두른 아이가 보이기도 하고, 눈 내리던 날이 보이기도, 비 퍼붓는 우산 속에서 그 아이와 함께 서 있는 모습도, 껴안고 있는 등나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은교는 그 얼굴이 누군지 기억해 내려고 조약돌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그 가시내다.” 
숲에 숨어 절간을 살피던 여섯그만이 공양간으로 가기 위해 마당을 가로 질러 걸어가는 은교를 발견한 것이다.
“흐흐흐, 꼭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야.” 
여섯그만은 살피다가 원장이 혼자 미니버스를 몰고 떠나자, 은교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판단되었는지 서쪽으로 날아갔다.
“왕눈깔에게 꼭 할 말이 있습니다요. 여섯그만이 만나러 왔다고 전해 주십쇼.” 
여섯그만은 북문으로 날아가서 보초를 서고 있는 해적들에게 굽실거리며 부탁하고 있었다.
“왕눈깔이나 이놈이나 인상 더럽네. 어이, 누가 왕눈깔 면회왔다고 전해.” 
보초 한 명이 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왠일이슈?” 
한참 후에 삐딱하게 깔보는 자세로 왕눈깔이 나타났다.
“내가 데네브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 이곳 대장을 만나게 해 줘.”
“쉿, 저쪽 서문 뒤쪽 갈참나무에서 기다리슈. 내 금방 가겠수.” 
왕눈깔은 그렇게 말하고 진영 속으로 사라졌다.
“꺼져, 임마! 면회 끝났잖아.” 
보초 하나가 여섯그만의 가슴팍을 차버렸다.
“에구구.” 
여섯그만은 나뒹그르며 달아나듯 서문 뒤쪽 갈참나무로 갔다. 이제나 저제나 왕눈깔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나무 아래에 대여섯 명의 하델 부하들로 보이는 해적들이 나타났다.
“어디 계시오? 왕눈깔님이 보내서 대장님께 모셔 가려고 왔습니다.”
“옳지!” 
여섯그만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묶어! 입 틀어막고!”                                                                                        해적들은 순식간에 에워싸더니 여섯그만을 질긴 줄로 묶고 부리를 벌려 자갈을 물렸다. 그들은 여섯그만을 끌고 하델 진영이 아닌 팔달산 넘어 동굴 뒷문으로 갔다. 일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안 여섯그만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이 자식 빨리 안 가!” 

해적 중에 고참이 발길질을 해댔다. 이들은 키드라 측에서 하델 진영에 침투시켜 놓은 특수공작원들이었다. 왕눈깔도 얼마 전에 이들에게 끌려가 당했다. 그동안 이중 스파이 노릇한 것 알고 있다며 하델 측에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여섯그만이 찾아가면 넘기라고 협박했던 것이다. 이 계략은 키드라의 작전참모인 알박이가 짠 것이었다. 틀림없이 여섯그만이 왕눈깔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알박이도 요즘 죽을 맛이었다. 동굴에서 여섯그만을 놓친 다음 잡아오지 못하면 눈알을 뽑아버리고 계급장 떼어버리겠다고 키드라가 날마다 노발대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 열어!” 
뒷문이 열리고 동굴 안으로 여섯그만이 질질 끌려가 알박이 앞에 내동뎅이쳐졌다.
“호호오, 누구신가?” 
알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갈이 물려 있는 여섯그만에게 뚜벅뚜벅 소름끼치도록 천천히 걸어왔다.
“네가 내 목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구나.” 
퍽퍽퍽! 알박이는 그간의 마음 고생한 것 분풀이하느라 여섯그만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무수히 해 댔다.
“처넣어!” 
실신하듯 쓰러진 여섯그만은 눈빛보석을 가두었던 철창 속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던져졌다.
“저 새끼 깨어나거든 보고해!” 
알박이는 전황을 살피러 동굴 밖으로 나가며 명령했다.

절대자의 아들
“너희들 왔구나?”
마당에서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왔다 갔다 하던 은교가 백구와 눈빛보석이 나타나자 반가워하며 먼저 아는 척했다.
“나 알아보겠어?”
“나도?” 눈빛보석과 백구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나도 알아보겠니?” 
그때 남쪽 하늘에서 흰 갈매기가 날아 내려와 소나무에 앉아 물었다. 은교가 기억을 되찾았을까 궁금하여 바닷가에서 날아온 것이다.
“음, 잠깐만 잠깐만.” 
은교는 기억해 내려고 몇 번씩이나 실패해 가며 골똘히 생각을 거듭했다.
“너였구나!” 
손가락으로 눈빛보석을 가리키며 은교가 외쳤다.
“부처님 경기하시겠다. 절간이 시장통처럼 시끄러우면 안 된다.” 
은교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범진 스님이 법당에서 나오며 주의를 주었다.
“죄송해요.” 
은교가 합장하자, 눈빛보석도 합장했다.
“너는 합장 안 해, 이놈아!” 
백구도 얼떨결에 야단맞고 넙죽 엎드리며 앞다리를 모았다.
“너도!” 
범진 스님은 흰 갈매기에게도 소리쳐 똑같이 합창하게 했다.
“네가 눈빛보석이구나? 은교를 많이 닮았어.” 
범진 스님은 백구와 함께 서 있는 아이를 보고 스노에게 들었던 이름을 떠올리며 알아본 것이다.
“예, 안녕하세요.”
“너무 시끄럽지 않게 이야기 나누거라. 백일기도 중이니까.” 
범진 스님은 은교를 낫게 하려고 백일기도와 삼천 배를 올리고 있었다.
“나랑 우산 함께 쓰고 있었지?” 
범진 스님이 법당으로 다시 들어가자, 은교가 신이 나서 눈빛보석에게 물었다.
“응, 그랬어.” 
눈빛보석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나를 하얀 벌판에서 일으켜 세우지 않았어?”
“하얀 벌판?” 
눈빛보석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음, 뭐라 그럴까? 하아얀 설탕가루 같은 것이 온천지에 펄펄 날리고 있었는데.”
“눈이었어.” 
눈보라치던 서대문초등학교 앞에서 처음 은교를 만난 날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아직 기억을 온전히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하루하루 나아지겠지. 눈빛보석은 은교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이 감사해 눈물이 자꾸 났다. 
“은교야, 대야에 물 좀 떠 오너라.” 
법당 안에서 삼천 배를 올리던 범진 스님 땀을 뻘뻘 흘리며 문 열고 불렀다. 삼천 배를 하는 동안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에 체온도 식히고 탈수 현상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다.
“나 스님 옆에 가서 도와 드리려면 법당에 있어야 해. 미안.” 
은교는 대야를 들고 들어가더니 법당 안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나오더라도 잠깐 샘가로 갔다 공양간으로 갔다 법당 안으로 바로 들어가며 눈웃음쳐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눈빛보석과 백구는 내내 서성이다 감지덕지 손 흔들며 반가워했다.
“너는 누구니?”
“백구.”
“어, 내 이름도 백구야.” 
그때까지 날아가지 않고 소나무에 앉아 있는 흰 갈매기를 보고 백구가 물었는데 자신의 이름과 같으니까 꽤나 반가워했다(세상 어딘가에 나와 무엇이든 같은 존재가가 있으면 그저 반갑다. 단, 좋은 느낌일 때 그렇다.).
“친하게 지내자. 팔달문으로 놀러 와.”
“너도 남쪽 바다로 놀러와.”
“나는 눈빛보석이라고 해.” 
셋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날 저문다. 오늘은 그만들 돌아가고, 다른 날 놀러 오거라.” 
범진 스님이 화장실 가며 한 마디해서 흰 갈매기는 바닷가로 날아갔고 백구와 눈빛보석은 하는 수 없이 수원성 팔달문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안심이야. 좋아지고 있고 그곳이라면 안전하지 않을까?” 
아직은 우울해 보이는 눈빛보석을 백구가 달래 주었다. 나아진 것은 기쁜데 저 우주 해적들을 지구 밖으로 내보내야 은교가 마음 놓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저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 데네브를 어떻게 찾는단 말이지? 눈빛보석은 대청마루에 누워 눈을 뜬 채 밤을 지샜다.
“백구야, 나 오늘 북수동 성당에 놀러 가려 해.”
“정문 앞에서 기다릴게.” 
다음 날 둘은 북수동 성당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해적들은 양측이 대치중인 것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어느 면에서는 눈빛보석을 자유롭게 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심심하지 않겠어?”
“괜찮아.”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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