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종 경기도취재본부장.
김인종 경기도취재본부장.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 한자성어는 삼국지에 등장한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이처럼 사람이 일을 행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는 세간의 이야기처럼 이전보다 더욱 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묵묵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도 훗날의 결과를 알 수 없어 불안을 안고 살지만, 그렇기에 찰나의 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경찬 양서고등학교 이사장은 이 말을 좌우명으로 평생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자수성가한 그의 열정적이고 길었던 삶의 전반을 관통하는 성어가 됐다.

1939년에 양평 양서면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이 넉넉지 않아 버스비가 없어서 20리를 걸어 공부하러 다니기도 하고, 어머니가 옆집에서 돈을 빌려 학교에 다녔다”고 회상했다. 그 결실로 연세대를 무사히 졸업했지만 6·25전쟁과 4·19혁명 등을 겪으면서 한국사의 처절한 순간들을 경험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는 착실히 공직을 거쳐 건설사업에 뛰어들면서 입지를 점차 쌓아나갔다.

한창 사업을 하던 인생의 절정기에서 그는 우연히 친구로부터 고향의 양서농예기술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 이사장은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교육이 절실한 학생들을 위해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인수했다. 그는 교육에서 비롯되는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양서고의 건학 이념인 ‘사랑·용기·희망’은 그가 숱한 어려움을 딛고 학교를 건립했을 때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가치들을 담고 살아가라’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 이사장은 학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지역이 어렵거나 학교가 위기를 맞이할 때도 언제나 그는 끝없이 고민하면서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왔고 한계를 돌파해왔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생소하던 고등학교 기숙사를 지음으로써 시골 학교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자 그는 교육을 뛰어넘어 지역을 위해 제3·4·5대 경기도의원으로 봉사하며 양평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후 2003년이 되자 마침내 그는 모든 사업과 정치적 야심을 접고 오롯 학교에 전념하면서 경기도를 대표하는 명문 고등학교로 우뚝 서게 됐다.

범인(凡人)이라면 이제는 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학교의 앞날과 발전을 위해 고령의 몸으로 여전히 활동에 나선다. 2021년 우진장학재단을 설립한 취지도 학생들을 더 생각하고 학교가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양서고등학교 설립 43주년이 된 올해, 어 이사장은 만 82세가 되면서 어느덧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교를 위해 일한 셈이 됐다. 그리고 양서고는 전국에서 인정하는 명문(名聞)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분명 그의 여정도 언젠가는 마무리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가 온다한 들 ‘어경찬(魚慶贊)’이라는 이름은 오래 기억돼 먼 미래에도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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