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한 개는 찾았는데 또 한 개는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징그럽지만 은교가 주워서 알박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복 받으실 겁니다. 예쁜 아가씨.” 
알박이는 받은 눈알을 자신의 입 안에 넣고 혀로 굴려 싹싹 닦아 빈 눈 속에 집어넣었다.
“너 때문에 지체되었잖아. 빨리 가!” 
키드라는 알박이의 엉덩이를 차 앞장세우고 은교와 함께 눈빛보석이 있는 별로 이동했다. 은교에게 깜짝 놀랄만한 기쁨을 주기 위해 키드라는 손님이 누구인지를 계속 알려주지 않았다.
“찌라시, 앞으로 나한테 부제독이라고 불러.”
“너부터 찌라시라고 부르지 마.” 
알박이가 어깨에 힘주고 들어가며 문 앞에 서 있는 찌라시에게 자신이 승진한 것을 알려주었다.
“창피해 죽겠네. 저것들 데리고 우주 군단과 협상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키드라는 티격태격하는 알박이와 찌라시를 보며 달려가 차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하루 전만 해도 그러고 남았을 것이다. 체면과 체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옷 같은 것인가를 키드라는 지금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 것도 잠그지 말고, 동굴 밖으로 모두 나오도록!” 
키드라는 찌라시에게 미리 투명공과 동굴 문의 열쇠를 풀어놓게 했다. 동굴 안에서는 은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눈빛보석이 자신의 두 손을 쥐고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오직 길이 놓일 수 있다면 암흑천지에서 저 문이 열리겠지. 빛으로 낸 길이 나에게 이어지고 눈부신 모습으로 은교가 걸어오겠지. 눈빛보석은 어서 열리기를 갈망하며 문 쪽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다림이란 얼마나 초조한 것일까? 기다림보다 빠른 속도로 먼 길을 달리는 그리움도 없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하다 못해 아팠다. 눈빛보석은 차분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좁은 공간 속에서 수없이 맴돌았다. 무슨 말부터 해 줄까? 그래도 나는 남자니까 눈물은 나지 않을 거야. 
문 밖에는 은교가 도착하고 있었다. 왜 이러지? 은교는 자신이 이곳에 아주 특별하게 서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굴 문만 또렷하게 보이고 주변인과 사물들은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 같았다. 마음이 열기구처럼 떠오르는 것 같아 아찔했다. 은교는 정신 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이 안개처럼 촉촉한 발로 새벽의 요정처럼 풀밭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저 문은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교는 자신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고 동굴 문을 열었다. 
“데네브!”
“기드로온!”
은교는 동굴 문이 열리며 빛이 깔아 준 뽀얀 길을 따라 가슴 터져라 뛰어갔다. 눈물은 거친 파도처럼 곳곳에 자리 잡은 생각과 감정들을 한꺼번에 휩쓸어버렸다. 은교는 수평선 끝에서부터 물보라를 일으키며 뭍으로 달려가는 파도처럼 눈빛보석에게 하얗게 달려갔다. 눈빛보석도 동시에 투명공 문을 밀고 모든 의식과 무의식을 산산이 부수며 달려 나갔다. 지구에서 침묵 속에만 가두던 이름이 불러지고 있었다. 
그동안 두 아이에게 가슴이란 한 방울 두 방울 모으는 눈물 바구니이었고, 눈빛이란 공복에 삼키는 눈물 같은 것이었다. 두 손을 맞잡은 눈빛보석과 은교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동안 말도 못하고 도닥이기만 했다.
“데네브, 기드로온!”
둘은 믿을 수 없는지 서로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데지 않는 불덩어리인 가슴에  성냥개비를 그었다. 마음과 영혼은 데지 않는 불덩어리에만 데이고, 타지 않는 불꽃에만 타는 것이었다. 
“다시는 네 손을 놓지 않을게. 미안해.” 
기드로온은 데네브의 두 손을 꼬옥 잡아주며 말했다.
“고마워.” 
은교는 모든 두려움의 고단함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함의 깊은 휴식 속으로 가라앉듯 대답했다. 
“똑똑.” 
동굴 문이 열리며 키드라가 은교를 제독별로 데려가려고 들어왔다.
“기드로온 왕자를 풀어 주세요.” 
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데네브인 은교가 간청했다. 그러나 키드라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 공 안으로 나도 넣어 주세요!” 
은교의 말에 키드라가 눈빛보석을 바라보자 눈빛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님을 안으로 보내 드려!” 
키드라는 의도적으로 은교에게 공주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기드로온 왕자를 위한 배려였으며, 처음부터 은교에게서 공주 같은 고결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네브는 공주였다. 안드로메다 가문 못지않은 은하의 공주였다. 13년 전, 알마크 대총독이 갓 태어난 왕자를 안고 성체 성운에 인사드리러 갔었다. 그날 오르트 대제도 공교롭게 안드로메다의 왕자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공주를 안고 성하께 인사드리러 성체 성운에 왔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우주의 공간을 알마크 대총독이 담당하였고, 우주의 시간은 오르트 대제가 담당하였다. 그 둘은 우주의 재상이었다.
“별들에게 시간의 자율권을 주면 우주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이냐?” 
모든 천체의 황제이자 신인 성하는 알마크 대총독이 보는 앞에서 진노하며 오르트 대제를 내쳤다. 그때 두 아기는 천사가 안고 있었다. 
“앞으로 내 삶이 어찌 될지 모르니, 내 딸을 부탁하오. 이름은 데네브요.” 
오르트 대제는 쫓겨 가며 알마크 대총독에게 데네브를 부탁한 것이다. 
“알겠소. 기드로온과 함께 잘 키울 테니 염려 마시오.” 
오르트 대제는 자신으로부터 시간의 자율권을 받은 혜성들을 데리고 천체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별들의 수가 수백억이 넘었다(헬리혜성은 우주 열차라는 연락별이어서 제외되었다.).
오르트 대제가 떠난 뒤 알마크 대총독은 아기를 찾으러 천사에게 갔다. 
“이를 어쩌지요? 두 아기가 서로에게 들어가 한 몸이 되었어요!”
그 이후 두 아이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고 둘만의 한 몸이 되어 자랐던 것이다.
“공 안으로 들어 가십지요.” 
“왕자님도요.” 
찌라시가 상냥하게 안내를 선수 치자 알박이도 지지 않았다. 눈빛보석은 은교와 손을 잡고 투명공 안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기드로온과 데네브는 영혼의 속삭임을 끝없이 나누게 되었다. 

시작과 끝
너는 나의 시작이고 나는 너의 끝이다. 
나는 너를 만나러 이 세상에 온 것이고.  
너는 나를 기다리며 이 세상에 살고 있던 것이다. 
둘은 이렇게 말하듯 갓난아기일 때처럼 하나가 되고 있었다. 지구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겠지만 기드로온과 데네브일 때로 돌아간 것이다. 
“왕자, 우주 군단이 협곡 동쪽 입구까지 다다랐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키드라가 동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이제부터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이라도 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키드라의 통보는 눈빛보석의 목숨을 담보로 흥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둘은 납치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암시했다. 
“공주에게는 자유를 주겠소.” 
키드라가 말을 했지만 데네브는 투명공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우주 군단에 왕자를 납치했다고 말할 것이요.”
“아무쪼록 제가 이용가치가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빛보석과 키드라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마음을 그같이 표현했다.
“제독님, 큰일났습니다. 우주 군단의 특공 편대가 협곡 입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요.”
“벌써?” 
부제독 알박이가 급히 뛰어들어오며 보고했다.
“왕자, 그럼.” 
키드라는 눈빛보석을 한 번 더 쳐다본 다음 서둘러서 제독별로 돌아갔다. 전황을 보고 받으니 키드라가 거느리는 별 중 두 개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만 함락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키드라는 하얀 깃발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썼다.
“부제독인 네가 우주 군단에 갔다 와.”
“예에?” 
알박이는 자신의 발 앞에 던져진 깃발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한 가지 새로운 규정이 생겼는데 부제독은 강등이 없고 대신에 바로 총살된다는 것을 알려 줄게.” 
부제독 알박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흰 깃발을 작은 비행선에 꽂고 혼자 탄 채 우주 군단 쪽으로 쭈물쭈물 움직여 갔다.
“군단장님, 백기를 꽂은 작은 비행선 한 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우주 3군단장에게 부관이 보고 했다.
“겁쟁이 한 놈이 투항하는 거 같은데, 잡아서 해적들의 정보나 알아보도록.”
잠시 후, 3군단장 앞으로 알박이가 끌려왔다.
“이곳으로 왜 데려왔나?”
“이 놈이 깃발을 가지고 한사코 군단장님을 뵙겠다고 해서.” 
깃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협상 제의, 우주 군단장과 직접 통화하고 싶다. 키드라 제독으로부터>
“하하, 해적 주제에 제독은 뭐야? 그래, 전화기는 가져 왔나?”
“우리 것은 성능이 떨어져서.” 
알박이가 말끝을 흐렸다.
“공짜 좋아하는 해적 근성 어디 가겠어? 전화기 한 대 줘서 돌려보내.” 
우주 3군단에게 해적은 별 방해도 안 될 전력이지만 오르트를 막기 위해서 협곡 안에 교두보를 만들어 놓으려면 한시가 급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주 군단 총사령관의 아들이 지구별에 있기 때문에 오르트보다 먼저 지구에 도달하려 하려 했던 것이다(알마크는 아무 부탁하지 않았지만 3군단장은 그의 마음을 읽고 왔다.). 그래서 해적들을 빨리 소탕하거나 항복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알박이는 전화기를 받자마자 꽁지가 빠져라 하고 키드라에게 돌아왔다.
“멍청한 줄 알았더니, 부제독 역할을 제대로 했어.”
“히히, 두목님 아니 제독님의 은혜가 낭만꼴갑입니다요.”
“하이고 두야. 야 임마, 각골난망이야!” 
키드라는 3군단장이 보내 준 전화기를 알박이에게 던지려다 떨어지는 것을 허둥지둥 다시 잡았다. 바닥에 부딪쳐 고장이라도 나는 날엔 낭패이기 때문이었다.
“나가! 빨리 안 꺼져!”
“예예, 부제독인 저 알박이 얼른 나가겠습니다요.” 
알박이는 맞지 않으려고 재빨리 문 닫고 나갔다.
“도르르르, 도르르.” 
해적들이 쓰는 수화기와는 발신음부터가 다른 부드러운 소리가 3군단으로 흘렀다.
“3군단장 미자르 전화 받았습니다.”
“험험, 저저저는 키드라 제독 옳습니다만.” 
우주 3군단장 미자르가 짧으면서 품위 있는 말투로 절도 있게 전화를 받자, 키드라는 평생 한 번도 더듬지 않던 말을 더듬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요?”
“우리에게 기드로온 왕자가 있소.” 
이번에는 키드라도 제독으로서 위엄을 보이고자 간단하게 대답했다. 3군단장 미자르는 바로 이어서 말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그러시오? 원하는 것이 뭐요?”
“안전을 보장해 주시오.”
“그러겠소. 어서 왕자를 보내고, 길을 비켜 주시오.” 
이번에는 키드라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갈등이 생긴 것이다. 하델이 목숨 걸고 기드로온을 보낸 것은 마을을 이루듯 머물고 살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잠시만 시간 주시기를 요청하오.”
“알겠소.” 
키드라뿐만 아니라 미자르 장군도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해적들이 다른 꾀를 부리느라 거짓말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부관, 기드로온 왕자가 아직도 지구에 있는지 알아 봐.”
“태양훈육관장이 태양계 수비대 전원을 이끌고 서쪽 협곡으로 가 있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3군단장 미자르는 난감했다. 기드로온 왕자의 사사로운 일로 우주 군단의 진군이 멈추거나 지체되는 일은 명분이 부족했다. 미자르가 군단에게 휴식을 주지 않고 이곳까지 달려온 것은 우주 협곡을 먼저 장악하여 지구를 오르트로부터 지켜내며 기드로온 왕자를 찾아 알마크 총사령관에게 보내려 했던 것이다.
“안됩니다.” 
눈빛보석에게 달려가서 협상 내용 말하던 키드라는 그의 반대에 부딪쳤다.
“별자리를 달라고 하세요.”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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