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왕자는 데네브와 이대로 안드로메다로 돌아가도 행복하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협상 내용대로 하면 지금 당장은 이 해적별이 안전해 보일지 모르지만 우주 전쟁이 끝나면 날마다 우주의 도망자가 되어 고달프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무리한 요구일 것 같은 데요.”
“어느 군단입니까?”
“3군단이요.” 
눈빛보석의 표정에서 잠시 구름처럼 그림자가 스쳐갔다. 3군단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른 군단과 달리 3군단장은 아버지 친구라서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이 일을 조용히 해결하려 할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미자르 장군은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이 기드로온을 귀여워해 주었던 것이다. 이 협상은 시끄러워져야 해적별에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데네브, 너의 생각은 어때?’ 
눈빛보석이 은교에게 물었다.
‘네 생각이 내 생각이야. 나는 너와 함께 있으면 생사도 관계없어.’ 
은교는 깊은 눈빛으로 말해 주었다.

■ 별똥별 부대 
전화로 인질 협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별자리를 하나 주시오.”
“부당하오. 해적이 별자리를 달라니 말이 되오?” 
키드라의 요구에 미자르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기드로온 왕자가 실제로 납치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 크게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이 속 터질 일이었다. 
“그럼, 협상은 결렬된 것입니까?”
“흠, 그런 뜻이 아니요. 별자리를 줄 수 있는 권한은 성체 성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요.” 
미자르는 속이 뜨끔했다. 이들이 왕자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렇군요. 이를 어쩐다?”
“우선 기드로온 왕자를 면회할 수 있게 해 주시오.”
“그러시지요.” 
협상은 3차로 미루어졌다. 키드라는 별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안전 보장을 어떤 것으로 요구할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았고, 미자르는 해적 두목의 말대로 기드로온 왕자가 이들에게 납치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따라오십지요.” 
부제독 알박이가 우주 군단 비행선에서 내리는 3군단장의 부관을 안내했다.
“부두목, 문 열어. 우주 군단에서 오신 사절이야.”
“허엄, 제독님께 그런 연락 받지 못했어.”
“이 자식아, 너 모가지가 몇 개냐?” 
알박이와 찌라시가 옥신각신할 때, 키드라가 부지런히 걸어왔다.
“열어.” 
키드라는 점잖게 명령하고 있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사절단 앞이라서 참고 있는 중이었다. 찌라시가 문을 열자, 키드라의 뒤를 따라 미자르의 부관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드로메다의 기드로온 왕자님께, 인사드립니다!”
“부관님, 안녕하세요?” 
미자르 군단장이 전에 안드로메다에 심부름을 보내 왕자와 안면이 있었던 부관을 파견한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모셔가겠습니다.”
“이 분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부관은 왕자가 해적들의 협박에 시달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서 그렇게 말씀 전하겠습니다. 차렷, 경례!”
“하이!” 
우주 군단에서 파견되어 왔던 군인들은 발걸음뿐만 아니라 눈동자까지 바라보는 각도를 똑같이 해서 타고 왔던 비행선을 타고 신속하게 돌아갔다.
“멋있다.”
“봤지? 이것들아!” 
엉거주춤 서서 부러워하고 있는 알박이와 찌라시를 키드라가 한 대씩 쥐어박았다. 동쪽 협곡이 협상에 난항을 겪으며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서쪽 협곡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무기 대 줄 테니까 열심히 싸워.” 
서쪽 협곡 입구에서 오르트를 막다가 쫓겨 오던 태양훈육관장과 태양 수비대가 무기가 변변치 않으면서 처절하게 오르트를 막고 있는 하델 해적들을 보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우주 협곡 동쪽의 우주 군단과 서쪽의 오르트는 뜻하지 않은 해적들의 저항에 부딪쳐 협곡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마치 태양계는 태풍의 눈 속에 들어 있는 양상을 띠었다.
또또또또. 태풍의 눈 속 한가운데에 있는 푸른 눈동자 같은 지구에서 우주 협곡에 구멍을 내더니 먼 별로 한 줄기 긴 실처럼 전파가 움직이고 있었다.
“잡아당겨!” 
실같이 흘러가던 전파는 중간이 꺾이며 오르트 구름 중앙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쿵!”
“이게 뭐야?” 
혜성들이 소리 나는 곳으로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비켜!” 
흑마 탄 기병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그냥 두면 메뚜기 떼 같은 혜성들에 의해 자그마한 부스러기조차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구구, 살려줍쇼.”
“캥, 어떻게 된 거냥?” 
천년고독과 황금여우였다. 이들은 엘라쓰 별과 드디어 전파가 이어져 그 줄을 타고 수원 행궁 앞 광장을 떠나 루저 은하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끌고 가자.” 
기병들은 그 둘을 오르트 대제에게 끌고 갔다. 
“어디로 가던 놈들이냐?”
“저희들은 루저 은하로 가던 중이었습니다요.” 
황금여우가 이곳이 어딘지 잘 몰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지구에서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수상한 놈들이다. 조사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요. 살려만 줍쇼.”
“아악!” 
황금여우의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오르트 대제는 우주 첩자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던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불쌍한 짐승과 고목은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만, 너희들이 누구인지부터 말해!”
“저는 황금여우입니다.”
“천년고독입니다.” 
오르트 대제의 물음에 둘은 이름을 대답했다.
“황금여우? 너는 안드로메다에서 쫓겨난 놈이잖아.”
“예예, 죄송합니다요.”
“나한테 죄송할 건 없다.” 
오르트 대제는 한참 생각에 잠기는 듯 침묵하고 있었다.
“너 기드로온 왕자를 아느냐?”
“예, 압니다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데네브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 있나?”
“예, 압니다요. 지금 지구에 있는뎁쇼.”
“그래?” 
오르트 대제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에 있던 모든 오르트가 넙죽 엎드렸다. 대제가 화가 나서 그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쳐 죽일 놈! 여봐라, 이 둘을 잘 가두어라.”
“예이, 알겠습니다.” 
오르트 대제가 분통을 터뜨린 것은 황금여우가 아니라 알마크 때문이었다. 성체 성운에서 데네브를 그토록 잘 부탁했는데 자신의 딸인 데네브가 어찌하여 감옥별인 지구에 있단 말인가? 대제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하루도 잊어 본 적 없는 딸이었다. 예쁘게 방긋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대장 군관 불러.” 
대장 군관 고로콤이 급히 달려왔다.
“지구에 며칠 간 별똥별을 비 퍼붓듯 쏟아 봐. 그리고 데네브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를 찾거든 잘 모셔와. 털 끝 하나라도 다치게 하는 놈은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고로콤은 첩보 부대인 별똥별 부대를 태양계로 은밀하게 침투시켜 지구의 대기권으로 진입하도록 했다.
“우와, 저렇게 많이 쏟아지는 별똥별은 처음 봤어.” 
지구는 사상 유례 없는 별똥별 쇼에 도취되어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동물과 풀꽃들까지 아름다운 밤하늘에 감탄하고 있었다.
“눈빛보석이 데네브를 찾았을까?” 
팔달문 친구들만 비 오듯 쏟아지는 별똥별을 올려다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 장군의 고민
“얘들아, 잠도 안 오는데 그냥친구에게 놀러 가자?”
“밤에 놀러 가면 그냥친구가 싫어하지 않을까?” 
별똥별을 올려다보던 백구가 뭔가 위험을 감지하고 있을 때, 절대자의 아들이 작은 친구들과 함께 빨리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내 등에 너희들 모두 태우고 갔다 올게.”
“그래? 싫어해서 헛걸음해도 우린 힘들게 없네. 타 보자.” 
길대장이 가장 먼저 올라탔다. 백구는 팔달문 친구들이 모두 등에 타자 쏜살같이 북수동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잠 안 오는데 잘 왔어.” 
신기하게도 그들이 들어갈 때 그냥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본당 문을 열어 주고 들어가자 마찬가지로 닫으며 잠갔다.
“문은 왜 잠그지?”
“가끔 신부와 수녀가 밤에도 기도하러 오거든.” 
궁궁이가 묻자, 그냥친구가 손바닥에 올려주며 대답해 주었다. 그 시간에 스노는 스키 선수처럼 허공을 미끄러지며 우주 경비선에서 관음사로 내리달렸다.
“히히힝, 스님 이모!”
“스노구나.”
“빨리 타!” 
범진 스님이 이유를 묻지 않고 스노의 등에 올라타자, 어린 유니콘은 순식간에 ‘행복한 집’ 앞에 내려섰다.
“스님, 마리아 원장님이 위험하실 수 있으니, 급히 불러내셔야 합니다.” 
등나무 아치문 아래 기다리고 있던 시리우스가 말했다. 범진은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마리아, 묻지 말고 밖으로 빨리 나와.” 
원장이 자다 깬 목소리로 받다가 찬물 뒤집어 쓴 듯 정신 차렸다.
“엄마, 누구예요?” 
옆에서 은교 대신 자고 있던 은혜가 깨며 물었다.
“내 정신 좀 봐. 성당에서 철야 기도한다고 그래놓고 깜빡 잠들었구나.”
“으응, 다녀오세요.” 
마리아는 은혜가 잠드는 것을 보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없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다짜고짜 범진이 마리아를 데리고 우주 경비선에 올라탔다. 우주 경비선은 광속 이상으로 달리지 않으면 무소음이었다. 또한 투명 처리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듣거나 볼 수 없었다.
“많이 놀라셨을 줄 압니다. 지금 우주 해적보다 무서운 자들이 은교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두 분은 그들의 눈에 띄면 우주로 납치되실 수 있어 여기로 모셨으니 이해 해 주세요.”
“우리 은교 어디 있어요?” 
밤하늘 높이 비행하며 시리우스가 설명하자 범진은 차분한 모습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마리아는 이해에 앞서 은교 걱정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동안 범진은 은교가 우주에서 온 데네브라는 것을 마리아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마리아도 반신반의하며 인정하기 싫은 것을 조금씩 인정하는 중이었다. 
“수색 대장이 나왔습니다.”
“교수님,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영상으로 알테어가 나타나면서 마리아와 범진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안심해도 돼.”
“기드로온 왕자와 데네브가 키드라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있습니다.”
“으음.” 
은교인 데네브가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는 말을 듣고 마리아가 실신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런 보고인 줄 몰랐습니다.” 
시리우스는 범진에게 사과하며 마리아가 안정을 되찾도록 초능력으로 조치했다.
“오르트가 데네브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수고했어.” 
시리우스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키드라 해적은 온건파이기 때문에 협상에 따라 구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미자르 장군을 불러 줘.”
“시리우스 교수, 수고 많으십니다.” 
Nn11이 우주 3군단장에게 화상을 연결했다.
“키드라 해적과 협상하시는 데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난처하군요. 굳이 위험을 자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서열상으로 시리우스는 장관급이기에 군단장보다 위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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