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미자르는 시리우스를 협상단에 참여시키게 되면 우주 전체의 대표성을 띠기 때문에 꺼렸다. 자칫 재가없이 출동하고 있는 3군단이 작전도 펴기 전에 떠들기 좋아하는 별들의 회의에 중요 안건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군의 심려를 덜어 주기 위함이니 믿어 주세요.”
“별들의 회의에 상정하실 겁니까?” 
미자르는 가능하면 협상단에 시리우스를 포함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까지는 그 권한이 군단장에게 있었다.
“왕자와 데네브를 구한 다음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휴우,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시리우스의 말뜻을 알아들은 미자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교를 꼭 구해 주세요.” 
언제 깨어났는지 마리아가 시리우스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마리아의 간절함이 이루어지게 나도 같은 마음이 되어 줄게.” 
범진이 옆에서 마리아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원장 이모, 아프지 마.” 
스노가 꼬리를 흔들며 혀로 누워 있는 마리아의 얼굴을 핥았다.
“교수께서 협상에 참여하시게 되면 단장을 맡으셔야 합니다. 책임도 포함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허락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시리우스 생각은 재가 없이 결단한 알마크와 미자르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이기도 했다. 그 부담을 모두 자신이 안으려는 것이었다.
“협상 준비는 지시해 놓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이동할 것입니다.” 
화상에서 미자르 군단장이 사라지자 시리우스는 마리아 원장에게 가서 손을 쥐고 가슴에 대며 말없이 눈물을 적셨다. 우주 어디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어떻게든 구할게요.” 
이토록 착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우주 관습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 해도 사죄하고 싶었다. 시리우스는 저 슬프고 불쌍한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않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안간힘 쓰는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친구들아, 요즘 정자에 가 보았니?”
“왜?” 
이제는 절대자의 아들에게 팔달문 친구들은 아무도 존댓말하지 않았다.
“어제 보니까 보수 공사하는 것 같았어.”
“공사하는 것이 아니고 떼어가려는 거야.”
“사람들 몰래?” 
그냥친구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길대장이 무관심한 말을 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사는 것은 맞지만 사람들 덕보고 사는 것도 많잖아.” 
늘 마음이 넉넉한 백구가 한 마디 했다.
“막아야 하는가 보구나?” 
대두조가 그냥친구의 어깨 위로 날아가 물었다.
“그렇기는 한데 괜히 말을 꺼낸 것 같아. 우리 그냥 재미있게 놀자. 내 몸으로 너희들의 놀이터가 되어 줄게.” 
그냥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친구들이 자신의 몸으로 올라오거나 매달리게 했다. 다른 날보다 별똥별이 화려하던 밤은 지나가고 아침이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흑빛 유니콘
“살려주세요!” 
오르트에는 지구로 투입되었던 첩보 부대가 돌아가며 사람과 동물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가장 앞에는 전쟁 중에 탈출했던 여섯그만과 왕눈깔과 쪽비이고 뒤이어 엘리사벳 수녀와 하델의 2인자 싸이코가 끌려갔다. 그리고 데네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틀란티스 박물관장과 카노푸스도 잡혀갔다. 이들은 모두 오르트 대제 앞에 무릎 꿇렸다.
“멍청한 놈들! 어이구 미안하게 됐소. 박물관장님과 카노푸스님을 모셔오다니.” 
대제는 그 둘을 빨리 돌려보내라고 명령하며 첩보원을 따라 붙였다.
“저들이 지구에서 무엇을 하는지 눈치 못 채게 감시해.” 
오르트 대제의 생각은 우주 전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생각이었다. 우주 박물관장 아틀란티스가 직접 나설 정도의 작업이라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더구나 별들의 회의에서 장관급인 카노푸스가 동행하는데 경호요원 한 명 없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더욱 수상했던 것이다. 
“수녀는 왜 데려 왔지?”
“공주님이 계시던 곳을 자주 왔다 갔다 했고 해적들이 감시를 했었습니다.” 
대제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성체 성운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저 지저분한 놈은?”
“공주님을 납치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기드로온을 기한 내에 납치 못해 쫓겨난 한때 하델 해적의 2인자였다.
“뭐야? 평생 그런 짓 못하게 만들어버려.”
“그게 아닙니다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2인자는 끌려 나갔는데 비명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크으, 냄새 고약한 놈인데 이런 짐승을 왜 잡았나?”
“자신도 안다고 하도 자랑하기에 잡아왔습니다.”
“보나 안 보나 허풍쟁이다. 주둥이를 못 쓰게 해버려.”
“으아!” 
쪽비는 비명 소리와 함께 질질 끌려 나갔다.
“아따 고놈 인상하고는, 얼굴 반이 눈알이네. 쳐다보기 무섭데이.” 
대제는 왕눈깔을 보고 신기해했다.
“아, 예. 저는 기드로온 왕자를 납치하려 했습죠.”
“기드로온도 지구에 있다는 말이냐?”      
“지금은 지구에 없고 하델 두목이 납치해 갔습니다요.” 
왕눈깔 올빼미는 자신은 살았다고 생각하며 아양 떠느라 웃음까지 띄웠다.
“요놈도 적당히 분질러 줘.” 
왕눈깔도 끌려 나가며 비명을 질러야 했다.
“흠, 저 등 돌리고 곁눈질하는 놈은 뭐야?”

“흠, 저 등 돌리고 곁눈질하는 놈은 뭐야?”
“이 자식, 예의를 갖춰!” 
여섯그만은 발길질을 당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세요.”
“털도 반쪽은 없고 인상도 험한데다 애꾸눈이라서 순 악질로 보이는구나.”
“공주님은 키드라 두목이 납치했습니다요.” 
애꾸부엉이 여섯그만은 얼른 고했다. 자신이 한 짓이 드러나기 전에 대제의 관심을 건너뛰게 한 것이다.
“뭐야? 키드라 이놈, 뼈까지 씹어 먹겠노라!”
“키드라는 동쪽 협곡에서 우주 군단과 대치중입니다.”
쿵쿵쿵. 첩보대장의 말을 듣고 당장 자신의 딸을 데려올 수도, 납치범 키드라를 잡아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대제는 가슴을 쳤다.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하델놈한테 막혀 이게 무슨 망신이냐?”
“제게 기회를 주시면 하델이 길을 열어 드리게 하겠습니다.” 
여섯그만은 데네브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자신이 살길은 공을 세우거나 탈출하는 방법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하델이 납치한 왕자를 대제 전하께 바치도록 해 보겠습니다.”
“호오.” 
오르트 대제는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의 딸을 감옥별로 보낸 알마크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우주 협곡으로 들어가게 되어 키드라를 구슬러 데네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번 우주 전쟁을 시도한 의도와 전혀 다른 것이다.).
“총 쏘지 마시오, 총 쏘지 마시오!” 
여섯그만은 대제의 특명을 따내어 하델에게 날아갔다.
“오르트 대제가 기드로온 왕자만 바치면 두목님에게 벼슬을 준다고 했습니다요.”
“나는 오르트를 탈출했는데 그냥 둘까?”
“왕자를 바치고 길까지 열어 주면 1등 공신으로 큰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요.” 
여섯그만은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다. 하델에게서 왕자를 데려가고 하델이 오르트에게 길을 열도록 하려 했다.
“이 곳에는 기드로온 왕자가 없다. 그리고 길을 열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고 전해! 너 임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데 그러다 죽을 자리도 못 구한다.” 
하델은 여섯그만을 별 밖으로 쫓아버렸다.
“칫, 나보다 먼저 죽을 놈이 큰소리치기는. 그나저나 이대로 돌아가면 죽을 텐데 에잇! 날개야, 날 살려라.” 
여섯그만은 오르트 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뭐?” 
오르트 대제는 여섯그만이 도망친 것을 보고 받자 인상을 찌푸렸다.
“황금여우를 데려와.” 
잠시후 황금여우가 천년고독과 함께 들어왔다.
“썩은 나무는 왜 왔어?”
“엘라쓰로 보내 주십시오.” 
대제의 큰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천년고독은 무릎을 꿇더니 기어오며 사정하였다.
“천 년 동안 원하던 그곳으로 가거라.”
“정말 감사합니다.”
“부관, 그 별까지 혜성 하나 붙여 줘.” 
천년고독은 코가 땅에 닿도록 고마워하며 뒷걸음으로 나갔다.
“저도.”
“떽! 너는 죄짓고 지구에 간 놈이잖아? 대신에 나한테서 일 좀 해.” 
황금여우도 천년고독을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대제는 놓아주지 않았다.
“기드로온이 왜 지구에 갔었지?”
“데네브를 찾으러 갔지예.”
“왜?” 
오르트 대제는 왕자가 감옥별에 간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대제는 어떤 것이든지 상식을 벗어난 것은 분명히 생략된 이야기가 있다고 확신했다. 
“기드로온 왕자는 데네브만 찾거든요.”
“뭐야? 네 놈이 그것을 어찌 알아?”
“알마크 대총독이 무서워 다들 쉬쉬하지만 알만한 별은 다 압니다요.”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대제의 마음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쁜 것이 뒤섞였다. 수많은 별을 사랑해야 하는 왕자가 데네브 하나만 찾는다니까 좋긴 한데 알마크 이 놈은 왜 자기 자식이 찾는 데네브를 감옥별로 보냈을까? 그것도 특별히 부탁한 내 딸을! 오르트 대제는 부아가 치밀었다. 일인지상 만인지하로 천 년 만 년 성하의 신임을 독차지하시겠다? 그래서 나의 피붙이 하나까지 가장 악명 높은 별인 지구에 버렸다 이거지?
“이 노옴!” 
오르트 대제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갈 일성하자, 황금여우는 기절초풍할 듯이 뒤로 발라당 넘어져 바들바들 떨고, 모든 오르트가 바닥에 얼굴을 박은 듯이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네가 아니니라. 블랙을 대령하라.” 
따그닥따그닥,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새까맣다 못해 반질반질 빛이 나는 수컷 유니콘이 나타났다.
“히히힝.” 
대제는 흑빛 유니콘 등에 올라타고 캄캄한 우주 창공 속으로 날며 달려갔다.

오르트 대제의 딸
오르트들이 사라지자, 우주 경비선은 ‘행복한 집’에 마리아 원장을 내려주고, ‘관음사’에 범진 스님을 내려 준 다음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북극문을 통하여 지구 밖으로 빠져 나가더니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활선을 그으며 비행하였다.
“룰룰루~”
“어? 나쁜 놈이다. 한 대 때려 주고 오게 문 열어 줘.” 
스노가 노래 부르며 날고 있는 애꾸눈 수리부엉이를 발견한 것이다.
“Nn11, 포획해.” 
시리우스는 여섯그만을 본 적이 있다. 은교를 구하려 할 때 낙엽송에 앉아 감시하는 것을 보고 돌을 튕겨 쫓아버린 새였다.
“으핫!”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그물이 던져지자, 살았다고 콧노래 부르며 지구로 돌아오던 여섯그만이 파드닥거리며 잡혔다.
“야야야얍. 한 대 더 맞아라, 꽁!” 
그물에 잡혀 우주 경비선 안으로 끌려 들어온 여섯그만을 스노가 알밤을 주었다.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즉결 처분하겠다.”
“오르트에서 도망쳤습니다요.” 
여섯그만이 Nn12가 심문하자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오르트에서 무슨 질문 받았어?”
“데네브 공주에 대해서요.”
 n12가 심문하다 말고 시리우스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내가 할게. 누가 물었어?”
“오르트 대제입니다요.” 
시리우스의 두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