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대두조와 은바퀴가 주고받는 이야기다.
“혹시, 눈빛보석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궁궁이가 그냥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까.”
“뭐어?” 
팔달문 친구들은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문으로 가 보자. 마중해야지.” 
그냥친구는 친구들을 데리고 본당 큰문 앞으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눈빛보석! 은교!”
“백구 너 어디 갔나 했더니.” 
기드로온과 데네브가 다정히 손잡고 백구와 함께 문 쪽으로 오고 있었다.
“친구들!” 
눈빛보석은 팔달문 식구들을 모두 안았다.
“어서 와.” 
그냥친구도 눈빛보석과 서로 안았다.
“은교라는 배우 맞네?” 
길대장이 데네브를 알아보았다.
“맞다, 맞아.” 
다른 친구들도 옆 건물인 소극장에서 연기했던 은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은교도 너희들 모두 알고 있어.”
“어떻게?”
“내가 너희들에 대해 열 번도 더 말해 주었으니까.” 
눈빛보석은 웃으며 은교를 소개했다.
“이제 우리랑 살 거야?”
“희망을 가지고 방법을 찾는 중이야.” 
그 부분에서는 모두 시무룩했다.
“희망은 빛과 같은 거야. 빛은 모든 생명에 삶을 주지? 힘내.” 
그냥친구는 팔달문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름다운 섬에서 1년 만에 돌아온 눈빛보석과 은교는 백구와 함께 팔달문 대청마루로 먼저 갔었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자 이곳으로 온 것이다. 오다가 행궁 앞을 지날 때 광장에 서 있던 천년고독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소개시켜 주지 않니?”
“아참, 데네브야.” 
그냥친구가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화제를 바꿨다. 그러자 눈빛보석이 깜빡 잊은 듯이 은교를 소개했다.
“데네브가 누구야?”
“너는 아까부터 머리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더라. 누구긴 은교가 데네브야. 척 보면 압니다지.” 
궁궁이가 또 길대장의 질문에 핀잔을 주었다.
“너 거기 가만있어. 저러니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지.” 
“아이고 나 죽을 줄 모르고 떠드는 요놈의 입방정아!” 
우당당탕! 성당 안이 또 한바탕 시끄러웠다.
“진눈깨비가 많이 내리네.” 
백구가 밖에 나갔다가 흠뻑 젖어서 들어오며 말했다.
“곧 그치겠지.” 
눈빛보석이 은교의 마음을 헤아려 주며 말했지만 진눈깨비가 그쳤을 때는 밤이 되었다.
“내일 가야겠지?” 
‘행복한 집’으로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어서 은교가 그렇게 말하자 눈빛보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컷 놀았으니 팔달문으로 가자.” 
길대장이 성당 안 여기저기서 뛰노는 동물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은 너희들이 안 재워 줘도 은교랑 나는 팔달문 대청마루에서 잘 거야.”
“내일도 자고 모레도 자라.” 
대두조가 포로롱 날아와 은교의 어깨 위에 앉았다.
“야, 섭섭하다. 성당에서 내가 재워 주려 했는데.” 
절대자의 아들인 그냥친구가 섭섭해 했다. 눈빛보석과 은교도 아쉬워하며 잡아끄는 동물 친구들의 손을 잡고 팔달문으로 걸어갔다.
“서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노랑가슴은 빠빠라기가 있고, 눈빛보석은 은교가 있는데 길대장에게는 누가 있지?”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또 한 번, 궁궁이가 있지.” 
길대장의 신파를 받아주는 궁궁이의 넉살에 모두가 자지러지며 대청마루로 올라갔다.
“백구야 울지 마라, 대두조가 있다.”
“대두조 가는 길에 은바퀴도 있구나.” 
질세라 대두조와 은바퀴도 이어서 한 곡조씩 뽑자 팔달문 대청마루는 한바탕 배꼽 빠지는 극마당이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곳에서 지내느라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구나?” 
“네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알면서 그렇게 말하니?” 
눈빛보석은 은교의 질문에 되물으며 웃음으로 말해 주었다. 밤하늘이 개어 별들의 스치는 소리가 채앵채앵 들릴 듯 별빛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기드로온과 데네브인 눈빛보석과 은교는 안드로메다에서 별 사이를 함께 손잡고 헤엄쳤듯 꿈결 속에서 먼 해류를 따라 한 쌍의 흰 물고기처럼 유영했다. 하나된 둘은 보는 이에 따라 데네브로 보일 수 있고, 기드로온으로 보일 수 있었다. 

■ 1시간마다 뜨는 달
팔달문에 아침이 되면 늘 먼저 부산떠는 것은 대두조였다.
“빨리 일어나!”
“5분만 더 자면 안 돼?”
빵빵! 부릉, 다른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자는 시간을 늘려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팔달문 주위로 돌아다니는 버스와 택시 그리고 다시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소리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빨리 가보고 싶지?”
“응.” 
눈빛보석과 은교는 눈빛을 섞으며 말했다. 그 둘은 아직 잠깨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조용히 대청마루에서 행길로 나왔다.
“어디 가?”
“서울.” 
대두조가 따라와서 물었다.
“다시 올 거지?”
“그럴게.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모르지만.” 
둘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너무 좋다.” 
은교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내다보며 즐거워했다.
“나도.”

눈빛보석에게는 여러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데네브를 찾으려고 날마다 혼자 타고 다니던 버스였다.
“탕탕탕.” 
둘이 서대문 사거리 지하도에서 나와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행복한 집’ 쪽에서 망치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재촉해서 달려가 보니까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이사 갔어.” 
합목이 말해 주었다. 
“이곳이 도시계획에 묶이면서 주민센터가 들어서기로 예정되어 있었어. 구청에서 그 동안 빌려 주었던 것이지.”
“어디로 갔어?”
“모르겠어.” 
은교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데네브를 찾아서 축하해.”
“고마워. 그런데 너희는 괜찮아?” 
눈빛보석이 물었지만 둘을 축하해 주던 합목이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는 슬픈 표정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베어버린다고 했어.” 
한참 있다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 
은교는 울음 섞인 말로 소리치며 합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헉헉, 너희들 여기 있구나.” 
백구가 남쪽에서 숨차게 나타났다. 아침눈을 뜨자마자 둘이 서울 갔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마침, 잘 왔어. 우리를 관음사로 데려다 줄래?”
“타.”
“또 올게.” 
눈빛보석과 은교는 백구의 등에 타고 합목 곁을 떠났다.
“둘이 탔는데 눈빛보석만 탄 것 같지?”
“훗!” 
백구가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데네브인 은교는 기드로온인 눈빛보석의 몸속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구가 부지런히 달려 퇴촌을 지나 관음사에 도착했다. 
“너를 보면 마리아가 무척 기뻐하겠구나.” 
범진 스님은 은교를 보자마자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맞이했다.
“‘행복한 집’은 어디로 이사 갔어요?”
“내 차에 타. 데려다 줄게.” 
범진 스님은 낡은 차에 셋을 태우고 엔진 소리를 덜덜거리며 절 마당을 출발하였다.
“멍멍, 답답해요.”
“이 놈아, 세상 급한 것을 천천히 살 줄 아는 것도 지혜야.” 범진은 세월아 네월아 콧노래까지 부르며 바쁠 것 없이 운전했다.
“너희들 나이가 사천 살이 넘었겠지?”
“그걸 어떻게?” 
눈빛보석과 은교는 깜짝 놀랐다.
“스님이 농담도 잘 하셔.” 
백구는 범진의 말에 재미있어 하며 끼어들었다.
“하루가 365일인 것도 십 년이 열흘인 것도 무엇이겠느냐. 마음이 가시밭이면 하루가 365일보다 길고, 마음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백년 세월도 봄 한 철보다 짧은 것을.” 
정말 그랬다. 안드로메다에서 한 몸으로 살 때는 시간의 움직임이란 그저 등 뒤로 흘러가는 개울물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에 와서 데네브를 찾아 헤매던 하루하루는 천 년보다 길게 느껴지던 고통의 연속이었다. 눈빛보석이 은교를 바라보자 은교도 고개를 끄덕였다(아름다운 섬에서는 시간이 의미가 없었다.).
“스님, 뭔 말이에요? 알아듣게 좀 해요.”
“인석아, 네 마음을 붙들라는 이야기야.” 
범진이 커브길을 들어서며 운전대를 꼭 잡고 말했다. 몸이 쏠리자 은교는 자연스럽게 눈빛보석의 팔에 매달렸고 눈빛보석은 그런 은교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내 마음? 요렇게요?” 
백구가 네 발로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익살을 떠는 통에 모두 웃었다. 고물차는 덜컹거리며 죽전 고개를 넘어 풍덕천이라는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 수원으로 가는 길인데?” 
차는 수원 동문에서 조금 더 가더니 오른쪽 작은 도로로 접어들었다.
“화홍문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범진은 다리를 건너 한 번 더 우회전하여 연못 앞쪽으로 운전했다.
“저기 ‘행복한 집’이라고 쓰여 있어!” 
창밖을 내다보던 은교가 소리쳤다. 낮은 꽃 담장 너머로 제법 넓은 마당과 놀이터가 보였고, 집은 3층짜리로 아담하게 지은 예쁜 건물이었다. 차는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가 멈췄다.
“마리아, 나와 봐!” 
범진 스님이 소리치자 마침 외출하려고 마당으로 나오던 마리아 원장과 마주쳤다.
“엄마!”
“은교야!” 
원장과 은교는 얼싸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살아 돌아왔구나, 꿈이냐 생시냐? 내 새끼. 아이구, 이 내 새끼.” 
마리아는 은교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 보았다.
“얘들아, 누가 왔는지 나와 봐!” 
마리아는 흥분해서 집 안을 향해 소리쳤다. 
“누나다! 은교 누나가 왔어!” 
1년 만에 어른 만큼 커버린 키다리 시남이가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스물 한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은교에게 매달리며 뒤엉켜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안에도 방이 여러 개여서 연극을 연습할 수 있는 소극장이라는 이름을 달아놓은 곳도 있었다. 만남의 방이라는 가장 큰 방으로 모두 들어가 그동안 지낸 이야기들을 하느라 바빴다. 서로 자기부터 이야기하려 해서 은교에게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 
“우리랑 ‘행복한 집’에서 함께 살자.”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네. 아니면 관음사에서 지내도 좋고.” 
마리아와 범진이 눈빛보석을 생각해서 말해 주었다.
“팔달문 친구는 어떻게 하고?” 
백구도 지지 않고 말했다.
“말씀 감사해요. 생각해 볼게요.”
“끄응.” 
눈빛보석의 대답에 백구가 섭섭한 표정을 지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 주었다.
“범진 스님, 꼭 심어야 하는 등나무 한 쌍이 있는데 좋은 곳 없을까요?”
“관음사 마당이 좋지. 세상 얽히는 일 부처님이 풀어 주신다는 뜻도 되고.” 
범진 스님의 흔쾌히 받아들이는 대답에 눈빛보석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등나무를 뜰 안에 심어 놓으면 문제가 꼬인다는 속설이 있다. 마리아는 미신을 안 믿는다고 확신해 왔지만 은교가 납치된 후 분홍 대문 앞의 등나무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 원장이 이곳으로 등나무를 옮겨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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