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아이들을 위해 그런다는 것을 안 눈빛보석은 범진 스님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던 것이었다.
“옮겨 심으러 가자.” 
낮시간 교통이라 더 많이 길이 막혀 두 시간 넘게 걸려 서대문에 도착하였다. 마리아가 서대문 구청에 가서 허락을 받고서야 합목은 미니버스로 옮겨졌다.
“자, 출발.” 
승용차와 미니버스에 오른 일행은 관음사로 향했다.
“대웅전이 바라보이는 이곳이 좋겠어. 일주문으로 삼아야 하니까.” 
햇빛 잘 들고 바람 소리 시원한 정문에 등나무가 심어졌다.
‘고마워.’ 
전음으로 합목이 눈빛보석과 은교에게 마음을 전했다.
“스님, 감사해요.”
“내 마음이 더 기쁘다.” 
은교와 눈빛보석이 고마워하자 범진은 도리어 합장하며 좋아했다.
“인석아, 침 냄새 나.” 
백구가 합목을 이리저리 혀로 핥아 주자 범진이 못하게 말렸다. 합목은 살았다는 표시로 끔찍한 백구의 혀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범진 스님에게 합장하듯 허리를 숙였다가 폈다(범진은 바람이 한 번 휘어지게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녁 공양이나 하자고.”
“제가 준비할게요.” 
은교가 공양간으로 갔다.
“쟤, 네 실 아니야?”
“아, 예. 바늘 갑니다.” 
눈빛보석이 알아듣고 얼른 은교를 따라 갔다.
“나도 갑니다.”
“바늘도 실도 아닌 놈이 왜 따라가?” 
범진이 나무라는데도 백구는 벌써 공양간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공양을 하게 되었다. 은교와 눈빛보석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물 반찬인 절 음식 먹는 것을 좋아했다. 백구도 마찬가지였다.
“개도 성불하면 고기 싫어하고 나물 반찬 좋아하느니라.”
“백구가 성불한 건가요?” 
웃음 속에 저녁공양을 마치고 모두 마당으로 나왔다.
“고마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언제 다 갚지?” 
마리아는 범진의 손을 잡으며 말하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
“우리가 더 고마워할게.” 
눈빛보석과 은교와 합목이 서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멍멍멍, 달이 두 개네?”
“무엇을 보고 짓니?” 
백구가 하늘을 보고 짖어대자, 다들 이야기하다 말고 백구에게로 왔다.
“달이 두 개야!”
“별일이네?” 
마리아와 범진이 놀라운 듯 말하는데도 눈빛보석과 은교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해적별들의 공전과 자전 주기가 지구에 맞춰져 운행하기 시작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올게.” 
범진 스님만 남겨 두고 모두 미니버스에 올라 관음사를 출발했다.
“엄마, ‘행복한 집’이 어떻게 그런 좋은 곳으로 이사했어요?”
“범진 스님이 불사 지으려고 모으던 돈으로 사 준 거야. 그 신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행복한 집’이 이사 온 그곳은 전에 꽤나 유명한 유치원이었다. 방만한 운영으로 재정이 어려워져 비어 있었다.
“어? 하나 더 뜨고 있어.” 
죽전 고개를 넘어 수원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달이 또 한 개 떠오르고 있었다. 달이 세 개나 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담?” 
마리아 원장이 불안한 얼굴로 부지런히 ‘행복한 집’을 향해 운전했다.
“지구의 종말이 다가온 것일까?” 
세계 여러 나라의 뉴스는 온통 들끓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빵빵!” 
도로는 차들이 엉켜 거의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고 있었다. ‘행복한 집 연극단’ 미니버스가 겨우겨우 화홍문 다리를 건널 때 달 하나가 또 떠올랐다.
“달이 네 개다!”

■ 신낙원
“엄마, 달이 다섯 개나 떴어요!”
“신기해. 더 많이 떴으면 좋겠어.” 
불안해하는 마리아 원장과 다르게 ‘행복한 집’ 아이들은 달이 하나씩 더 떠오를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달이 1시간마다 하나씩 밤새도록 떠올라 새벽이 되자 12개의 달이 하늘에서 줄지어 운행하고 있었다. 지평선과 수평선 아래에도 12개의 달이 돌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사라졌다.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의 파도들이 큰 차이 없이 물결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닷속이 이토록 아름답고 안전한 곳인 줄 몰랐어.”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키드라별에서는 해적들이 행복해하고 있었다.
“낙원이 따로 없네?”
“제독님은 용왕님 같으십니다.” 
키드라가 흡족해하고 있을 때 찌라시가 아부를 했다.
“용왕님이 뭐니, 옥황상제님이시지?”
“무식한 놈.” 
알박이가 찌라시에게 지지 않으려고 아는 척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상어란 놈이 우리가 못된 짓하던 거와 똑같네. 다른 물고기들 괴롭히지 못하게 손 좀 봐 주고 와.”
“부두목, 네가 가.”
“싫어. 부제독, 네가 가.” 
아부할 때는 서로 먼저 나서다가 6미터가 넘는 험상궂은 백상어를 혼내 주는 일은 양보하고 있었다.
“퓨!”
부제독과 부두목이 서로 미루는 사이 별 밖으로 나간 키드라가 아기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벌린 백상어의 아가리에 광선총을 발사했다.
“우야꾸!” 
순식간에 백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이 모두 녹아버렸다.
“와!” 
이를 지켜보던 수만 명의 해적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아기 고래도 키드라에게 고맙다는 뜻인지 재롱을 부리다 어미 고래를 찾아 헤엄쳐 갔다.
“이놈들아.”
“쿵.” 
키드라가 돌아와서 양쪽 손으로 알박이와 찌라시의 머리를 하나씩 움켜잡고 이마를 부딪치게 한 것이다.
“아고고.”
“앞으로 내 명령을 한 번만 더 어기면 바로 말단 소총수로 강등된다. 알았나?”
“옙!!”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군기가 잔뜩 든 둘은 신병처럼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족별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해.”
“총 23개, 사고 무, 현재 23개로 지구의 달이 되어 1시간 간격으로 줄 맞춰 돌고 있습니다! 이상 보고 끝!”
“멍청한 놈, 지구의 달이라니? 키드라의 별들이란 말이다. 알겠나?”
“네네넷, 알겠습니다!” 
알박이가 바짝 얼어 대답했다.
“찌라시는 가족 현황 보고해.”
“총 7,342명, 사고 12명, 사고 인원은 4개의 가족별 보초이며, 현재원 7,330명입니다! 이상 보고 끝!”
“야, 임마! 너는 이제 내 부하란 말이다! 총인원부터 다시 보고해!”
“네네넷, 수정하겠습니다!”
키드라가 알고 있는 전체 인원만도 열 배인 7만 명이 넘었다. 
“다음에 또 그따위로 보고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시켜버린다. 앙?”
“네넷!” 
찌라시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바지가 젖었는데 지린내가 났다.
“크으, 냄새. 아이, 저 자식. 진짜 찌지리네. 빨리 나가 옷 빨아 입어 임마!” 
찌라시는 어기적거리며 키드라의 방에서 나갔다.
“도르르르.”
“시리우스입니다.” 
키드라는 전화를 걸다 시리우스가 받자 알박이에게 손짓으로 나가 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오라는 줄 알고 알박이가 가까이 다가와 수화기에 귀를 같이 들이대자 알박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허걱!” 
두 눈알이 그대로 튀어나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여보세요, 시리우스에요.”
“아 예, 시리우스 교수님. 저 키드라올씨다. 무사히 바닷속으로 안착했습니다.” 
키드라는 부하들에게 다그치던 목소리와는 전혀 딴판인 점잖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수고하셨어요. 불편하더라도 잘 지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한 시리우스 교수님 계획대로 자알 이루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통화 중인 키드라 뒤 쪽에서는 알박이가 눈알을 찾지 못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저는 지금 우주 군단 쪽으로 가고 있어요. 제가 연락할 때까지 참아 주세요.”
“그러지요. 그저 무사하십시오.” 
전화를 걸지 말고 기다리라는 시리우스의 말에 키드라는 마음에 상처 받고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여기 있다!” 
기어 다니던 알박이가 겨우 눈알 한 개를 찾고 좋아하다 키드라에게 들켰다.
“이 자식! 안가고 내 전화 다 들은 거야?”
“아아닙니다요.”
“아이쿠!” 
키드라가 발길질하려다 알박이가 개미처럼 재빠르게 문 밖으로 기어가는 바람에 헛발질로 나뒹굴어진 것이다. 큰 대자로 누웠던 키드라는 식식대며 일어나다가 알박이의 눈알 한 개가 눈에 띄자 짓밟으려 했다. 그러다가 문 밖에서 말도 못하고 한 쪽 눈으로 간절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알박이를 발견하고 참았다.
“받아, 임마.” 
키드라는 눈알을 집어 들고 알박이에게 던졌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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