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 · 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 · 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우리가 시간이나 세월 또는 역사에 대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흐름의 의지다. 시간도 흐르고 세월도 흐르고 역사도 흐른다. 시간적 관념에는 두 개의 개념이 있다. 하나는 자연적 시간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적 시간이다. 전자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허무의 흐름이다. 후자는 과거와 미래를 가진 유일한 창조적 과정이다.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는 변화가 없다. 물론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만 시간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바로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가 없다면 역사는 없는 것이다.

창립 58년, 수원문협 열다섯 번째 수장(首長)이 바뀌었다. 김운기 회장의 취임사에서 역사의 흐름이 읽혀졌다. 미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명일(明日)을 구성해 낼 수 있는 상상력 때문이다. 상상의 기능이 없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 올해는 12간지(干支)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청룡의 해다. 상상력은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돌파구를 만들어준다. 상상은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심상(心象)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다. 미래는 상상력이 결정짓는다. 상상하는 사람은 언제나 앞서간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 있다. 김운기 회장은 “거칠고 척박해진 문학의 밭을 일구고 더 많은 문인에게 좋은 울타리를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진보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원리가 문학만이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부터 변화에 대한 고민을 주저하고 현실에 안주해온 수원문협의 체제를 바꾸겠다.”며 여섯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문인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경영마인드를 적용한 문협업무, 문학지의 품질과 위상 제고, 문학강좌를 확대 개편하여 문학학교 설립, 문협재정 확충을 위한 조합형태 사회적 기업 설립, 청년층을 문학의 울타리로 부를 청년문학상 제정, 참여도를 높힐 장르별 분과위원회 활성화 등을 열거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은 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가능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

새로 취임한 김운기 회장과 함께 가야할 길은 하나의 방향이요 목표다. 바른길에 들어섰다고 확신이 들면 함께 가기만 하면 된다. 어떤 유형의 단체를 불문하고 많은 것과 드문 것이 존재한다. 필자가 경험한 많은 단체에서 그걸 목도(目睹)했다. 문학단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많아도 의무에 충실한 사람은 드물다. 무엇이나 비평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옳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알력과 대립을 조성하기는 쉬워도 화복과 평안을 조성하기는 어렵다. 이해(利害)를 따지기는 쉬워도 상대에게 예절을 지키기는 어렵다. 아무렇게나 행동하기는 쉬워도 사리대로 행동하기는 어렵다. 이같이 단체에는 많은 것과 드문 것,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상존(常存)한다. 앞으로 수원문협은 많은 것은 줄어들고 드문 것은 더 많아져야 한다. 쉬운 것은 어려워져야 하고 어려운 것은 쉬워져야 한다. 그게 향상이고 발전이고 변화다. 어떤 문제를 주장하기는 퍽 쉽다. 그것을 행동으로 책임 있게 성실히 실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지 않으면 자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의자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갖는다는 뜻일 듯하다. 자기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각성하는 것이 된다. 직책을 맡든 안 맡든 문인은 창작자다. 홀로 언어로 작업하는 문필가다. 그게 본분이다. 작가를 위해 기름지게 문학의 밭을 일궈주는 단체가 있기에 행복한 것이 아닐까.

문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주(主)가 된다. 개인적 경험이 기초가 된다. 문학은 항상 개인적 표현이 되며 주관적이다. 문학이란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결국은 인생의 표현이다. 문학만큼 보편적으로 인생과 밀착된 것은 없다. 인간을 자각시키는 것은 문학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변화를 이끄는 170여 문인들 마음의 미묘한 새로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하루하루를 얼마든지 다른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 똑같은 급수의 대국자(對局者)가 아무리 되풀이 대국을 해도 똑같은 국면이 바둑에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 출범한 김운기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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