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스님, 체통을 지키세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둘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범진 스님, 장애우돕기 삼소회 행사 진행을 보셔야 합니다. 옛 이야기는 이따 많이 하시지요.”

“내 정신 좀 봐. 마리아, 그럼 이따.” 

회원인 듯한 수녀가 와서 범진 스님을 데려가자, ‘행복한 집 연극단’ 식구는 마당을 가로질러 세심당이라는 요사체로 안내되었다. 큰 방이 세 개였는데 칸막이로 사용하던 미닫이 문 두 군데를 해체하자 어엿한 소극장이 가능할 정도의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절이라 조금 이른 저녁 공양으로 식사를 마치고, 한 마음 한 자리 시간이 되어 강천사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세심당으로 모였다.

오늘 공연은 ‘브레멘 음악대’의 내용을 가지고 즉석에서 장애우들과 함께 연극하기로 했다. 마침 삼소회와 자매 결연을 맺은 장애우들이 낮 시간에 음악회를 가졌기 때문에 악기 소품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먼저 ‘행복한 집’ 식구가 연기를 하면 장애우가 따라하는 것이었다. 

“이히히힝, 둥둥둥.”

올해 중학생이 되는 뚱뚱한 남자 아이가 당나귀 흉내를 내면서 배를 두드리며 지나가자, 장애우가 ‘이히히힝’ 입으로 당나귀 소리로 웃기고 드럼을 치며 뒤따랐다.

“재미있네.”

“멍멍멍, 뿌뿌뿌우.” 

두 번째 아이가 개 짖는 흉내를 내다 나팔 부는 시늉을 하며 지나가자, 휠체어를 탄 장애우도 개 짖는 소리를 하다 트럼펫을 불며 뒤따라갔다.

“아이디어 괜찮다.”

“야옹야아옹, 딩딩디딩.” 

세 번째는 목발 짚은 장애우와 함께 고양이 흉내를 내며 기타치고 노래하는 연극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네 번째는 수탉처럼 “꼬끼오!”하며 두 팔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삘릴리 삘릴리.” 피리를 부는데 온몸을 꽈배기처럼 꼬고 뱀처럼 흔드는 연기를 하자, 장애우뿐만 아니라 모두가 따라하며 박장대소로 자지러졌다.

“야아, 정말 이렇게 재미있으니까 ‘행복한 집’ 연극을 보려 하는구나. 하하하.” 장애우와 관객과 ‘행복한 집’ 식구들이 함께한 연극 공연은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장기 자랑으로 어우러지게 했다. 깊은 산중 깊은 밤에 한바탕 신명나는 놀이판은 조용한 산사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호호호홋.”

“부엉, 부엉.” 

강천산 자락에서 올빼미와 부엉이 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렸다.

바람 타고 길을 물어

산사에 밤이 자정을 넘자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도 각자 머리맡에 대충 밀어 두고 잠 속으로 나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 둘은 어지간하다. 제살 같은 친군데 십년 세월을 한 번 찾지 않았어. 섭섭타, 친구야.”

“내가 할 말 마리아가 다 해버렸네.”

“저어, 내일 소록도로 가려면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합니다.” 

엘리사벳 수녀의 말 한 마디에 마리아 원장과 범진 스님도 풀다만 보따리 도로 싸듯 이야기를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세심당에는 장애우들과 삼우회 회원들인 여성성직자들과 ‘행복한 집’ 식구들이 여기 열 명 저기 스무 명씩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었다.

“홋홋, 부엉부엉.” 

문 밖 산속에서는 올빼미와 부엉이 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리고 모두 잠든 것 같은데 은교는 뒤척이고 있었다.

“피곤할 텐데 잠을 못 자고 있구나.” 

옆에 누워 있는 범진 스님도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마리아 원장이 코를 남자처럼 골고 있었다.

“마리아는 잠도 밥 먹는 것처럼 맛있게 자네.”

“낮에 긴 시간 운전하셔서 그러실 거예요.” 

은교와 범진은 어둠 속에서 웃음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내가 하나 맞춰 볼까?” 

은교는 범진이 뜬금없이 묻는 말에 말을 못하고 있었다.

“너 ‘바람 타고 길을 물어’에 가보고 싶지?”

“네.”

“그럼 가게 될 거야. 그 마음 놓지 않는다면.” 

그 마음 놓지 않는다면? 은교의 눈앞으로 눈빛보석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마음 꼭 쥐고 있어야 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아.” 

그 마음 꼭 쥐고 있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 은교는 조약돌을 꼭 쥐어 보았다. 눈빛보석도 조약돌을 쥐고 있을까?  

“스님은 내일 어디로 가세요?”

“글쎄, 내일 되어 보면 알겠지.” 

보이지 않지만 범진 스님이 웃으며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엘리사벳이 뒤척이며 돌아눕느라 부시럭거렸다. 밖에서는 또 음산한 밤새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따라 올빼미와 부엉이가 극성이구나.” 

걱정하지 말라고 범진 스님이 은교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은교의 손에서는 계속 조약돌이 만지작거려지고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아주 길고 어떤 이에게는 아주 짧은 밤이 지나갔다.

“어서 일어나. 아침 공양 시간이래.” 

‘행복한 집 연극단’ 식구들은 피곤한지 겨우겨우 일어났다. 그러나 다들 서둘렀다. 절간에서는 식사 때 놓치면 굶어야 한다고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그래도 손은 씻고 가.” 

강천사는 아침 식사 시간도 이른 편이었다. 이 절 주지 스님이 워낙 부지런하고 꼼꼼하다고 알려져 있어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깐깐하기 때문이었다. 

“또 언제 볼꼬?”

“닿을 인연이라면 만나게 되겠지.” 

마리아 원장이 아쉬워하자 범진 스님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삭발머리로 합장하며 정중히 말했다. 그 말이 더 마음을 울컥 끓어 올렸는지 원장은 눈물을 찍었다. 

‘행복한 집 연극단’의 연두색 미니버스는 창문마다 장애우들에게 손을 흔들며 산사를 떠났다.

“나는 순창 여객터미널에 내려주세요.” 

엘리사벳 수녀는 오늘 낮에 서대문 성당에서 있을 전체 구역 모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먼저 올라가야 했다. 미니버스는 산중 도로를 구불구불 내려와 순창읍으로 향했다. 소록도로 가려면 어차피 순창을 거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미니버스를 따라 올빼미와 수리부엉이가 날고 뒤이어 까치 떼도 무리지어 강천산 등성이를 넘고 있었다. 

잠도 잤고 식사도 배불리 한 아이들이 차 안에서 다시 시끄러워졌다.

“꺽달아, 너 정말 웃기더라.” 

꺽다리라고 불리는 초등학교 4학년인 시남이는 식구들 중에서 세 번째로 키가 큰데 얼굴도 길고 몸이 호리호리했다. 그 아이가 어제 저녁 피리 부는 연기를 할 때의 율동은 흡사 뱀이 춤추는 것 같았던 것이다. 이제는 연기가 물이 올라 넉살까지 떨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던 것이다. 시남이가 사람들을 더 웃긴 것은 본인은 하나도 웃지 않는 연기력에 있었다. 아이들이 ‘꺽다리 하시남요’ 하고 이름을 놀려도 ‘안녕하시남?’ 하고 거꾸로 장난을 치는 아이었다.

“요렇게 웃기시남?” 시남이가 또 한 번 꼬는 춤을 재연하자 버스 안이 웃음통이 되어 난장판이 되었다.

“얘들아, 원장님 운전하시는데 조용히 해야지.” 

앞 좌석에서 엘리사벳이 뻣뻣한 표정으로 뒤를 향해 주의를 주자, 다시 조용해졌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모습이 묻힌다 싶으면 종종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수녀 회장님, 그냥 대화하는 건 돼요?” 

여중생 지수가 비위를 맞추느라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넣어 물었다.

“그러렴.” 

엘리사벳의 목소리는 금방 부드러워졌다.

“은교야, 흰 목도리가 이제는 덥지 않니?” 

점점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띠게 줄었기 때문에 해 주는 말이었다.

“은교 목도리는 원장님이 뜬 게 아닌 것 같더라.” 

앞자리에서 엘리사벳이 말했다.

“어디 좀 바.” 

다른 여중생 은혜가 은교의 목에서 목도리를 걷어 갔다.

“상표가 있는 거 보니까 그러네.”

“산 거야, 누가 준 거야?” 

모두 흰 목도리에 호기심을 갖자 은교가 얼굴이 빨개지며 도로 빼앗아왔다.

“이리 줘 봐. 나도 이런 목도리를 해 보고 싶었어.” 

이번에는 엘리사벳이 뒤로 팔을 뻗어 흰 목도리를 가져갔다.

“아이 목도리를 가지고 왜 그래? 어서 돌려 줘.”

“어쩜 이렇게 촘촘히 짤 수 있지?” 

엘리사벳이 흰 목도리를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살펴보자, 운전을 하는 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디 보자.” 

엘리사벳은 상표를 발견하자, 천천히 읽었다.

“데네브, 기드로온.”

도청 장치

“끼이이익!”

미니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중앙선을 넘었다.

“빠아아앙!” 

맞은 편 차선에서 오던 대형 트럭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 벼랑 끝에 겨우 멈춰 섰다.

“으아앙!” 

막내 해성이가 놀래서 울음보를 터뜨려 은교가 안고 달랬다. 다들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놀란 모습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엄마, 괜찮아요?” 

은교가 운전석 가까이로 마리아 원장에게 움직여 갔다.

“미안하구나. 괜찮다.” 

원장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쥐고 오른발은 브레이크 페달을 부러질 듯 밟고 있었다. 원장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이리 내!” 

마리아 원장은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엘리사벳으로부터 흰 목도리를 홱 빼앗아 은교에게 돌려주었다. ‘행복한 집’ 식구들은 지금껏 원장의 저토록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차 안은 적막감으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멈춰 선 것은 미니버스뿐만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올빼미와 수리부엉이와 까치들도 멈췄고, 추락하지 않으려고 모두 제자리에서 날개를 파닥파닥거렸다.

“분명히 데네브, 기드로온이라고 했어.” 

왕눈깔이 엘리사벳에게 부착한 도청장치를 통해 들은 말을 중얼거리더니 희색이 만면하여 북쪽을 향해 날갯짓하려 했다.

“어딜 가려고! 시방 데네브라고 했는가?”

“아아녀요, 내가 뭔 말했다고 그러슈.” 

여섯그만이 가로막고 묻자, 왕눈깔은 시치미를 뗐다.

“어허, 도청하는 거 다 알고 있어. 도와가며 사는 처지에 그러는 게 아니지.”

“나 참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디요.” 

순순히 가르쳐 줄 것 같지 않자 여섯그만은 까치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그들아, 왕눈깔이 삭신을 좀 안마 받고 싶은가 보다. 잘 해 드려라.” 

그러자 까치들이 왕눈깔을 벌떼처럼 에워쌌다.

“혀형님, 잠깐만요. 우리 이런 안마는 절대 사절이지요.”

“아우님, 취향을 잘 몰라서 미안해. 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어떤 가시내가 데네브인지만 알면 돼!” 

여섯그만은 애꾸눈을 부릅뜨며 얼렀다.

“은교라는 계집애입니다요.”

“아그들아, 길 열어 드려라.” 

까치들이 포위를 풀자 왕눈깔은 순식간에 서울로 도망치며 날아갔다.

“너희들은 계속 뒤쫓아. 내가 수원에 갔다 올 때까지.” 

까치들에게 명령해 놓고 여섯그만도 북쪽 하늘로 날아갔다.

스노는 언제 내려왔었는지 거꾸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미니버스가 추락하려 할 때 쏜살같이 내려와 막았던 것이다.

“은교가 데네브 누나인 거 확실한가 보네. 와, 신난다. 빨리 기드로온 형아에게 알려 줘야지.” 

스노는 북쪽 하늘로 뛰었다. 그러다 말고 섰다.

“아냐, 아냐. 얼굴이 다르잖아.” 

남쪽 하늘로 뛰다 말고 또 섰다.

“냄새가 같잖아.” 

스노는 그동안 냄새로 은교가 데네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확신을 갖지는 못했었다. 

“올빼미가 은교를 데네브라고 말했어.” 

또 다시 북쪽으로 뛰려다가 남쪽으로 뛰어갔다.

“기드로온 형아가 은교를 지키라고 한 것을 보면, 기드로온 형아도 은교가 데네브 누나라고 알고 있는 거야.” 

스노가 강천산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미니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자 순창읍내로 들어서는 까치 떼가 보였다.

“저기 간다.” 

미니버스는 순창터미널 앞에서 엘리사벳 수녀를 내려 준 뒤 곧장 남쪽 도로로 달리고 있고, 화가 난 엘리사벳이 휘뜩휘뜩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가는 것이 내려다보였다.

“마리아 원장이 나한테 그렇게 화를 낼 수 있어? ‘행복한 집’ 식구들이 누구 때문에 이만큼 먹는 사는 줄도 모르고.”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아이들 앞에서 수녀 회장인 자기에게 화낸 것을 몹시 불쾌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